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진 슬비

by 슬비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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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노스 바이러스가 유출된 지 약 2년이 지난 시점에 슬비는 평소와 다름없이 학교에서 자율학습 중이었다. 며칠 전부터 속이 좋지 않았고 이따금씩 심한 두통이 찾아왔지만 다음주가 시험기간이라 그러려니 했다.


"아우...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네..."


"슬비야, 괜찮아?"


슬비의 기숙사 룸메이트인 은영이 물었다. 평소 감기 한 번 안 걸리던 건강한 슬비가 어딘가 아파하는 모습을 처음 봤다.


"아니야. 머리가 좀 아픈데... 시험기간이라 그런 거겠지. 괜찮아."


슬비도 별거 아니라 생각했다. 그렇게 야간 자율학습시간이 끝이 나고 기숙사로 돌아와 은영이와 함께 도서실에서 시험공부를 하려고 했는데 슬비가 보이지 않았다. 은영은 평소와 다른 모습의 슬비가 걱정돼 여기저기 찾았다.


"분명 화장실에 간댔는데...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


은영은 슬비가 화장실에 간다고 했던 것이 기억이 나서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은 조용했지만 한 칸만 문이 닫혀 있었다. 은영은 여러 번 노크를 했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자 허리를 숙여 아래쪽 문틈 사이로 안쪽을 봤다. 그곳에는 슬비가 의식을 잃은 채 쓰러져 있었다.


"슬비야! 왜 그래. 정신 차려!"


하지만 화장실문은 안쪽에서 잠겨 있었기에 문을 열 수가 없었다. 은영은 기숙사 사감선생님을 찾으러 뛰어나갔고, 친구들에게 슬비가 쓰러졌다는 사실을 알렸다. 그중 또 다른 슬비의 룸메이트인 주희가 화장실로 뛰어갔다. 주희는 화장실 옆칸을 통해 슬비가 쓰러진 곳으로 들어가 문을 열고 슬비를 깨우려 했다.


"슬비! 정신 차려봐!"


슬비는 눈을 떴지만 눈동자엔 초점이 없었고 아무런 말도 없이 신발도 신지 않은 채 자신의 방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친구들과 기숙사 사감은 119 구급대에 전화해 슬비를 급히 병원으로 이송했다. 기숙사 사감은 슬비 아빠 강현에게 전화를 걸어 슬비가 쓰러졌음을 알렸고, 강현은 튕기듯 일어나 슬비가 이송된 병원으로 향했다.


"선생님, 우리 슬비 괜찮은 겁니까? 멀쩡하던 애가 왜 갑자기 쓰러진 거죠?"


"병원 도착 직후 경련을 했고, CT와 MRI촬영 등 몇 가지 검사를 해봤지만 특이사항은 없습니다. 조금 있으면 깨어날 겁니다."


의사는 별일 아니라는 듯 강현에게 안심하라는 말만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강현은 밤새 슬비의 곁을 지켰다. 슬비는 밤새 두 번의 경련을 했고, 항경련제를 맞고 잠들어 있었다.


"선생님, 3차 병원으로 이송해 주세요. 아무래도 안 되겠습니다."


"그냥 여기서 치료받으세요. 3차 병원에서는 이런 일로는 안 받아줍니다."


"이런 일이라뇨! 멀쩡하던 애가 쓰러져 저렇게 누워있습니다!"


"아 글쎄, 3차 병원에 가도 자리도 없을 거예요. 그냥 여기서 치료하시죠."


강현은 의사들의 대수롭지 않다는 말투와 그들의 행동에 너무나 화가 났다. 지난밤 슬비가 잠시 깨어나 강현을 안심시켰을 때, 슬비는 갑자기 경련을 하기 시작했다. 의사들은 느릿느릿 걸어와 멀뚱히 쳐다보기만 했고, 강현은 그런 의사를 다그쳤다.


"지금 경련하잖아요! 안보입니까! 뭐 하시는 거예요. 빨리 손을 써야 할 거 아닙니까!"


하지만 의사는 경련하는 슬비에게 다가가 항경련제를 투여하고는 진정되는 슬비를 잠시 지켜보다 자리를 떠날 뿐이었다. 강현은 다시금 3차 병원으로 이송을 부탁했으나 묵살당했고, 집과 가까운 병원으로 이송해 줄 것을 요구했다. 결국 강현은 다음날 집 근처 2차 병원으로 슬비를 이송했고, 그다음 날 3차 병원으로 슬비를 이송할 수 있었다.


3차 병원에서는 슬비의 상태를 보자마자 집중치료실로 옮겼고 원인을 찾지 못해 하루에도 몇 번씩 채혈과 검사를 했다. 강현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건강하게 태어나 17년간 어디 한 군데 아파본 적 없었고 평소 병원 한 번 안 가본 슬비가 갑자기 쓰러졌다는 것을 실감할 수 없었고,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슬비야... 아빠야... 눈 좀 떠봐..."


강현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크로노스 바이러스로 락다운 상태였기에 면회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24시간 집중치료실 문 앞을 지키고 있는 강현 내외 모습에 간호사들이 몰래 한 번씩 면회를 시켜주었다. 그럴 때마다 강현은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누워있는 슬비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흐흐흑, 슬비야 아빠가 미안해..."


강현이 할 수 있는 말은 그뿐이었다. 강현은 슬비가 쓰러진 이유는 백신 때문이라 생각했고 담당 주치의에게 물었다.


"선생님, 혹시 백신 부작용 아닐까요? 백신을 맞기 전까지 슬비는 병원 한 번 안 가본 아이입니다. “


"글쎄요. 아버님, 슬비가 백신을 맞은 건 약 7개월 전입니다. 백신 부작용은 아닌 것 같습니다."


병원에서도 백신이 아니라고 했고, 주변에서도 모두가 백신 때문이 아니라 했다. 며칠 후 신경과 주치의가 강현에게 말했다.


"슬비의 병명은 자가면역뇌염인 것 같습니다. 극희귀병인 데다가 자가면역뇌염이라는 것이 아직 미지의 질병이다 보니 정보가 많지 않습니다. 이제 면역치료 외엔 방법이 없을 것 같습니다."


강현은 또 한 번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다른 방법이 없다는 말을 듣자 강현은 그야말로 아무런 생각도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었다. 슬비의 병세는 점점 악화되고 있었고 도무지 나이질 기미가 없는데, 더 이상 방법이 없다는 게 무슨 뜻인지 생각조차 하기 싫었다.


슬비는 면역치료를 시작했다. 표적항암제인 리툭시맙을 투여해 면역을 완전히 억제하고, 스테로이드와 면역글로불린을 투여해 면역력을 서서히 회복시키는 면역치료를 곁에서 마음 졸이며 지켜보던 강현. 며칠 밤을 새운 강현은 너무 피곤한 나머지 병원 로비에서 잠깐 졸았다. 그때 강현의 휴대폰이 울렸다.


"아버님, 지금 어디세요? 지금 빨리 오셔야 해요."


슬비의 담당 간호사의 전화였다. 다급한 목소리가 평소와는 다르게 느껴졌다. 강현은 집중치료실로 뛰어갔다. 집중치료실 앞에서 어쩔 줄 모르며 서있는 강현에게 슬비의 담당 수련의가 다가왔다.


"지금 매우 위중한 상태입니다.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고 있어요."


"그게 무슨 뜻이죠?"


"곧 주치의이신 전지혜 교수님께서 오셔서 설명드릴 겁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강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너무나 불안한 마음에 숨소리도 제대로 낼 수 없었다. 혹여나 숨 한번 잘못 내쉬어 슬비가 잘못될까 두려웠다. 강현은 이 지옥 같은 시간이 너무나 힘들었다. 어서 이 지긋지긋한 병원을 벗어나 슬비와 함께 여기저기 여행 다니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다. 하지만 냉혹한 현실은 그런 강현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슬비 아버님, 지금 슬비의 상태는 뇌가 많이 부었고,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고 있습니다. 언제 심장이 멈출지 모릅니다."


"...!"


강현은 숨조차 쉴 수 없을 만큼 충격을 받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우리 슬비가 잘 버티고 있다고 하셨잖아요..."


"우선 전기충격기로 불규칙한 심장 박동을 바로잡아 보겠습니다. 그래도 돌아오지 않으면 CPR을 하게 됩니다. 그래도 돌아오지 않으면... 방법이 없습니다."


2022년 7월 7일 새벽 4시 16분...


슬비가 세상을 떠났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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