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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비아빠 Dec 07. 2023

살아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닌 삶

죽어야 끝나는 고통

 22년 7월 7일 새벽 4시가 조금 지난 시간 나의 삶은 끝이 났다.


 내 모든 것이었던 슬비가 세상을 떠난 시점 너무도 비현실적인 상황에 크게 울어주지도 못했다. 그저 몇 분 정도 울었을 뿐, 얼마 지나지 않아 덤덤함이 찾아왔다. 집중치료실에서 슬비를 데려 나오기 위해서는 먼저 병원비를 내야 했다. 새벽 4시에 1천7백만 원이라는 현금을 결제할 여력도 없었고, 지갑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달랑 카드 한 장 가지고 있었는데 당연히 한도 초과였다. 슬비를 데려오는 데도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 사이 슬비는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고 깨끗한 흰 천이 아닌 침대보로 덮여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슬비를 데려 나오지도 못했고 병원비를 지불하지도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제정신으로 견디기 힘든 상황이었던 것 같다. 집중치료실에서 슬비를 데려 나와 영안실로 갔다. 그곳에도 너무 이른 시간이라 사람이 없었고 슬비는 침대보에 덮인 채 복도에 방치되어 있었다. 나는 그 옆을 지키고 있었을 뿐, 보고 싶은 얼굴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또 몇 십 분이 지났고 슬비를 포항으로 데려갈 운구차가 도착했다. 나는 내 손으로 슬비를 차로 옮겼다. 그렇게 대구를 떠나 포항으로 향했다.


 이젠 이 세상에 슬비가 없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슬픔인지도 깨닫지 못한 채 여기저기 알렸다. 알리고 싶지 않았지만 그래도 알려야 한다는 사실 또한 고통이었다. 슬비가 떠난 그 시간 이후의 삶은 지옥과 같았다. 장례를 치르고 슬비가 화장이 시작되는 순간을 제외하고 나는 덤덤했다. 표현을 하고 싶어도 표현을 할 수가 없었고 슬퍼하고 싶어도 죄책감에 슬퍼할 수가 없었다. 슬비를 통천사에 데려다 놓고 집으로 돌아오니 그제야 슬픔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듯했다. 일주일을 그렇게 울기만 했다. 나에게 눈물이 그렇게 많다는 것을 그날 깨달았다. 물론 지금도 매 순간 슬비가 떠올라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


 슬비가 떠난 지 1년이 훌쩍 지났다. 슬비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없기에 나는 상상 속에서 슬비와 함께했던 시간을 꼽씹을 뿐이다. 17년의 짧은 생이었지만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기에 추억이 많다. 그렇게 슬비와의 추억을 되새기며 눈물을 삼키고는 한숨을 쉬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이젠 어떠한 방법으로도 우리의 삶을 정상적으로 되돌릴 수 없음을 알기에 한숨은 더욱 깊어져 간다. 하루라도 빨리 세상을 떠나 슬비곁으로 가고 싶지만 나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 방법을 모른다. 다만 내 남은 삶이 그리 길지 않음을 어렴풋이 느낄 뿐이다.


 살아도 살아있는 것이 아닌 삶을 살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나는 원래부터 오래 살고 싶진 않았다. 슬비가 떠난 이후 더욱 그렇다. 내 삶은 이미 끝났고 내 남은 삶은 의미 없는 똥덩어리 같은 시간의 합일뿐이다.


 나의 세상을 이렇게 만든 이 세상이 너무나 원망스럽고 나의 슬비를 그렇게 만든 인간들을 증오하고 또 증오한다. 나는 그들이 나의 고통보다 더욱 심한 고통을 받길 바랄 뿐이다.


 그들에게 내려질 형벌은 천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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