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나에게 '성공'이란 질문을 던져보며.
아마도 작년이었을 거다. 호주 퍼스에서 워킹홀리데이 생활 중에 가끔 좋아하는 가수들의 노래가 듣고 싶으면 일반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가 아니라 유튜브에 들어가 라이브 영상을 찾아보곤 했었다. 그날은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 중 한 명인 '하림'의 노래를 듣기 위해 유튜브에 검색을 했다. 비교적 최근에 박진영이 진행했던 한 음악프로에 윤종신과 함께 출현했고 오래된 윤종신 팬인 나는 그 영상을 망설임 없이 눌렀다. 그리고 영상이 시작됨과 동시에 하림은 '난치병'이라는 노래를 라이브로 불렀고, 역시나 좋았다. 영상 중간중간 하림의 노래를 들으며 완전 푹 빠져있는 박진영의 얼굴이 잡혔다.
난치병 라이브가 끝났고 박진영, 하림, 윤종신 이렇게 셋이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이미 박진영의 눈에서 하트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고 노래가 끝나는데 '이렇게도 아쉬울 수가 없었다고, 자신이 하림의 팬이라고' 말하며 연신 칭찬을 해댔다. 그리고 질문을 했다. '왜 이렇게 대중성과 흥행에 욕심이 없냐고, 솔직히 자기 자신이 너무 아쉽다고' 했다. 이런 훌륭한 가수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며. 그 부분은 나도 동의하는 바였다. 윤종신도 '좋니'라는 노래로 1위를 탈환하기 그전까지는 사람들이 '월간 윤종신'이라는 것도 잘 몰랐을뿐더러, 뮤지션이라기보다는 예능 MC로 더욱 알려져 있었으니까. 내가 좋아하고, 정말 멋지다고 생각하는 예술가가 대중들에게 인정받지 못할 때 느끼는 아쉬움을 너무 잘 안다. (대부분 내가 좋아하는 가수, 배우, 작가들은 뒤늦게 빛을 보거나 혹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박진영은 '솔직히 음악 차트 1위가 욕심나지 않냐'라고 물었다.
그때 하림이 쑥스러워하며 대답했다. "음.. 부담 스러 울 것 같아요.."라고. 그러자 박진영이 이해가 안 가는 듯,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고, 돈과 명예를 얻는다는 게 왜 부담스럽냐며 그것 때문에 가수를 하고 싶어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때 또 하림이 대답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제 노래를 알고 계시거든요. 그게 꼭 성공과 직결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오히려 단단하지 않은 마음에 욕심을 내다보면 제가 음악을 싫어할 수도 있게 될 것 같았어요.. 20대에는 아일랜드 음악 같은 게 좋았고, 점점 성향이 바뀌잖아요. 그냥 좋아하는 거 따라가다 보니 그렇게 됐는데, 성공은 뭐.. (좋아하는 일) 오랫동안 하면 그게 성공이 아닐까요..?"라고. 처음에는 별 대수롭지 않게 이 이야기를 들었었다.
그 후 이 가끔 하림의 라이브가 듣고 싶을 때 이 영상을 자주 찾아들었는데, 여러 번 듣다 보니 그 말이 자꾸만 내 머릿속에 남았다.
"오히려 단단하지 않은 마음에 욕심을 내다보면 제가 음악을 싫어할 수도 있게 될 것 같았어요.. (...) 성공은 뭐.. 오랫동안 하는 게 성공 아닐까요.."
사실 사람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오랫동안 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더 솔직해지자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른 채 살아간다. 그런 고민 자체를 할 수 있는 시간적, 환경적 여유가 없는 이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게 가장 큰 이유기도 하지만 대부분 그 고민 앞에서 포기하고 내 마음의 소리를 제대로 들어보려 하지 않고 미리부터 겁을 먹고 외면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사실 나도 대학교 졸업 후에 답이 도저히 나올 것 같지 않은 그 질문 앞에서 자꾸만 도망가고 싶었다. 그래서 그냥 사회적 알람에 맞춰 취직을 해야 하나 싶었었다. 그렇게 마음먹고 두꺼운 토익책을 딱 펼쳤는데, 그렇게도 괴로울 수 없었다. 공부 자체가 괴로운 게 아니라 자꾸 마음속에서 이건 아니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그 마음속의 말을 무시하려고 노력하는 그 과정이 스스로 나를 더욱 힘들게 했고 괴롭혔다. 그리고는 그냥 무작정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내가 무엇을 할 때 좋았는지, 많이 웃었는지, 행복이라는 감정에 가까웠었는지. 당연히 책상에 앉아만 있는데 답이 나올 리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답이라고는 딱히 없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그 정답을 찾고 싶었고, 그러려면 떠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잠시 혼자 멀리 떠나면 '정답에 가까워지게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그래서 한 달간 처음으로 혼자 배낭여행을 태국과 캄보디아로 다녀왔다. 그때 정말 나는 '행복'했다. 이렇게 좋아도 되나 불안을 느낄 정도로. 아마 이 여행이 30년 내 인생을 통틀어 나에게 큰 의미와 전환점을 준 사건 중 하나일 것이다.
그 후, 한국에서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서 다시 긴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때 정말 서울에서 다양한 일 많이 해봤다. 서울 대형 마트에서 비타민 판촉 행사, 면도기 판매, 유산균 영양제 판매, 마트 상자 까대기, 설이나 추석 명절 때는 한 번도 못 쉬고 일부러 명절 세트 판매, 그리고 크리스마스 전후 2주는 대형 장난감 매장에서 아이들한테 새로운 장난감 시연해주면서 판매까지.. 이런 종류의 아르바이트는 대부분 길어야 2~3주 정도 진행하는 단기 아르바이트의 형식이었다. 내가 단기 알바에 빠지게 된 이유는 최저시급보다는 높은 일당도 한몫했지만 한 2~3주 빡세게 일하면 1~2주는 풀로 쉴 수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서울 생활을 하다 보니 돈은 돈대로 잘 안 모이고 고생은 고생대로 하는 이상한 순환이 계속되고 있었다. 내 목표는 분명 다시 돈 모아서 여행을 길~게 떠나는 것이었는데 이상하게 자꾸 내 목적지를 잃고 여기저기 헤매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길게 잡고 아예 취직을 해서 2년 정도 돈을 모아서 떠나는 방향으로 계획을 바꿨다. 중간에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그래도 난 느리고 더뎌도 한번 마음먹은 것은 하는 사람이긴 하다. 그렇게 노래를 부르던 세계여행을 마음먹고 3년 만에 떠났다.
그리고 그 긴 여행 속에서도 또 느꼈다. '행복하다..'라는 생각보다는 그냥 더도 말고 '이렇게 여행하면서 살고 싶다..'
아마 저기 하림이 말했듯 성공이란 '오랫동안 하는 거..'라는 말이 긴 여행이 끝나고 한참이 지난 지금에서야 깨닫는다. 사람들 모두가 각자 개개인이 다른 생각과 다른 목표를 가지고 살듯 '성공'이라는 개념도 다 다를 것이다. 근데 내가 오랫동안 고민해오고 또 앞으로 내가 살고 싶은 모습의 성공은 아마 하림이 말한 '성공'과 가장 가까운 것 같다.
늘 여행하며 살고 싶다는 나의 진지한 말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었다. "그건 누구나 갖는 생각이지. 여행해서 안 좋은 사람이 어디 있어."라고.. 그땐 그 말이 맞는다고 인정했고, 그 인정은 나를 예전처럼 다시 괴롭히기 시작했다. '여행하면서 먹고살기는 힘들지.. 그래 그러니까 하기 싫더라도 현실적인 직업을 찾아보자..'라고 자꾸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 근데 문제는 그 최면이 나에게는 더 이상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힘들었고, 지금도 사실상 뚜렷한 하나의 방향을 못 찾았기에 방황하는 중이다. 하지만 요즘 들어 조금씩 확신이 드는 것 중에 하나는 분명 나란 사람은 '좋아하는 일을 오랫동안 하며 살 것'이라는 마음이다. 그냥 그렇게 살아야 하는 사람인 것을 깨닫고 있는 요즘이다. 그러니까 나한테는 그게 성공적인 삶이 되는 거고.
우리가 살면서 허무하고,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은 인생이라는 긴 레이스 속에 시도 때도 찾아오는 장애물을 만나 가끔 넘어졌을 때이기도 하겠지만, 아마도 나와 맞지 않는 목적지를 맞혀놓고 뛰어가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스스로는 분명 '나의 즐거움'을 좇는다고 해놓고 나도 모르는 내 마음속에 분명 욕심이 있었다. 남들에게 더 인정받고 싶은 욕심, 더 관심받고 싶은 욕심.. 당장 그러한 결과가 나오지 않으니 자꾸만 마음은 초조해지고 스스로를 자꾸 작게 만들었다. 결국 이 욕심이 그동안 나를 행복하지 않다고, 불행하다고 만든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들어온 '글 잘 쓴다'라는 칭찬들이 오히려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은 아닐까 원망 아닌 원망까지 했다. 차라리 그 이야기를 듣지 않았더라면, 내가 이런 욕심을 안 부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그러다가 긴 여행을 떠나기 전 오랫동안 나에 대해서 고민하던 그때가 불현듯 떠올랐다. 언젠가 주변 지인들이 "굳이 그렇게 여행을 길게 떠나야겠어? 다녀와서는 어떻게 하려고?"라는 질문에 "나는 그냥 그게 좋아. 여행하면서 글 쓰고, 그리고 누군가 내 글을 보면서 공감해주고 위로받고. 다녀와서 책이든 뭐든 내 이야기를 써보고 싶어."라고.
맞다. 내가 저런 말을 했었지.. 그리고 실제로도 난 글 쓰고 내 글을 보고 누군가가 반응을 해줄 때, 그때가 가장 '보람'차고 기분이 좋다. 꼭 대중의 관심과 인기가 아니라 그냥 난 그 자체를 좋아했던 사람이었다. 지금 방황하고 고민하는 이 시간도 분명 글 쓰는 사람한테는 더욱이나 필요한 시간일 것이다. 늘 즐겁고 늘 좋기만 하면 사실 그게 좋은 건지 모른다. 세상의 이치가 그렇듯, 밝음은 어두움이 있기에 존재하는 것. 그러니 지금 어두운 이 시간을 내 방법대로 견뎌내고 일어서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오랫동안 하는 방법'에 조금은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그래도 분명한 건 이 시간들이 단단한 내 마음을 만드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제가 두고두고 보는 이 영상 링크 함께 올립니다.
하림 라이브 공연도 예술이지만, 제 글에 나온 대화 부분만 보고 싶다면 6:46부터 보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