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는 왜 '제주'를 떠나지 못하는 걸까.

내가 제주를, 제주살이를 사랑하는 이유

by 기록하는 슬기


제주에 내려온 지 벌써 2개월 하고도 2주가 지났다. 처음에는 '제주라는 낯선 곳에서 매일매일 글만 써보자'라는 생각 하나로 내려왔다. 그 다짐이 간결하고 확고했기 때문이었을까. 정말로 작년 11월 중순 즈음 제주도에 오고나서부터는 브런치에서 했던 1일 1 글 프로젝트와 지금도 진행 중인 메일 구독 서비스 '슬기 드림'까지, 하루에 많게는 두 편의 글을, 최소 한 편의 글을 매일 연재하는 중이다.


이렇게 하루에 매일 새로운 글을 발행할 수밖에 없도록 프로젝트를 자발적으로 만들어내고 또 진행을 하다 보면 가끔 헷갈릴 때가 있다. 내가 지금 있는 이곳이 경기도 본가의 내 방인지, 아니면 아직은 모르는 곳과 것들 투성이인 제주도 서귀포인지를. 그만큼 내 일상 속에서 정신적으로 가장 긴 시간, 가장 높은 집중력을 소모하는 일은 '글 쓰는 일'이고, 내 신체가 가장 오래 머무르는 곳은 '노트북이 놓인 책상과 의자' 앞이다.



며칠 전이었다. 자주 가는 카페로 가는 걸어가는 길, 누군가가 나를 보고 반갑게 인사를 해왔다. 작년에 제주도에 내려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지내던 호텔에 있던 편의점에서 매일 같은 시간에 마주쳐서 인사만 하고 지냈던 분이었다. 내가 그 이후로 다른 동네로 이사를 오게 되면서 그분을 만날 일이 없었는데 이렇게 길거리에서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그분과 짧게 안부인사만 나눌 줄 알았지만 그분은 나와 가는 방향이 같다면서 자연스레 함께 걸어가며 대화를 나누게 됐다.


알고 보니 그분도 원래는 한 달 정도만 제주에 있다가 다시 육지로 올라가려는 계획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살다 보니 '한 달만 더 있을까?' 하는 마음에 이끌려 이제는 제주에 온 지 6개월이 넘었다고 했다. 나와 비슷한 상황에, 나보다 살짝 먼저 온 사람이 해주는 제주 라이프 이야기라 그런지 공감도 많이 되고 또 도움이 많이 됐다. 대화 도중 그분께서는 내게 대뜸 이렇게 물어보셨다.

"그런데, 왜 '제주'였어요?"

"네?"

"왜 많은 도시 중에 '제주'로 오신 거예요?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나 해서요."


그 질문은 어쩌면 내가 제주에 내려오기 전, 제주에 내려오자마자 많은 사람들에게 받아오던, 그리고 스스로에게 던지던 질문이기에 그다지 새롭지는 않았다. 하지만 제주에서 보내는 시간이 '일상'이라고 불리는, 이 상황 속 지금 내게는 꽤 신선한 충격을 주는 질문이었다.


나는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음..." 소리를 내며 입술을 삐쭉 모으고 잠시 하늘을 쳐다봤다. 속으로 생각했다. '왜 제주였지..?, 왜 나는 제주에 온 거지? 그리고 왜 나는 제주에서 앞으로 더 머물고 싶은 걸까?'

명확한 답은 떠오르지 않았지만 너무 긴 침묵을 지키면 안 될 것 같아 일단은 가벼운 이유부터 차근차근 나열하기 시작했다.


지금으로부터 8년 전 홀로 제주 여행을 왔을 때 그때 이미 나는 제주에 홀딱 반했다는 이야기, 그 후로도 제주에 오랫동안 살고 싶어서 이주를 남몰래 준비했었다는 이야기, 어쩌다 보니 다른 나라를 여행하다 제주를 잊고 있다가 이번에 현실적인 상황과 그때 남은 제주에 대한 애정이 지금 나를 제주에 있게 했다는 이야기까지 전했다. 그분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도 혼자 처음 제주로 여행 왔을 때 그 기억이 너무 좋았다고 공감해주셨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분과 나는 가는 방향이 달라서 기분 좋게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혼자 걸어가는 내내 나는 아까 그분이 내게 던진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봤다.

'왜 제주였어? 그리고 지금 너는 왜 제주야?'

나는 결국 그날 하루가 끝날 때까지 그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을 찾지 못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난 어느 날 제주가 보여준 장면.


그리고 오늘 아침 쨍한 햇살에 눈이 부셔서 잠이 깼다. 이제는 무의식에도 꼭 눈을 뜨자마자 창밖을 바라보는 일은 습관이 돼버렸다. 오늘 아침 유난히 강렬한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파란 바다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이런 혼잣말을 했다.

"아.. 이런데 어떻게 여기를 떠나.."


순간 머릿속에 번뜩하고 떠올랐다. 며칠 전부터 내가 그렇게 찾아 헤매었던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은 것 같았다. 그렇다. 내가 제주로 떠나 온 이유, 그리고 지금도 제주에 있는 이유는 원체 한 줄로 정의 내릴 수 없었던 것이었다. 원래 정말 어떤 대상을 좋아하게 되면 좋아하는 이유를 딱 한 가지로 말할 수 없듯이 어떤 장소를 좋아하게 돼도 그런 것이었다.


떠올려보니 나는 제주에서 매일 글을 쓰는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도 정말 자주 제주에 감동을 받았다. 이를테면 제주라는 곳만이 보여줄 수 있는 풍경을 바라보며 하루에도 몇 번씩 '너무 좋다..'라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제주라는 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바람과 햇살에, 심지어 비바람과 눈보라를 맞을 때도 소리를 깩깩 지르면서도 나는 이것마저 모두 이곳에서 만들 수 있는 추억이라며 웃었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지금', '여기'이기에 나와 이 순간을 함께 할 수 있는 신기하고 특별한 나의 인연들로부터 가장 잦고도 깊은 감동을 받고 있다.



나는 20살 이후 줄곧 타지 생활만을 해왔던 사람인지라 낯선 곳에서 살아간다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지 않은지 오래됐다. 하지만 낯선 곳이 익숙한 곳이 되고, 모르는 사람이 아는 사람이 되고, 내일을 예측 가능할 수 있는 일상이라는 삶이 생긴 후에 '익숙한 곳을, 아는 사람을, 그 삶을' 떠나는 일이 여전히 가장 두렵다.


하지만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장소를 만나고 그 안에서 그러한 사람들을 만나는 일의 '끝'을 두려워하는 것은 어쩌면 진심으로 내가 이 곳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는 뜻임을.

그리고 이제는 조금 더 알 것 같다.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장소, 사람, 그 어떤 대상의 '끝'을 바라보는 것은 그 대상을 사랑하는 방법 중 하나라는 것을. 그 끝을 바라보고, 직시한다는 것은 지금 여기에서 나와 함께하는 사랑하는 존재들과 그 시간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만큼 나는 그들에게 진심으로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있다는 뜻일 테니.










'제주'라는 곳을 오게 된 데는 그 어떤 이유보다도 지금까지 쌓인 수많은 선택과 알 수 없는 타이밍들이 운명적으로 저를 데리고 왔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왜 제주에 계속 있고 싶어?'라는 물음에는 단순하게 대답하고 싶어요.

"떠나지 못하겠어. 확실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이라고요. 그게 정말 제 진심이니까요.

제가 이곳을 떠나는 날이 언제일까요. 이렇게 1개월, 1개월 살다 보면 그 '언젠가'가 몇 개월 뒤가 될 수도 있고, 몇 년 뒤가 될 수 도 있고, 아니면 몇십 년 뒤가 될 수도 있겠죠.


그런데 확실한 것 하나는 알아요.

어딘가를, 누군가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요, 그곳에서 그 사람 곁에서 지키고 싶은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에요. 앞으로도 제가 이곳을 더 오랫동안 떠나기 어렵다면 아마 저도 이곳에서만 지키고 싶은 무언가가 생겼을 것이라는 뜻이겠죠.

저는 그 무언가가 생긴다면 눈에 보이고 손으로 잡을 수 있는 물질적인 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면 좋겠어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느낄 수 있는 어떤 감정과 세월, 그리고 믿음 같은 것들 있잖아요.

그 무엇으로도 대체 불가능한 것들이 저를 꽉 잡았으면 좋겠어요.


지금의 저는 제주의 차갑지만 부드러운 바람과 해 질 녘 분홍빛 하늘과 파란 바다만으로도 충분하지만요.








오늘도 제 이야기를 찾아주시고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눈에 보이는 것들과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모두 느끼고, 기록하고, 남기고, 나누겠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브런치 새 글은 매주 월요일, 목요일에 발행됩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