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만난 인연이 가장 좋을까?

#23. "나중에 우리 여행 동행으로 우연히 만나자."라는 말은 취소..

by 기록하는 슬기

주변에 회사원인 친구들에게 가끔 회사에 관련된 이야기, 그중에서도 회사 상사 때문에 힘든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나도 자연스럽게 마지막 회사에서의 팀장님이 생각난다. 그러고 보니 회사를 그만둔지도 벌써 3년 반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래도 퇴사할 당시 같은 팀원들과 대부분 관계가 좋은 상태로 나왔기 때문에 아직도 sns로 가끔씩 안부를 전하는 사이로 지내고 있다. 그중에서도 그나마 연락을 가장 자주 하는 사람은 동기도, 사수도 아닌 바로 팀장님인데, '세계 여행'을 간다고 퇴사를 하는 나를 이해해주고 응원해줬던 팀장님의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웠기 때문이다.


이렇게 들으면 그 전 팀장님이 현실에는 없을 천사 팀장님 같지만 그냥.. 음.. 보통의 팀장님이셨다. 나는 입사를 하고 1년 후에 갑자기 내가 있던 부서가 대대적으로 개편이 되면서 중간에 팀장님이 바뀐 케이스라 두 번째 팀장님과 일하던 초반에는 정말 적응하기 힘들었다. 게다가 사무실에서 자리도 팀장님과 나는 고개만 돌려도 모니터에 작은 글씨까지 보이는 거리였었다. 지금 와서 말하지만 워낙 꼼꼼하시고 예민한 성격이라 그 자리에 앉아있는 내내 꼭 감시(?)를 당하는 기분이었다. 가끔 말을 툭- 내뱉으실 때 상처를 받고 집에 가서 혼자 방구석에서 운 적도 많았다.


그래도 정말 다행이었던 점은 내가 일하는 스타일이 팀장님의 성향과 잘 맞아서 나를 좋게 봐주셨다는 점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팀 내에서 팀장님의 신뢰를 받았고, 팀장님의 오른팔이 되어갔다. 그렇게 팀장님과 팀원들 모두와 몇 번의 계절을 함께 보내면서 손발이 잘 맞아갈 때쯤, 나는 퇴사를 결심했다. 사실 퇴사를 결심할 때 가장 마음에 걸렸던 사람은 팀장님이었다. 일부러 더 미리 팀장님께만 퇴사에 대해 말씀을 드렸고, 팀장님의 부탁으로 인수인계와 마무리를 2개월 동안 하기로 했다. 그리고 팀장님께서는 혹시라도 여행이 끝나고 나서 회사에 다시 돌아오고 싶다면 꼭 자신에게 말을 해달라고 했다.


아무래도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며 일했던 사람이 팀장님이라 그런지 퇴사 후에도 가장 많이 생각이 났다. 세계 여행 중에 아주 가끔 한국 명절일 때면 먼저 카톡으로 연락을 드렸었다. 그때마다 팀장님은 sns를 통해 내 여행 사진과 글을 잘 보고 있다며 멋있다고 늘 응원해주셨었다. 내가 동남아시아 쪽에 있을 때는 휴가 때 시간이 맞으면 태국 방콕이든 베트남 호찌민에서든 한 번 만나자고까지 했었다.


여행 중 가끔 이렇게 팀장님과 연락을 할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팀장님을 회사가 아니라 지금 이렇게 여행을 하며 자연스럽게 알게 된 여행 동행이었다면 어땠을까?' 나이 차이도 얼마 나지 않고, 전반적인 성향과 좋아하는 것들이 비슷한 사람이라서 왠지 길 위에서 만났다면 정말 빠르게, 편하게, 친해질 수 있을 수 있는 인연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필이면 회사에서, 게다가 팀장과 팀원으로 만난 사이라는 게 아쉬웠다.



DSC04260.jpg 내가 마음을 줬던 만큼 아팠지만 배울 수 있었어. <사진 : 2017. 08. 함께였기에 완벽했던 순간>




여행을 하던 중 만났던 사람들과는 '한국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나이가 몇 살인지' 이런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그저 우리 모두 '여행자'라는 공통점만으로도 이미 서로에게 마음의 문이 반쪽은 열린 채 만나게 된다. 만약 그런데 여기서 취향과 성향이 비슷하다면 그 사람과 친해지는 건 시간문제다. 그리고 여행 중에는 보통 시간적, 심리적 여유가 있기 때문에 회사나 학교에서 어쩔 수 없이 얽히는 인연과는 달리 서로의 단점보다는 장점을 바라보기 쉽다. 내가 여행을 하던 당시, 만약 누군가와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 그 상황을 고르라고 한다면 '여행 동행'으로 만나는 게 가장 좋은 인연이라고 생각했었다.


길었던 여행이 끝난 지금 내게 여전히 '팀장님을 여행 동행으로 만났다면 어땠을까?', '여행 동행으로 만나는 인연이 가장 좋을까?'라는 생각을 하냐고 묻는다면, 답은 "아니다."

여행 중 정말 수 없이 많은 좋은 사람들을 길 위에서 만난 것만은 틀림없다. 하지만 여행이라는 특성상 각자의 계획대로 움직여야 해서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 하는 인연도 있었고, 여행이 길어지며 일상이 되었을 때 긴 시간 동안 매일 봤던 사람들 중에는 좋았던 첫인상, 첫 느낌과는 정반대로 기억된 사람도 있다. 여행이라는 특수한 상황이라는 것 때문에 짧게 봤을 때는 잠시 분위기에 휩쓸렸지만 여행이 길어지고, 또 여행이 모두 끝난 후 제자리에 돌아온 후 바라보니 결국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어디서 어떻게 만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가 가장 중요했다.


어디서, 어떻게 만나느냐에 따라 그 인연과 관계의 시작은 달라질 수 있겠지만 그 사람은 어디 가지 않는다. 지금만 보더라도 여행 당시에 헤어질 때 울고불고, 죽고 못 살 것 같았던 몇몇 동행들과는 민망하지만 몇 년째 연락을 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오히려 내가 정말 환경적으로 괴로워했었던 회사나 워홀, 알바 등을 통해 만났던 사람들 몇몇과는 의외로 꾸준히 연락을 이어가고 있다. 이것만 보더라도 결국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건 만난 장소, 때와 같은 '배경'이 아니라 어떤 '사람'을 만나서 서로를 어떻게 바라보고, 서로를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지와 같은 '마음'이 아닐까.







돌아보면 여행 중에 유독 진한 마음을 나눴던 사람들과 함께 했던 그 '순간'에는 모두가 진심이었다. 그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순간이 지나고 났을 때는 각자 저마다 그 순간을 어떻게 기억하고, 보관하는지 달랐다. 우리가 함께했던 순간을 영영 기억 속에만 머물게 내버려 둘 것인지, 아니면 그 순간과 같은 새로운 기억을 함께 만들고 싶은지는 그 관계를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했었는지에 따라 달랐다. 처음에는 우리의 관계를 생각하는 게 나와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힘들었고, 심지어 배신감마저 느껴졌었다. 그때 그 당시에 나눴던 약속이 나에게는 현재와 미래를 위한 것이었는데, 그 사람들에게는 그 '순간' 그뿐을 위했던 것 같아서.


그들을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미워하고, 밀어내면서 마지막으로 이 상황을 받아들이며 깨달은 것은 하나다.

누구를 어디에서, 어떻게 만났든 그 '순간' 속에서 느꼈던 서로의 진심은 진심이었다는 것.

하지만 나란 사람은 그 순간에 마음을 내어주면, 그 동시에 미래까지 마음을 주는 사람이라는 것.

즉, 아무리 과거에 영화 속 한 장면과 같은 아름다운 기억을 함께 만들었을지라도 지금 내 곁에 남아있지 않은 사람들은 '순간'에만 충실했던 사람이라는 것.


그래서 우리는 결국 나와 비슷한 마음의 무게와 마음의 결을 가진 사람을 옆에 둘 수밖에 없다는 것.








오늘도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제 글을 읽어주시는 여러분이 있어서 저는 오늘도 글을 쓸 수 있습니다.

항상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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