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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아닌 내 인생이지만 내가 좋다고요.

서른, 열등감이 불쑥 나를 찾아올 때.

by 기록하는 슬기


오늘 태풍 때문에 집이랑 꽤 멀리 떨어져 있는 도서관도 못 갔고, 운동도 못 나갔다. 아마 오늘 하루 종일 100 보도 채 걷지 않을 만큼 활동량은 전혀 없었는데 배는 여전히 고파왔다. 오늘도 저녁식사로 달걀과 야채를 먹고 아빠, 엄마와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그때, 아빠는 해외에 나가 있는 친한 친구 H에 대한 안부를 물어왔다. 나는 얼마 전 들은 H의 취직 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그녀의 안부를 전했다.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엄마가 부러움 섞인 목소리로 한 마디 했다.

"OO는 실력이 좋은가 보네.. 그 전 직장도 좋았고, 지금 준비한다는 곳도 그렇고.."



열등감이라는 게 이런 걸까. 나는 10년 전이지만 재수까지 두 번의 수능 실패 후 가슴 깊은 곳에 '시험에 대한 트라우마' 같은 게 깊이 박혀있다. 어쩔 수 없이 대학교를 졸업하기 위해서 토익이나 다른 자격증 공부를 하며 나름의 성과도 냈었지만 고3, 20살 때 연타로 받은 그 상처는 쉽사리 극복되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엄마의 저 한마디를 듣고 나는 쿨하지 못하게 이렇게 말했다.

"아, 내 생각에는 실력 자체보다도 그 친구가 시험공부를 하는 그 요령을 잘 아는 것 같아. 스스로도 그렇게 말했고."

내 가슴 깊은 곳에 있는 이런 열등감 섞인 한 마디를 듣고 아빠는 내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그래, 그렇게 시험을 잘 보는 스타일들이 있더라고~" 라며 내 말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러자 엄마는 "그래도 다 실력이 있으니까 그렇게 딱딱 자기 계획에 맞게 회사도 들어가고 하는 거지. 시험 성적도 잘 나오고.. 걔는 확실히 뛰어나나 보다.."라고 한마디를 더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이 이야기에 대해 길게 말해 봤자라고 느껴졌다.

나도 엄마의 말에 동의하며 "응~ 맞아. 걔 공부도 잘했지. 고등학교 때도 성실했잖아."

나의 이 한마디를 듣고 엄마는 어떤 말을 꺼내려다가 참는 듯 보였고, 한 숨 짓는 소리를 냈다.


내가 예민했던 걸까. 작은 한숨짓는 소리에 요 몇 달간 슬럼프 기간 때 매일 흔들렸던 멘탈이 다시 돌아오는 것 같았다. 나름 극복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걸 스스로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 순간 나는 또다시 작아져야만 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둘 다 과하면 좋지 않지만) '자만''자학' 둘 중 굳이 하나만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면 이 세상을 살기에는 '자만'이 낫다고 한다. 그렇지만 나는 '자학'이 너무 편하고 익숙한 인간이다. 가슴 깊은 곳에서 스스로 생각하기에 내가 잘 났다고 느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외모 건 실력이건 어떤 면에서도. 30년 살아오며 부모님의 기대에 충족해준 적도 없다. 굳이 있다고 하면 고등학교 때 학교 성적이 좋았던 것.. 그때 기대가 워낙 커서 그랬는지, 나의 대학 입시 실패는 엄마에게도 나에게도 작지 않은 상처였다. 그때 엄마는 재수 후 내 성적을 보고 너무 실망했고 나와 몇 달간 말을 안 했다. 사실 그때 엄마만큼 아니 더 힘든 건 당사자인 나였는데 말이다.


그 후, 울며 겨자 먹기로 간 대학교에서 하루도 수업에 빠지지 않고 열심히 공부했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리석지만, '내가 이 학교에 올 사람이 아니라는 것.' 그거 하나를 입증하고 싶었다. 여기서 1등을 해야 나에게 실망한 엄마한테 증명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때 실수였다고. 나 그렇게 보잘것없는 실력을 가진 아이가 아니라고.' 그렇게 오기로 공부한 나는 대학교 내내 좋은 성적을 받았고 학년은 물론 과 전체로도 첫 번째, 두 번째 성적을 놓지지 않았다. 아마 그때 엄마는 나에게 기대 아닌 기대를 다시 하셨던 것 같다. 엄마가 원하시는 공무원이나 학예사 쪽으로 진로를 선택하게 되어도 내가 공부를 곧 잘 따라갈 것이라고.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었을 때 조교 선생님께서 7급 공무원 견습 직원에 대한 시험 정보를 알려주셨다. 지금 학과 성적도 좋고, 영어 성적도 괜찮으니 다른 시험만 준비하면 승산이 있을 것 같다고 하셨다. 고민을 하다가 나는 부모님께 이 이야기를 전했다. 엄마는 좋은 기회가 아니냐며 한번 해보는 게 어떻냐고 하셨다. 나도 그때만큼은 '7급'이라는 간판에 끌렸고, 이번에는 엄마가 원하는 걸 한번 해드리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를 위해서가 아니라 재수 때 받은 내 상처를 이런 방법으로 극복하고 싶었던 것 같다. 엄마는 공부를 시작하게 되면 지원을 해주신다고 하셨고 나는 토익학원을 다니며 열심히 공부를 했다. 생각처럼 단기간에 고득점을 받지는 않았지만 열심히 한 만큼 성적은 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스스로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오랜 시간 고민을 하다가 엄마에게 말했다. '공무원은 내 길이 아닌 것 같다고.' 아마 엄마가 하라는 대로 할 인간이었다면 애초에 대학 입시에서 그렇게 쓴 맛을 봤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엄마는 고3 때 내가 지방 국립대 사대에 가길 원하셨다. 당시 내 내신 성적이 상당히 좋아서 엄마가 썼으면 좋겠다고 하는 곳을 수시 전형으로 지원하게 된다면 90%는 합격이었다. 중요한 건 나는 '사대'도 싫었고, '지방대'도 싫었다. 그때는 무조건 in 서울, 그것도 유명 대학교에 가야 한다는 (헛된) 목표가 있었다. 고3 수능 때 사실 눈을 낮추면 인 서울은 가능했다. 하지만 내가 원하지 않는 학교에 가는 게 죽기보다도 싫었고 우기고 우겨서 재수를 했다. 재수 결과는 처참했고 결국 내가 붙은 곳은 고3 때 수시로 써서 가기 싫었던 지방 국립대보다도 낮은 성적이어도 갈 수 있는 다른 지방 국립대였다.


그때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했다가 결국 처절한 실패를 보여줬고, 대학교 졸업 후에도 내가 하고 싶은 길로 가겠다고 하고 아직 별다른 결과물을 보여준 게 없다. 과정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 과정을 버티게 해주는 것은 중간중간 맛보는 결실의 달콤함이다. 난 아직 그 달콤함을 제대로 맛본 적도 없고,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들에게 보여준 적이 없다.





우리나라에서 대학교에 대한 콤플렉스들은 흔하게 갖고 있겠지만 나에게 재수 실패가 더 큰 트라우마로 남았던 건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과 믿음이 그 이후로 바닥을 쳤기 때문이다. 뭐만 잘 안 풀리면 모든 것을 대학 입시 실패 탓으로 돌렸다. 아직도 나는 학력, 대학교 이런 부분에서 자유롭지 않다. 하지만 너무 잘 알고 있다. 그까짓 거 별 거 아니라는 거. 대학교 유명대 나온다고 대단한 인생이라거나, 행복하거나, 너무 잘 풀린다거나 그러지 않다는 것 아주 잘 안다. 하지만 가끔 나보다 잘 나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특히 엄마가 하면 다시 자존감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엄마 본인도 속상해서 하는 말이겠지만 가끔 나한테 그런 말을 했다.

"고등학교 때 공부 잘하면 뭐해. 대학교 때 그렇게 공부 잘하면 뭐해.
지금 아무것도 아닌데.."



아무것도 아니라니.. 아무것도 아닌 걸 너무 잘 아는 사람한테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건 너무 잔인했다. 이런 말을 자주 들어와서 인지 오늘 엄마가 어떤 말을 하려다가 한숨짓고 참은 이야기가 나한테는 자꾸만 이렇게 들렸다. '너도 학교 다닐 때 성실했잖아.. 근데 너는 왜 이렇게 안 풀려..'라고.


나도 상상도 못 했다. 내가 서른 살에 이렇게 있을 거라고는. 서른이면 갑자기 인생이 바뀌어진다기보다 제대로 된 내 일, 혹은 믿음직스럽게 서로를 사랑하고 있는 연인, 아니면 조금 더 단단해지고 성숙해진 내면을 가진 멋진 사람이 되어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나한테는 그중 단 하나도 없다.






그 대화를 끝으로 거실의 온도는 내려갔다. 아무도 명확한 어떤 단어도, 어떤 확실한 문장을 내뱉지 않았는데 우리 셋은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미 모두가 느꼈을 것이다. 각자의 입장에서 각자의 생각을 했을 거다. 나는 아직도 극복하지 못한 트라우마와 열등감에 휩싸여 다시 초라한 나를 마주했고, 엄마는 속상함과 답답함에 순간 이러고 있는 내가 마음에 안 들었을 테고, 아빠는 내 입장을 생각하며 어떻게든 이 분위기를 풀기 위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고민했을 것이다.


몇 분 동안 어색한 TV 소리만 흐르던 거실에 아빠는 오늘 새롭게 이슈가 되고 있는 한 이야기를 꺼내셨다. 기계적으로 리액션을 하고 한참 동안 멍하니 앉아있었다. 아직도 나는 그 순간 들리는 소리, 앉아있는 소파, 들이고 내며 마시고 있는 공기마저 어색했고 불편했다. 표정관리가 안된 채 방으로 들어와 버렸다. 방바닥에 그대로 눕고 눈을 감았다. 우울해지기 딱 좋은 핑곗거리였다. 불을 끄고 그냥 혼자 생각이나 할까 하다가 순간 드는 생각이 있었다. 며칠 전 나는 이 곳 브런치에 '슬럼프를 믿어요.'라는 글을 발행했었다. 그 글 속 나는 참 괜찮았다. 그 글 안에 나도, 그 글을 쓰는 나도. 불과 며칠 전 나는 그럼에도, 나라서 괜찮다고 말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오늘 이런 말 하나에 흔들리고 있는 모습이 순간 창피했다. 요즘 스스로 조금은 단단해졌다고 느꼈었다. 다시 힘든 감정 속으로 되감기를 하기 싫었고,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차라리 지금 이 감정을 그대로 솔직하게 기록해보자.' 그리고 나는 접혀있던 노트북을 활짝 열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이렇게 쓰고 있다.



이렇게 글을 쓰니 조금은 가라앉는다. 그리고 보인다. 조금 전의 열등감이 온몸에, 온 얼굴에 가득 묻어 나와 어떻게든 나를 인정하려 하지 않던 내 모습이. 지나간 나의 과거를 따뜻하게 안아주지 못하면 결국 그 과거에 갇히기 마련이다. 나도 어렸을 때부터 학교, 가정에서 알게 모르게 세뇌를 받아왔다. '공부를 잘하고 좋은 대학교에 가야 한다. 그리고 큰 기업, 공무원, 돈 잘 버는 일을 해야 해.'라고. 그래도 나는 흔히 말하는 '좋은 대학교'에 못 가는 바람에 그 세뇌 교육에서 빨리 벗어났고 이제는 확실히 안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좋은 학교, 좋은 회사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갖는 좋은 생각과 그에 따르는 좋은 행동이라는 것. 어떤 유명한 대학교에 나온 사람들보다 멋진 인생을 살고 싶었다. 덕분에 나는 더 많이 움직였고, 넘어졌고, 또 일어나는 방법도 배웠다. 그리고 하나 더 확실한 것은 우리가 제각각 지문이 다 다르듯, 잘할 수 있는 일도, 잘하고 싶은 일도, 좋아하는 일도 다 다르다는 것이다. 나도 잘하는 게 많다. 그리고 잘하고 싶은 일도 있다. 그 누구든 나에게 다른 누군가와 비교하며 내 인생을 걱정한다면, 이제는 솔직하게 그리고 당당하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나보다 먼저 하는 사람들이 가끔 부럽기는 해도 그 누구의 삶이 부럽지는 않아요. 전혀. 예를 들면 어떤 신인작가가 책을 출간했다면 책을 출간했다는 그 사실 하나는 부럽지만 그 인생이 부럽진 않아요. 내가 그 누군가에 삶을 살아도 분명 '나'는 '나'라서 만족을 못 할 것 같거든요.

지금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도 나한테는 꿈도 있고, 희망도 있잖아요. 그리고 나를 움직이는 열등감도 있고, 그걸 극복하고 싶은 오기도 있고요. 이렇게 하루하루 '나'로서 살면 이게 '내 인생'인 거죠 뭐.

결국 멋진 인생이란 '내' 인생을 사는 것 아닐까요?"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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