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이유
몇 달 전, 나는 한 세계 여행 유튜버의 영상에 푹 빠져 그분의 영상을 기다리는 게 삶의 낙이었다. 당시 그 유튜브 채널의 구독자 수는 약 4만 명 정도였고, 그리 유명하지는 않았지만 마니아층이 형성되어가고 있을 즈음이었다. 그 유튜버가 말하길 마의 구간인 구독자 1,000명을 뚫는데 약 5개월의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그 뒤로 그는 매달 구독자 수가 몇 천, 몇 만 명씩 느는 '떡상'의 아이콘이 되었다. 나는 여행 인연으로 만나게 되었던 친한 동생 J에게 그 여행 유튜버를 추천해주었고, 역시나 나와 취향이 비슷한 J는 그 유튜버의 영상에 푹 빠지게 되었다.
"언니, 언니가 왜 그 유튜버 영상 아끼면서 본다고 했는지 이해했어요. 영상 기술이라던가 내용이 엄청 자극적이지는 않은데 담백하고, 중독성 있던데요?! 그 유튜버가 말을 잘하기도 하고, 뭔가 사람 자체가 매력 있는 것 같아요."
"그렇지? 영상을 쭉 보니까 그 사람만의 기준이나 자신만의 철학 이런 게 확고한 것 같아. 다른 여행 유튜버 영상 보다가 이 사람 영상 보면 딱 그 사람만의 색깔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아."
이렇게 말하고 나니 곧바로 나의 지인이자 유튜버로 활동 중인 A의 영상이 떠올랐다. 이전에 영상과 관련 없는 일을 해왔던 A의 영상을 처음으로 봤을 때 솔직히 나는 놀랐었다. 내 예상보다 영상의 퀄리티가 좋았고, 특히 편집 기술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초장기에 A가 영상을 올리면 반응이 좋았다. A는 유명한 크리에이터가 아님에도 구독자 1,000명을 모으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A는 영상을 꾸준히 올렸고 나도 A가 올리는 영상을 매번 챙겨보았다. 올라오는 영상의 편집 기술은 더욱 발전 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A의 그다음 영상이 기다려지지는 않았다. 영상을 다 보고 나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제대로 파악을 할 수 없었다. 재미가 있다고도, 없다고도 말할 수 없는 애매한 영상이었다.
하지만 나도 하나의 창작물을 만들고, 그것으로 먹고살고 싶은 사람으로서 그 창작물을 만들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이는지 잘 알고 있기에 결과물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함부로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사람마다 느끼는 점이 분명 다를 것이고, 누군가는 그 영상을 재밌게 볼 수도 있을 테니 그저 나는 묵묵히 뒤에서 '좋아요'를 열심히 눌러주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A는 자신의 sns에 유튜브 채널의 구독자가 몇 개월간 정체되어 있다며 고민의 글을 써서 올렸다. 대중들도 나와 느낀 점이 크게 다르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A의 글을 읽고 나는 한 번 생각해보았다. 나는 A와 깊이 있게 알고 지내는 사이는 아니지만 내가 느꼈던 A는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나쁜 의미로 겉과 속이 다르다는 것이 아니라 표현에 서투른 A의 성향 때문에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사실 A를 안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나는 A가 나를 싫어한다고 오해할 정도로 표현을 안 하기도 하고, 못 하는 사람이었다. A는 시간이 지난 후에도 직접적인 표현을 하지는 않았고, 그가 sns에 올리는 글이라던지 주변 사람들에 의해 그의 마음을 알아차려야 했다. A는 문자와 sns상으로는 표현을 잘하는 듯 보였지만 실제로 만나는 약속을 잡으려고 하면 늘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다. 그래서 나는 늘 A를 떠올리면 물음표가 따라왔다. 그만큼 그의 마음을 알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A의 영상이 A라는 사람 그 자체와 많이 닮았음을 느꼈다. 겉은 그럴싸해 보이지만 결국 그 속을 들여다보면 공허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왜 그런 이야기를 꺼냈는지 알 수가 없었다. A의 입 밖으로도, A의 영상에서도 자신을,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나는 나의 글을 떠올려봤다.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 오래전부터 운영해 온 블로그에 쓴 내 글들, sns에 짧게나마 올리는 내 글들, 그리고 브런치에 나름 갈고닦아 올리는 내 글들.. 이 글들을 쓰고, 올리면서 나는 막연하게 생각해왔다.
'내 글을 사람들이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
'내 글을 사람들이 좋은 글이라고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내 글을 매력 있다고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내 글에서 나만의 색깔이 느껴줬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사람들이 내 글을 좋아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갖기 이전에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내가 좋아하는 유튜버, 블로거 혹은 작가들. 그들의 창작물에는 단지 고가의 장비와 높은 기술, 혹은 화려한 필력이 있던 게 아니라 그들만의 매력과 색깔이 있었다. 그들이 지금까지 걸어온 그 길, 그 자체가 매력적이거나 혹은 그 사람 자체가 매력적이었다.
내가 좋은 글, 매력적인 글을 쓰려면 그 이전에 좋은 노트북이, 화려한 문장력이 필요한 게 아니었다. 그 이전에 나라는 사람 자체가 좋은 생각을 하고 좋은 행동을 하는 좋은 사람이어야 했고, 내 철학이 뚜렷한 나만의 매력이 있는 사람이어야 했다.
한 사람의 생각은 말이 되고, 행동이 되고, 이것을 반복하면 그 사람의 삶이 되고, 결국 한 사람이 된다.
즉, 모든 일의 시작과 끝은 그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 사람이 창작하는 글, 영상, 그림, 사진, 이 모든 것은 그 사람을 닮을 수밖에 없다. 예술이란 그 사람의 보이지 않는 생각과 상상을 보이는 어떤 것으로 만들어 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좋은 사람'이 '좋은 작가'가 되지 않을 수는 있지만,
'좋은 사람'이 아니라면 '좋은 작가'가 될 수는 없다.
그러니 어떠한 '좋은 00'을 꿈꾼다면 먼저 '좋은 사람'이 돼야 한다. 그래서 나는 '매력 있는', '좋은' 작가가 되기 이전에 나 자신에 대해 매번 돌아보고 있다. 그리고 조금 더 멋진 내면과 매력을 가꾸기 위해 매일 고민하고 또, 치열하게 움직이며 살아가고 있다. 이것이 내가 꿈꾸는 '좋은 글'을 쓰는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한 첫 번째 발걸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덧붙이는 말
오래전부터 운영해오던 내 블로그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남겨주신 댓글이 오늘따라 생각난다.
"슬기님의 글을 읽으면 현실적이면서도 왠지 모를 따뜻함이 느껴져서 좋아요."
나는 스스로 '난 따뜻한 사람이야. 선한 사람이야.'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내 글을 오랫동안 읽어주신 독자 분들이 저렇게 말씀해 주실 때 놀라웠다. 내가 알지 못하는 나의 또 다른 면을 나의 글을 통해 봐주셨다는 점, 그리고 나의 글을 그렇게 봐주시는 그분들의 그 마음에 좋은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나는 그 댓글의 답으로 이렇게 적었다.
"제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님이 따뜻한 마음과 따뜻한 시선을 갖고 계셔서 그렇게 느끼시는 것 같아요. 항상 스스로 차갑다고 느꼈던 저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주셔서 제가 더 고맙습니다."
몇 분께서 남겨주셨던 그 댓글이 나를 '따뜻함을 따뜻함으로, 차가움을 따뜻함으로' 품어줄 수 있는 늘 따뜻한 사람이, 따뜻한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들었다.
지금까지 저의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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