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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한 마디

좋은 사람, 좋은 관계를 놓치지 않기 위한 방법, 그 마음가짐에 대하여

by 기록하는 슬기


몇 개월 전, 친한 동생 J가 직장 내의 인간관계 때문에 힘들다며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언니, 저랑 같이 일하는 상사 중에 한 분이 저를 너무 힘들게 해요.."

"왜!! 너 막 괴롭혀? 갈궈?"

"아니.. 너무 잘해줘요.."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무슨 말인가 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J의 말에 나는 왜 J가 힘든지 너무도 알 것 같아 여러 번 고개를 끄덕였다.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에 일부러 제 간식도 사 주시고, 겨울에는 춥지 않냐면서 따뜻한 양말, 장갑 같은 것도 제 거까지 챙겨주시더라고요.. 근데 문제는 그렇게 잘해주시고 제가 조금이라도 반응을 잘못하거나, 다른 업무의 일로 트러블이 생기면 자꾸만 저한테 서운해해요.. '내가 너한테 얼마나 잘해줬는데 네가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냐..'라면서요.. 그래서 제가 그분한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곧이어 하나의 에피소드를 내게 말하고 울분에 섞인 목소리로 J는 말했다.

"물론 이렇게 저를 챙겨주고 생각해주시는 거 감사하지만.. 사실 먼저 해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해주고 나서 자꾸 그걸로 생색내고, 그리고 그 감정을 공적인 업무를 할 때까지 끌고 들어가니까.. 차라리 저는 그냥 안 챙겨줬으면 좋겠어요."






J와 전화 통화를 하며 나 또한 이전에 비슷한 경험을 겪었기에 누구보다 깊게 공감했다. 고마운 건 고맙지만, 그로 인해 더욱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 그 감정이 사람을 더욱 지치게 만드는 것이다. 마음대로 미워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마냥 고맙지만 않은 그런 사람.

그 사람 때문에 너무도 힘들지만 그럼에도 나도, J도 알고 있다. 분명 J의 직장 상사는 J를 챙겨줄 때만큼은 좋은 마음에서 간식이라도 하나 더 사주고 싶었다는 것을. 하지만 여기서 그분이 잘 못 생각하고 있는 것 하나가 있다. '내가 잘해주니까 당연히 상대방은 고마워하겠지. 내가 나중에 부탁을 조금 해도 되겠지.'라는 생각을 애초에 갖고 있는 것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로 돌아가 보면 '내가 생각하기에 상대방이 좋아할 것 같은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행동은 '상대방이 고마워할지 안 할지는 모르는 것'이다. 우리의 생김새가 모두 다르듯 안에 내재되어있는 감성, 감정 등 신경들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같은 것을 보고도 다 다르게 반응한다. 그러니 '상대방이 좋아할 것 같은 것'이라 할지라도 결국 그 '좋고 나쁨'은 상대방이 느끼는 것이다. 내가 그 사람을 생각해 좋은 마음으로 간식을 사고, 줬다면 그뿐이면 된다. 거기서 끝나야 한다. '왜 안 좋아하지?' 혹은 '내가 너를 얼마나 챙겨줬는데 이 정도도 못 해주나?'라는 생각은 오로지 본인만의 생각일 뿐이다.


그런 말 있지 않나. '해줄 것 다해주고도 욕먹는 사람은 있다.' 이 말을 듣는 당사자는 너무도 억울하겠지만 모든 것은 인과응보이다.





주는 사람은 꽃을 살 때의 셀렘, 꽃을 줄 때의 기쁨. 그거면 됐다. 그다음은 받은 사람의 것이다.




J와 긴 전화 통화를 마치고 불현듯 나의 예전 모습이 떠올랐다. 나도 (J의 직장 상사 정도는 아니지만) 6~7년 전까지는 그 직장 상사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꼼꼼한 성격 탓에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남녀 불문하고 사소한 것들을 자주 챙겨줬었다. 누군가 힘들어 보인다면 장문의 편지나 문자를 보내준다거나, 작은 선물일지라도 음료 쿠폰을 보내준다거나, 연락을 자주 안 했을지라도 생일이나 어떤 기념일은 빠지지 않고 챙겨줬었다. 그때마다 그들은 내게 "고마워!"라고 말했다. 그게 다였고, 그때마다 나는 서운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 그들에게 뭔가를 바라고 있던 것이다.


난 물질적인 보답을 원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나는 내가 그들을 생각하는 만큼 비슷하게라도 그 관심과 표현을 받고 싶었다. 그때는 모든 생각을 내 기준으로 했을 때였다. '나라면~했을 텐데..'라며 자꾸만 내 기준에서만 상대를 끼워 맞춰 보고 또 나와 같지 않은 그들을 보며 서운해했다. 그렇다고 나는 누구라도 붙잡고 "나 서운해! 나 삐쳤어!"라고 말할 위인도 못 됐다. 그저 속으로만 서운했다가, 참고 삭히는 과정을 반복했다. 그렇게 1년, 2년 시간은 흘렀고, 발이 넓기로 유명했던 나의 인간관계는 점점 축소되었다.


20대를 지나 30대에 이르기까지 10년 사이에 나를 거쳐간 인연들은 수없이 많다. 그중에는 당시에는 죽고 못 살 것 같았던 연인, 친구들이었지만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는지 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절반 이상이다. 이런 결과를 만든 사람은 결국은 그 당시 '나'였다. 내 멋대로 해주고, 멋대로 기대하고, 내 입맛에 맞는 어떤 표현이 상대방에게 오지 않았을 때 '실망'을 하고 '서운'해 하는 그 감정, 그 얄팍한 감정이 나의 인간관계와 나 자신을 더욱 건조하게, 그리고 외롭게 만든 것이다.




스스로 외롭다고 느꼈던 중에도, 나는 누군가의 두 눈에 담기고 있었다. 결국 나를 외롭게 만드는 것은 나 자신이었다.




어렸을 때 엄마나 할머니, 이모가 음식을 만들어주고 그 음식을 맛있게 먹고 있는 나를 보며 했던 말이 있다.

"잘 먹어주니까 내가 더 고맙네~"

그때 나는 '음식을 직접 만들어준 사람이 왜 고맙지? 오히려 음식을 받은 사람이 더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나의 정성을 알아주는 것 만으로 그 자체가 고마운 것이다. 맛있게 먹어주는 그 마음, 그거면 되는 것이다.


나와 상대방, 그 서로가 미안함을 미안함으로, 고마움을 고마움으로 느끼는 것이 겉으로 보기에는 쉬워 보이지만 그것만큼 어려운 것이 또 없다. 내가 미안함을 전달했을 때 상대가 미안함을 알아준다면, 상대가 나에게 고마움을 전달했을 때 내가 고마워한다면 그들의 관계는 오래 지속될 수 있다. 나와 상대가 다르다는 전제하에 그와 같아질 수 없음을 먼저 인정하고, 최대한 상대의 삶과 일상을 이해하고 배려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관계는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다.


좋아하는 사람, 관계를 오래 지키고 싶은 사람에게 우리가 바랄 것은 딱히 없다. 내가 그 사람에 대해 좋게 봤던 것은 여전히 가장 크게 바라보는 일, 상대방의 삶과 일상을 배려한 뒤 나의 마음을 표현하는 일, 그 후에는 '기대'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일.

우리도 감정을 가진 인간이기에 기대를 완전히 져버리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그것보다 내 주변에 '좋은 사람'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조직 내의 '좋은 관계'를 그르치지 않기 위해서 그 정도 노력은 아까워하지 말자. 사랑이든 우정이든 동료(선후배) 관계든 이 모든 관계의 시작과 과정에는 '노력'이 필수적으로 필요하니.




그러니 오늘은 그간 고마웠던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화나 메시지, 혹은 작은 선물로 표현해보자.

그리고 나의 마음에 고마워하는 상대방에게 이 한마디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

"고마워해 줘서 내가 더 고마워요."


(만약 나의 마음에 상대방이 고마워하지 않는다 해도 서운해하지 말자. 잊지 말자. 원래 고마움을 전하려던 것은 나였다. 고마움을 전한 것만으로 이미 충분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고마움이 짙어지는 그 마음이 있다. 돌아보니 내가 고마워야 할 순간들이 더욱 많았다.








지금까지 저의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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