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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쏠리 May 08. 2023

백상예술대상을 보고 울어버린 건에 대하여

 분노를 눈물로 배출할 때 빼고는 잘 울지 않는다. 아무리 영화나 드라마에 슬픈 장면이 나와도 ‘우와 어떻게 저런 연기를 하지’라는 현실에 집중해서인 것 같다. 하지만 뜻밖에 눈물이 터져나오는 포인트가 있다. 그건 대체로, 이기기 어려운 싸움에 사력을 다하는 누군가의 모습 혹은 어떤 이의 고된 시간 끝에 따른 성취의 순간, 조금 더 무엇인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구나 라고 느끼는 순간들에서다.

 몇해 전주터 혐오와 배제가 정치의 기본 테제가 되고, 그것이 마치 입증된 듯한 결과가 나오면서 무력감이 들었다. 거꾸로가는 듯한 사회 현상들에 자주 울적해지곤 했다. 하지만 아침잠에 뒤척이다 우연히 본 백상예술대상 영상들은, 더디지만 세상은 조금 더 진일보하고 있다는 증명이었다. 수상 소감을 보며 눈물이 또르르 흐른 건, 인내력 있고 성실한 사람들의 성취에 기쁨과 감사의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꾸준히 나아갈 수 있도록 지탱한 김장하 선생님의 삶을 다룬 다큐 <어른 김장하>, 현장실습생의 비극을 담은 영화 <다음 소희>,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주인공을 다룬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학교폭력을 다룬 드라마 <더글로리>, 장애인의 욕망을 다룬 연극 <틴에이지 딕>, 치열한 현실에 지친 현대인을 위로하는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등. 수상 후보작들은 소외나 배제가 아닌 함께 그리고 잘 살아가는 세상을 그리고 있었고, 이에 대한 수상은 실현을 더 앞당기기 위한 또 다른 ‘예술’이었다.


백상예술대상 박은빈 수상 소감 유튜브 캡처


특히 어떤 예술의 정점은 당사자의 소감이 찍기도 하는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로 대상을 받은 박은빈의 수상소감이 그랬다. 나아가는 사회를 위해 묵묵히 정진하는 이들에 대한 위로임과 동시에 바라는 각자의 예술을 현실에서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응원이기도 했다. 타인과 세상에 대한 따뜻하고 이해깊은 자세의 필요를 상기하며 이러한 삶의 방식은 틀리지 않다는 연대의 메시지였다. ‘이상하고 별나지만 가치 있고 아름다운‘ 모두의 삶을 존중하자는 뜻기도 했다.



“사실 제가 세상이 달라지는데 한몫을 하겠다라는 거창한 꿈은 없었지만 이 작품을 하면서 적어도 이전보다 친절한 마음을 품게 할 수 있기를, 또 전보다 각자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성들을 다름으로 인식하지 않고 다채로움으로 인식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연기를 했었는데요, 그 발걸음에 한 발 한 발 같이 관심 가져주시고 행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제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가장 좋아 하는 대사는 '제 삶은 이상하고 별나지만 가치 있고 아름답습니다'라는 대사였는데요. 영우를 통해 이 이야기를 전할 수 있어서 정말 기뻤습니다. 나는 알아도 남들은 모르고, 남들은 알지만 나는 알지 못하는 그런 이상하고 별난 구석들을 영우가 자신 있고 아름답게 생각하라고 하는 것 같아서 많이 배웠습니다. 어렵더라도 자신의 삶을 인정하고 수긍하고 포용하면서 힘차게 내딛었던 영우의 발걸음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습니다."


백상예술대상 하지성 수상 소감 유튜브 캡처


 연극 <틴에이지딕>으로 연극 부문 연기상을 수상한 배우 하지성의 수상 무대는 9분 40초 가량의 또다른 작품이었다. 전동 휠체어를 타고 무대에 올라 “마이크를 더 내려야 하는데 아쉽군요”라며 일침을 놓는 첫마디로 시작한 뒤 “장애를 이용해 시간을 더 쓰겠다”며 너스레를 떨며 또박또박 말하는 수상소감에, “아버지 지금 이것도 현실입니다“라는 마무리까지 기승전결은 완벽했다.

 뇌병변 장애를 가진 수상자에게 핸드마이크를 쥐어주는 모습은 세심하지 못한 ‘현실적인 베리어 프리’가 반영돼 있었다. ’현실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버지‘가 말하는 현실은, 연극 배우의 궁핍하고 어려운 현실 이전에 이런 사소한 차별을 매 순간 맞닥뜨려야 하는 장애인으로서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부랴부랴 사람이 투입되어 내내 무릎을 꿇고 마이크를 붙잡고 있었는데, 이는 곧 차별의 현실에서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연대가 얼마나 중요하고 절실한 것이지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아버지 지금 이것도 현실입니다”라는 말은, 개인적 노력과 사회적 노력이 함께한다면 이런 현실을 계속 만들어 나갈 수 있으며 그렇게 나가야 한다는 비장애 중심 사회를 향한 외침이기도 하다.


백상예술대상 피식대학 수상 소감 유튜브 캡처


여기에 <피식쇼>의 TV부문 예능 작품상 수상으로 인고의 시간을 거친 ‘희극’에는 새 페이지가 쓰였다. 개그콘서트 등 각종 공중파 개그 프로그램들이 폐지되고 공채가 사라지면서 희극인들과 지망생의 설자리는 사라져갔다. 하지만 유튜브을 통해 우뚝선 희극인들의 기세는 대단했다. 혐오가 잦았던 과거와 달리 섬세한 관찰력으로 재미의 요소를 극대화 한 요즘의 유머는 수준이 높다. 특히 ‘한사랑 산악회’, ‘05학번이즈백‘ 등 각 세대의 면면을 다룬 상황극에서, 이제는 각 컨텐츠를 이어 세계관까지 구성하고 있는 ‘피식대학’은 이 흐름을 선도하고 있다. 미국의 토크쇼를 오마주 한 ‘피식쇼’는 전 세계인들에게 한국의 풍자와 해학을 전하고 있다. K-콘텐츠를 선도하고 있는 드라마와 영화, 음악 아티스트 들이 앞다퉈 ‘피식쇼’를 홍보 채널로 찾고 있고, 피식대학의 영향력이 유튜브를 넘어서고 있는 만큼 대중문화예술 속 높아진 ‘희극’의 위상에 괜한 뭉클함이 든다.


삶에서 가장 키우고 싶은 덕목중에 하나는 ’유머러스함‘이다. 혐오와 차별, 절망과 좌절이 반복되는 세상을 견딜수 있게 만드는 건 그 사이 완충작용을 하고 있는 웃음나는 시간들이기 때문이다. 예능상을 수상한 개그우먼 ‘이은지’는 “정말 예능은 혼자 할 수 있는 게 없더라. 받아주고, 받쳐주고, 같이 웃어주고, 울어준 같이 춤춰준, 많은 동료, 선후배가 계셨기에 상을 받게 되는 것 같다“는 수상소감을 말하며 엉엉 울었다. 누군가를 웃게 만드는 것도, 그래서 더 세상을 재밌고 살만하게 만드는 것도 모두 연대에서 나온다는 뜻이다. 대중문화예술은 우리 사회가 서로를 어떻게 지탱하고 있는 지를 보여주는 것이자 어떻게 하면 되는지를 알려주는 척도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백상이 남긴 여러 교훈은 깊다. 다음 시상식에서는 어떤 앞서나간 장면들이 나올지, 앞으로의 예술이 기대된다. 내년에도 왈칵 눈물이 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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