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저는 백수일까요? 작가일까요?

내가 글을 쓰는 이유

by 기록하는 슬기


얼마 전 나를 담당하시는 보험 설계사 아저씨와 통화를 나누던 중이었다. 내가 오랫동안 해외에 나가 있느라 휴대폰 번호부터 이것저것 서류상 수정해야 할 것들을 물어오셨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 하나가 전화기를 너머 내 귀에 도착했고, 그 질문은 몇 초간 나를 망설이게 만들었다.


슬기 씨, 그래서 요즘 무슨 일 하고 있지?


그렇다. 나는 지금 직업이 없다. 나이 서른에 1년 8개월 동안의 세계여행과 워킹 홀리데이를 마치고 한국에 들어오지도 언 8개월이 되어가는 시점에서 저기 저 질문이 불편하지 않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딱히 길게 설명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그냥.. 있어요."라고 대답하면 그러면 다들 그러더라.


"아 그러면 지금 백수야? 놀고 있나 보네. 좋겠다.."


근데 정말 애매한 건 나는 놀고 있지 않다. 내 요즘 일과는 매일매일 도서관에 가서 평균 6~7시간씩 글을 쓴다. 브런치에도 글을 올리고 6년 전부터 운영하고 있는 네이버 블로그에도 꾸준히 글을 올리고 있다. 그리고 8월부터는 한 달에 2개 정도의 공모전을 준비하며 나름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요즘 뭐하고 지내?"라는 질문에는 "저 요즘 글 쓰면서 지내요."라고는 말할 수 있지만,


"요즘 하는 일이 뭐야?"라는 질문에 "저 요즘 글 쓰면서 지내요."라고 대답한다면,

"아 그러면 그걸로 돈 버는 거야? 직업이 작가네?"라는 질문이 되돌아온다면 씁쓸하지만

"아니요. 아직 돈은 못 벌고요.. 아직 작가는 아니에요."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꼭 돈을 벌어야 직업인 건가?' 싶어서 '직업'이라는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봤다. '직업이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정한 기간 동안 계속하여 종사하는 일'이라고 나온다. 아, 나는 당장 글로 생계를 유지하지 못 하지.. 그렇지. 그런데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니 조금 애매하긴 했다. 나는 그저 글이 좋아서 쓴다기보다 내가 좋아하는 글 쓰는 일로서 앞으로 나의 생계를 유지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도 어떤 직업을 준비한다는 '취준생', '공시생'이라는 단어처럼 나도 '작지생(작가 지망생)'이라고 이야기해야 하는 걸까.






사실 나도 고민은 많았다. 글을 열심히 써보자고 다짐하기까지 긴 방황의 시간이 있었다. 1년 8개월의 장기여행과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마치고 2017년 12월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계획은 1년 더 호주로 워킹홀리데이(세컨드)를 보내고 오려고 했다. 갑작스럽게도 건강이 심하게 안 좋아졌고 나의 모든 계획이 무산되었다. 힘들게 받아놓은 세컨드 워킹홀리데이를 못 간다는 것도 허무했지만, 내가 글 쓰는 일 다음으로 좋아하는 커피를 만드는 일을 앞으로 못 할 거라는 그 사실도 나를 힘들게 했다.


호주에서 모아 온 돈이 얼마 되지 않아 집에서 쉬면서도 마음은 늘 불편했다. 몸이 조금 괜찮아진 후 틈만 나면 구직 사이트에 들어가 검색을 해봤다. '프리랜서 작가', '재택근무'라는 단어를 써봤다가 나중에는 잊고 있던 내 전공까지 끌어들여 '역사', '박물관' 이런 단어까지 검색해봤다. 여행이 끝나기 전 상상했던 내 미래의 모습과는 너무 다른 나의 모습이었다. 지금쯤 나는 호주 카페에서 조금 더 유창해진 영어로 손님들과 반갑게 인사하며 재밌게 일을 하고 있을 텐데.. 현실은 아직 낫지 않은 몸을 소파에 기대어 표정 없는 얼굴로 잡 코리아에서 '재택근무' 알바를 찾아보고 있다니.


그러던 중 한 가지 옵션이 떠올랐다. 여행 가기 전에 2년 정도 다니던 회사를 다시 돌아갈 수 있는지 물어보는 일. 왜냐면 내가 퇴사할 당시 팀장님께서 나를 너무 좋게 봐주셔서 여행을 하고 돌아와 다시 우리 회사와 일하고 싶으면 언제든 말하라고 늘 말씀해주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퇴사 직전에 부장님께서 재입사를 원하면 여행 가기 전 문서로 남겨준다고까지 해주셨다. 그때 나는 고민이 됐지만, 정중히 거절드렸다. 내가 여행을 가는 이유는 다시는 회사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떠난 것도 있었다. '회사'라는 곳이 맞는 사람은 희박하겠지만, 난 그동안 여실히 깨달았다. 내가 몸 담았던 회사 자체가 싫었던 게 아니라 나는 하기 싫은 일을 당시에는 참고 성실히 해내지만 결국은 언젠가 빵 하고 터져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냥 나는 내게 의미 없는 일을 하며 살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재입사라는 보험 하나를 만들고 떠나면 언제든 내가 갈 곳이 있다는 생각에 '여행'하는 그 시간에 집중하지 못할 것 같았다. 자꾸만 힘들면 포기하고 조금 쉬운 길을 택할 것 같았다. 사실 그게 쉬운 길은 전혀 아닌데 말이다.


어쩌면 거짓말처럼 하루아침에 갑자기 발목이 붓더니 말도 안 되게 발목, 팔목, 손가락이 모두 퉁퉁 부어올라 깁스를 하고 휠체어를 타고, 결국 입원까지 하게 되는 그런 일을 겪었다. 두 달 동안 혼자 거동도 못할 정도로 아팠고 그로 인해 내 계획이 틀어진 것을 자꾸만 원망하지 않기로 했다. 긴 시간 동안 생각해보니 그렇게 아픈 시간을 내게 줬던 건 아마도 '이제 정말 네가 하고 싶은 걸 해야 할 때가 왔다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 '이제 그만 방황하고 정말 네가 원하는 걸 도전해보라고.'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의미'를 두고 '보람'을 느끼는지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했다. 이 질문이 떠오른 건 대학생 때 내가 존경하던 교수님께서 해주셨던 이야기가 자꾸 맴돌았기 때문이다. 몇 년 전, 그 교수님과 친한 친구들 몇 명과 함께 하는 저녁식사 자리였다. 당시 대학교 4학년이던 나는 교수님께 여쭤봤다. "교수님은 공부를 계속해야겠다는, 교수가 되고 싶다는 그런 확신이 언제 드셨어요? 진로를 결정하게 된 계기가 있었어요?"

교수님은 대답해주셨다.

"글쎄.. 딱 어떤 계기가 있던 건 아니야. 아마도 나는 '화'가 났던 게 그 시작이었던 것 같아.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남들보다 못하면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는데, 이상하게 내가 더 많이 알고 있다고 자부했던 어떤 분야를 다른 아이가 더 잘 알 때 나는 나 자신한테 화가 나더라고. 그래서 고등학교 때는 특히 책을 엄청 읽었어. 그러고 나서 느껴지는 건 내가 잘하고 싶은걸 열심히 하고 나서 '보람'같은 게 느껴지더라고. 그게 시작이었던 것 같아. 같은 일이라도 어떤 '의미'가 자신한테 있는 일을 해야 오랫동안 할 수 있는 것 같아."


이 대답을 들었을 때 바로 떠올려봤다. 나에게 '보람' 있는 일이 무엇일까. 그 답은 쉽사리 나를 찾아오지 못했고, 당시 졸업 논문과 토익 시험에 쫓겼던 나는 나와 깊은 대화를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6년이 지난 지금에야 찾으려고 발악했고, 어쩌면 늦었던 만큼 더 힘들었다. 돌아보면 학창 시절 지방 학교였지만 성적은 늘 상위권을 유지했었다. 그래서 주변에서 '공부를 잘한다, 머리가 좋다, 암기를 잘한다.' 이런 말을 종종 듣고는 했었는데 그때 그 칭찬은 딱히 내게 어떤 감정을 일으키지는 못 했다. 그런데 중학교 시절 내가 쓴 편지를 받고 감동받아 눈물을 보였던 친구의 그때 그 모습, 그리고 시험 성적보다 글짓기를 하고 좋은 평가를 받았을 때, 재수할 시절 봤던 전국 논술 모의고사에서 몇 천명 중에 2등을 했을 때. 그리고 대학교 시절 서술형 시험을 치르고 나면 종종 교양 시간이나 전공 시간에 글을 너무 잘 쓴다며 교수님들은 "이슬기라는 학생이 누구지?"라고 묻곤 하셨고, 가끔 내가 썼던 글이 다음 학기 수업에 예문으로 쓰일 때도 있었다. 그중 어떤 수업은 100명이 넘는 학생들이 듣는 교양강의였는데 많은 사람들이 들고 있던 종이 위에 내가 쓴 짧은 글과 내 이름 석자가 있었을 때, 그 장면과 그 속에 내 감정을 잊지 못한다. 이런 순간 속에 난 짜릿했고 또 뿌듯했다.


아마도 무대 위에 서는 가수들이 그 짜릿한 기분을 잊지 못해 다시 어떻게든 무대에 서고 싶듯, 나 또한 그랬었다. 그래서 글을 늘 놓지는 않았다. 다른 직장에 나가면서도 블로그에 어떤 글이든 꾸준히 썼었고, 일기는 매일 써 내려갔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내 글을 좋아해 줄 때 가장 '보람'찼다. 어떤 '의미'가 있는 일이라는 것이 누군가에겐 요리가 될 수도 있고, 음악이 될 수도 있고, 공부가 될 수도 있고, 사람들 앞에서 웃음을 주는 일일 수도 있고, 제각각 다를 것이다.



나는 글을 체계적으로 배운 사람도 아니고 어떤 대회에서 큰 상을 받아 본 적도 없는 사람이다. 누군가는 내게 무모하다고, 늦었다고 할지라도 중요한 건 '내'가 좋다는 것이다. 글을 쓰고 한 명이든 두 명이든 그게 누가 됐든 그들이 공감을 하고 조금이나마 위로가 됐다면 난 그걸로 된 거다. 내가 글을 쓸 이유는 충분히 생긴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일도 글을 쓴다. 아직은 이 일로 '돈'을 벌지는 못해서 직업이 작가라고 말은 못 하지만, 확실한 것은 난 글을 쓰는 사람이다. 그리고 지금 내가 보내는 이 시간은 작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라는 것.


그럼에도 가끔 어느 서류 위 '직업'이라는 칸 위에서 내 손은 잠시 멈춰있을 것이다. '뭐라고 적어야 하지?'라고 고민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언젠가 망설임 없이 그 종이 위에 '작가'라는 두 글자를 적는 그 날이 오길 기다리며 더 많은 글자들을 써 내려가는 일이다.




앞으로 누군가가 직업을 묻는다면 조금은 길지만 이렇게 이야기해봐야겠다.


"저 노는 건 아닌데요, 그렇다고 돈을 버는 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저 열심히 글 쓰고 있어요. 작가가 될 거거든요."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공감과 댓글은 글 쓰는 저에게 큰 힘이 됩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