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신의 '이방인'의 삶을 응원하며.
지난 추석 연휴, TV 채널을 무심코 돌리다가 어느 채널에서 리모컨 위 내 엄지손가락이 멈췄다. 윤종신이 12년 간 지켜오던 라디오스타를 떠나는 날 특집 재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나는 윤종신이 예능 MC로 활약하기 이전부터 '뮤지션 윤종신'의 오래된 팬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윤종신의 팬이 된 이유는 그가 만든 음악이 내 감성과 너무도 잘 맞아서 좋아하기도 하지만 윤종신이라는 사람 자체를 좋아한다.
TV에서 나오는 장난기 다분한 그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인간 윤종신은 고민도 많고, 생각도 깊고, 또한 부지런한 사람이다. 그가 가끔 토크쇼에 나와하는 이야기들 중에 아직도 기억에 남는 대사들이 있을 정도로 나와 인생관이 비슷하면서도 또 배울 점이 많다. 한마디로 내가 닮고 싶은 사람이다. 그런 그가 이제 1년 넘게 방송을 떠나, 아니 한국을 떠나 잠시 '이방인의 삶'을 살고 오겠다고 한다. 어쩐지 '이방인'이라는 단어가 내 귀에는 익숙했다. 2017년 5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나 또한 말 그대로 낯선 곳에서 '이방인'의 삶을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왔다.
윤종신은 월간 윤종신 6월호에서 '늦바람'이라는 곡을 발표하며 '이방인 프로젝트'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이방인'이 되어 낯선 어딘가에서 어떤 사람인지, 얼마나 더 멀리 갈 수 있는 사람인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고 했다.
긴 여행을 떠나기 전, 내가 했던 말과 너무도 비슷했다.
당시 나의 나이 스물여덟. 그때도 몇몇의 주변 사람들은 나의 결심을 무모하다며 말렸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자주 들은 멘트들은 아래와 같았다.
"여행 다녀오면 서른인데, 어쩌려고 그래? 경력 단절에 취직은 거의 안 될 거고, 그리고 그때 결혼은 어쩌려고? 그냥 지금은 자리 잡고 나중에 가족들이랑 자주 여행 다니면 되지~ 꼭 그렇게 길게 나가서 고생해야겠어?"
내가 당시에 장기 여행을 계획했던 이유는 그저 '여행'에 대한 갈망, 그뿐이 아니었다. 아무도 모르는 낯선 길 위에서 아직까지 모르고 있던 '나'라는 사람이 보고 싶었다. 나는 나를 더 보고, 더 듣고, 더 느끼고 싶었다. 낯선 곳에 대한 까마득한 동경보다는 낯선 곳에 있는 '나'에 대한 궁금증이 더 컸다.
그렇다면, 모두들 결론이 궁금하실 거다.
그래서 1년 7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이방인'의 삶을 살며 어땠냐고? 뭐 대단한 거 깨달았냐고?
답은 간단하다. "아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 하나는 알게 되었다. '나의 취향' 그걸 알게 되었다.
몰랐던 나의 취향을 알게 되고, 알고 있던 나의 취향을 더 확실히 알게 되기도 했다. 내가 어떤 음식을 먹어야 미간을 찌푸리면서 맛있게 먹는지, 어떤 사람과 있어야 걸어가던 그 자리 위에 주저앉아 목 아파라 웃을 수 있는지, 어떤 곳에서 자주 감탄사가 나오며 감성이 일어나는지. 그걸 알게 되었다. '내가 어떤 사람이다.'라고 한 줄로 단언하지는 못하지만 내가 어떨 때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그런 것 정도는 조금 더 잘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 익숙한 것들이 가려놓은 내 숨겨진 모습을 봤다고 할까. 내가 모르던 내 모습은 조금 더 내 마음에 들었다.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하냐고' 내게 반문할 수 있다.
안다. 그래서 나도 긴 여행 후 힘들었다. 정말 이방인의 삶을 살다 돌아오니 말 그대로 나이는 서른이 됐고, 가진 거 하나 없이 오히려 더욱 초라해 보였다. 어디에도 나의 이야기를 반겨주는 '회사'는 없었으니. 그까짓 '내 취향' 하나 아는데 그렇게 길게 방황했냐고 누군가에게 손가락질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한 번쯤 이방인의 삶을 살아봤던 이들은 어느 곳에 가더라도 자신이 어떻게 해야 행복감을 느끼는지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인생의 만족도가 높다는 것.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자신감 하나는 있다. 어디에 가서 어떻게 살더라도 ‘나에게 맞게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그런 자신감’ 말이다.
그래서 윤종신이 '이방인'이 되겠다고 했을 때 나는 더욱 그를 응원했다. 뮤지션 윤종신이 아니라, '인간 윤종신'이 낯선 길 위에서 느낄 생각과 그 감정, 감성들을 어렴풋이 알 것만 같았기에 그의 결심에 박수를 보냈다. 누군가는 윤종신에게 나이 50 넘어서 너무 늦은 거 아니냐, 가족도 있는데 그냥 있지 그러냐면서 만류했을 수도 있다. 참 알다가도 모르겠는 게 인생에서의 '나이'이다. 누가 그 나이에 있어서 늦고 빠르고를 정하는 건지, 애초에 그 기준 자체가 있기는 한 건지는 아무도 모른다. 내가 떠날 당시 나이 28살에도 주변에서 누군가는 '늦었다.'라고 했다. 그렇다면 50살이 넘은 윤종신은 얼마나 늦은 걸까. 하지만 늦바람이라는 그 노래에서 윤종신은 이렇게 말한다.
너무 오래 머문 것일까
여긴 정말 머물 곳일까
여기서 보고 느낀 그 모든 게
내게 최선이었을까
너무 늦었다고 하겠지
무책임한 늦바람이라
하지만 너무 많은 남은 날이
아찔 해오는 걸
조금 더 찾겠어
내 삶의 한 가운덴 것 같아
깨달은 게 많아 뒤로 빠지기엔
-윤종신 '늦바람' 중-
윤종신은 나이 50을 '내 삶의 한가운데'라고, '너무 많은 남은 날이' 있다고 노래한다. 예전에 어느 책에서 읽은 한 구절이 생각났다. '지금 살고 있는 오늘을 가장 '늙은 날'로 생각하는지, 가장 '젊은 날'로 생각하는지에 따라 그 삶의 태도가 달라진다.'라는 말. 나는 늘 후자처럼 생각하고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사실 요즘 자꾸만 '서른'이라는 나이의 무게에 내 기운도 용기도 한껏 눌려있었다. 나이는 내게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결국 혼자만 그 나이에 주눅 들어, 나이를 핑계 삼아 그 뒤로 숨고 싶었던 것 같다. 서른의 내게 앞으로 남아있는 날들이 얼마나 많을지 생각하니 근래 내 모습이 부끄러워졌다. 나 또한 오늘을 가장 늙은 날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비겁한 사람은 아니었나 뒤돌아보게 되었다.
라디오스타가 끝날 무렵 윤종신은 12년 만에 처음으로 무대 위에 올라갔고, '늦바람'을 불렀다. 그 가사 한 줄, 한 줄이 너무도 내 얘기 같아서 한참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리고 그 노래를 부르는 그의 목소리에서, 눈빛에서 모든 게 말해주고 있었다. 그 노래는 '진심'이 담긴 그의 이야기라는 것을. 그 마음이 느껴질 무렵 이미 내 눈시울은 붉어졌고, 코끝은 빨개졌다. 역시 진심의 힘은 대단했다.
모두들 노래 제목처럼 이제 떠나가는 윤종신에게 '늦'바람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나는 그에게 '시기적절한' 바람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나도 여행 중 나보다 어린 친구들을 만날 때면 ‘내가 정말 늦은 걸까’ 싶을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나보다 나이 앞자리 숫자가 많은 분들은 나를 보며 ‘어려서 부럽다.’라고 하셨다.
모든 것은 다 상대적이다. 특히 나이가 그렇다. 신체의 젊음과 늙음은 구분 지을 수 있더라도, 누군가의 도전에 대해 빠름과 늦음은 그 누구도 단정 지을 수 없다.
“사람마다 때가 있다.”는 말이 있지 않나. 나의 ‘그때’는 스물여덟, 스물아홉’이었다. 그때의 나라서 내가 그려왔던 이방인의 삶을 온전히 즐길 수 있던 것이다. 그러니 ‘윤종신의 그때’는 지금인 것이다. ‘쉰이 갓 넘은 윤종신’은 가장 그답게 길 위에서의 그의 시간을 보낼 것이다. 그리고 한층 더 깊어진 그의 음악을 들고 멋진 중년이 되어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다.
한때 이방인의 삶을 살았던 내가
앞으로 이방인의 삶을 살아갈 그의 여정을, 그리고 그를 격하게 응원한다.
그리고 아직 가슴만은 낯선 길 위를 방황하고 있는 끝나지 않은 내 이방인의 삶도, 이 글을 읽는 당신들의 이방인의 삶도 함께 응원해 본다.
가사와 멜로디, 이 영상 속 분위기 모두 구독자분들과 함께 느끼고 싶어서요,
본문에 언급한 라디오 스타에서 윤종신이 부른 <늦바람> 영상 공유합니다.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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