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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여행은 끝났고, 현실은 이미 진행 중

차가운 현실 속, 낭만을 잃은 그대에게 해주고 싶은 위로

by 기록하는 슬기


지난 초여름부터 나는 매일 저녁 최소 5km씩 걷고 있다. 매일 똑같은 코스를 걷지만 그때마다 내가 걸으며 하는 생각이나 감정은 매 순간 다르다. 며칠 전, 어김없이 나는 그 길을 걸었고 그날따라 내 기분은 울적했다. 기분이 다운됐던 이유를 굳이 말하자면 지난달에 출품했던 공모전 두 개가 하루 만에 둘 다 떨어진 것..? 하나를 더 굳이 말하라고 한다면 최근 몇 달간 소통의 부재라고 할까. 사람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데 요즘 내가 얼굴 보고 소통하는 사람은 부모님 말고는 없다. 아주 가끔 오래된 친구를 4~5시간 보는 것 이외에는. 바쁜 일정도 한몫했지만 무엇보다 진정한 공감과 소통이 없는 만남보다 차라리 외로운 게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근 1년간 더욱 홀로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답답함이 한껏 차올라 두 다리마저 무거워져 힘 없이 터벅터벅 걷는데 불현듯 지난 세계여행 중 만났던 K언니가 떠올랐다.


K언니를 처음 본 건 나의 마지막 여행지, 네팔 포카라의 한 숙소였다. 나와 나이가 10살이나 차이 나는 K언니와 친해지게 된 계기는 어느 날 숙소 사람들 다 같이 저녁식사를 하게 되면서부터였다. 언니는 나와 비슷한 점이 많았다. 작은 키, 예민한 성격, 이전에 한국에서 했던 일, 글을 쓰고 싶어 하는 것까지. 그래서인지 그날 이후로 언니와 나는 큰 비밀을 공유한 사람들처럼 끈끈한 유대감이 생겼었다. 그리고 그 당시 언니는 포카라에서 기다리던 한 사람이 있었다. 몇 개월 전 언니와 이 숙소에서 우연히 만나 연인 관계로 발전한 사람, 남자 친구분께서 언니를 보기 위해 포카라를 다시 오기로 했다는 것이다.


며칠 뒤 언니의 남자 친구분은 우리가 지내던 숙소로 왔고 그 이후로 다 함께 자주 밥을 먹고, 맥주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 둘은 서로를 바라볼 때 두 눈에서 하트가 줄줄 흐르는 게 내 눈에 보일 정도로 알콩달콩했다. 그리고 내가 느낀 언니와 오빠는 각자 한 명, 한 명 보더라도 '좋은 사람'이었다. 장기 여행 중 나는 이런 커플들이 가장 부러웠다.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도시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그 사람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가는 그런 연인들 볼 때면 내가 꿈꾸는 '낭만'을 실현한 사람들 같았다. 그 둘은 나보다 먼저 한국으로 돌아갔고, 둘이 함께 동거를 시작했다는 이야기까지 전해 들었다. 나는 그 둘의 사랑과 삶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랐고 응원했다.



우리 숙소 1층에 앉아 매일같이 바라보던 포카라의 여유. 네팔 포카라 2017.12.



울적한 마음에 갑자기 K언니가 떠올랐던 건 언니는 나와 교감할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니와 오빠(남자 친구)의 근황도 궁금했다. 언니는 통화 신호음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라는 첫마디부터 언니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어 보였다. 나는 언니에게 바쁜 것 아니냐고 물었고, 언니는 오늘 일을 하고 들어와 방금 막 씻고 나와서 그런 거라고 했다. 언니는 한국으로 돌아가자마자 내게 말하길 이전에 했던 일은 다시 하기 싫다며 어떤 일을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했었다. 그런 언니가 일을 시작했다기에 나는 뭔가 마음을 다 잡고 새로운 일을 시작했거나, 어쩔 수 없이 이전에 오랫동안 일했던 분야로 돌아갔을 거라 예상했다. 어떤 일이냐고 묻지 않는 나에게 언니는 먼저 부가적인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나 일하는 거 정식적으로 하는 일은 아니고, 저번 주부터 나 알바로 시작했어. 일주일에 몇 번 안 나가는 거야. 근데 엄청 힘드네.."

그리고 언니는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말했고 나는 조금 놀랐다. 전혀 언니와 상관없는 분야의 일, 게다가 이미 약해진 언니의 몸으로 하기에는 벅찬 일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어서 언니는 '왜 그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그 자초지종 설명했다.


K언니의 사생활이라 자세히 쓰지는 않겠지만, 결론적으로 언니는 많이 힘든 상태이다. 경제적으로도, 심적으로도. 아직 오빠와는 같이 지내고 있지만 경제적 상황이 많이 좋지 않아 트러블이 자주 생긴다고 했다. 진지하게 만남을 이어가야 할지 여기서 멈춰야 할지 고민할 정도였다. 오늘 내가 들은 이야기는 언니의 입장에서 들었고, 또 내가 언니의 남자 친구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에 누가 잘했고 못했고를 떠난 문제였다. 단지 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 머릿속에 계속해서 떠오른 문장은 단 하나.

'아.. 이게 현실이구나..'



불과 1년 10개월 전 K언니와 오빠, 그리고 나는 포카라의 광활하며 잔잔한 페와 호수를 바라보며 밤낮 할 것 없이 그곳의 낭만을 즐겼다. 어느 날은 어떤 여행자가 두고 간 기타를 치며 함께 노래했고, 또 어느 날은 숙소 옥상에서 모닥불을 펴놓고 다음 날 해가 떠오르기 직전까지 맥주잔을 부딪히며 목 아파라 웃었다. 그때 우리는 그 순간, 순간 "행복하다.."라고 느꼈고, 자주 그렇게 말했다. 그랬던 그 둘이었고, 나였다.




낮의 페와 호수. 호숫가에 앉아 바라만 보고 있어도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던 곳. 2017.12.






숙소에서 바라보는 해 질 녘의 페와 호수. 2018.01






우리의 단골 카페 마당에 있던 낡은 의자에 앉아 그 순간을 만끽했던 맑은 하늘 아래 어느 날. 네팔 포카라. 2017.12




1년 7개월 동안 한국을 떠나 긴 여행, 해외 생활을 하는 도중 나는 자주 행복했고, 그때마다 마음에 드는 나를 자주 만날 수 있었다. 낯선 길, 낯선 곳에서 나는 생각보다 용감했고, 약하지 않았다. '아, 나도 닥치면 다 하는구나.', '지금까지 피해 오는 인생만 살아왔는데, 나도 부딪히고 그걸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라고 몸소 느꼈다. 하지만 사람은 환경에 지배를 너무도 쉽게 당하지 않나. 그렇기에 낯선 곳에 던져놓아도 오기로 꾸역꾸역 살아남지만 반대로 편하고 안전한 곳에 던져놓으면 한 없이 안일해지는 게 인간이다. 그래서인지 나뿐만 아니라 많은 장기 여행자들이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 심적으로 큰 고통을 한번 겪는 것을 봤다. 이때 단순히 여행 후유증이라기보다 자괴감 비슷한 감정이 찾아온다. '어? 분명 나 여행할 때는 이런 점을 고쳤다고 생각했는데?', '나 많이 긍정적이여 지고, 도전적이라고 생각했는데.. 나 왜 그대로지?' 스스로는 조금은 변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돌아와서 보니 나도, 한국도 다 그 자리 그대로인 것을 자각할 때 느껴지는 괴리감은 생각보다 크다.


그렇다고 긴 여행과 해외에서 살다가 돌아와도 모든 사람이 다 그대로라는 것은 아니다. 확실한 건 바뀐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여기부터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심적으로 그 힘든 과정을 어떻게 이겨내느냐.

'그래.. 내 인생 원래 이렇지 뭐.. 여행이 뭐 대수라고.. 그냥 살던 대로 살자..'라며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일상을 살면 그때 힘들었던 고통은 단지 '통증'으로 끝난다. 하지만 '그래.. 내가 그렇게 용기 내서 한국에서 다니던 회사까지 다 관두고, 여행하면서, 또 외국에서 생활하며 살아남느라 개고생하고 왔는데 너무 아깝잖아. 그동안 경험한 것들, 겪은 감정들 아까워서라도 포기하지 말아야지. 다시 시작해 보자! "라고 생각하고 다시 일어선다면 그 고통은 '성장통'이 된다.




577일간의 긴 꿈에서 깨어나 현실 속으로 들어오던 날. 한국 인천공항. 2018.12.



언니와 통화하며 정작 한 마디의 위로도 듣지 못하고 오히려 내가 많은 위로의 말을 해주었지만, 결국 그 한 시간의 통화는 내게 그 어떤 위로보다 더 큰 것을 느끼게 해 줬다. 단순히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와 같은 위로를 받았기보다 지금까지 나와 비슷한 듯 다른 길을 걸어온 언니가 쌓아온 과정과 선택을 보며 솔직히 나는 두려워졌다. '현실'이 얼마나 차갑고 무서운지. 그러한 현실 속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지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까짓 공모전 몇 개 떨어졌다고 우울해할 시기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지금처럼 마음먹고 뭔가를 향해 달려가는 이 시기에는 지나친 '감정, 감성'은 장애물이 된다는 것. 결국 내가 좋아하는 일을 오랫동안 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신체의 건강과 정신의 건강, 이 두 가지가 먼저 충족되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전화를 끊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통화 중 언니가 나에게 했던 말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슬기야, 나는 내가 나이 마흔에 이렇게 살고 있을 줄 몰랐어.."

그 누구도 자신의 미래인 서른, 마흔, 쉰(..)에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 줄 모른다. 하지만 나의 서른, 나의 마흔의 그 어떤 모습을 만드는 것은 자신의 선택이고 그 선택을 책임지고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에 따라 바뀔 수 있다. 길지 않은 인생을 살아오며 깨달은 점 중에 하나는 노력한 만큼 그에 비례해서 어떤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노력한 것보다 작은 성과가 찾아오거나 아주 늦게 그 성과가 찾아오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버텨야 하는 거고. (적은 확률이지만 아주 가끔은 노력보다 더 큰 행운이 빨리 찾아오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런 '노력'마저 하지 않으면 그에 따른 성과는 애초에 0%라는 것. 그때 우리에게 찾아오는 것은 '노력을 하지 않아서 찾아오는 결과' 그뿐이다. 그 결과는 '노력을 하고 기대하는 결과'보다 더욱 쉽게 예상할 수 있고, 그 예상은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서른의 나. 그리고 나의 서른을 빛나게 해 줬던 사람들과 현실 속 짧은 낭만을 만들었던 순간. 2019.05



나도 내 나이 '서른'에 이렇게 살고 있을 줄 꿈에도 몰랐다. 지금의 나의 서른은 20대 때 예상했던 것보다 어떤 면에서는 초라하고, 실망스러울 때도 있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 생각보다 멋지고, 그 어떤 서른보다 빛나고 있다고 느낀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 다가올 나의 '마흔', '쉰'(...)이 기대가 된다. 왠지 지금보다는 더 깊어지고 더 멋진 사람이 되어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 근거는 요즘 매일매일 실천하며 만들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 K언니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언니의 마흔을 예상 못 했듯이, 언니의 앞날에도 예상 못 할 좋은 일들도 나타날 수 있을 거예요. 물론 언니가 조금 더 용기를 내서 선택하고, 그 선택에 책임지고 하루하루 노력하며 살아간다면요. 근데 언니 알고 있죠? 언니는 충분히 그렇게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거요."








지금까지 저의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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