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녀가 웃고 있다면 아마 이런 모습일 거야.”
뭐가 그리 우스운지 까르르 웃음을 멈추지 않는 나를 두고 오래전 남자친구가 했던 말이다. 젊은 사람들에겐 선녀라는 단어가 설화적이고 추상적인 이미지가 있어 잘 안 쓰는 표현이다. 나를 두고 선녀 같다고 한 건 우리가 웃으며 장난치고 데이트를 했던 곳이 주로 선녀바위 바닷가 근처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을왕리 해변이나 왕산 해수욕장과는 다르게 인적이 드물어 북적거림은 덜 하고 아직 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아 천연 그대로 원시적인 바다의 풍경을 보여주는 선녀바위 바닷가를 좋아했다.
특히 선녀바위 좌측 넘어 선착장으로 가는 길 쪽의 해변은 더 모래가 곱고 좀 더 아늑해서 우리의 야영지 즉, 아지트가 되곤 했다. 그곳이 ‘거북이사랑바위’였다는 것은 한 참 이 지난 후에 알게 되었다.
하늘이 베풀어 준 자연과 바다를 배경 삼아 많은 시간을 이곳에서 함께 했다. 봄바람에 설렘 가득한 마음을 재촉하고 싶어 아침 댓바람부터 바다 산책을 했고 싱그러움이 넘쳐 나는 초여름의 길목에서 해변의 야생화를 찾아 트래킹을 했다. 푹푹 찌는 한여름에도 어린아이처럼 바닷물에 물장구를 치며 놀았다. 선녀바위 기암괴석에 둘러앉아 칼바람 속에도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해넘이를 구경하고 새해 소망도 빌었다. 노을빛에 촉촉이 붉게 물든 둘의 얼굴은 꼭 선남선녀(仙男仙女) 같았다.
함께 영종도에서 일하며 20대를 마무리했던 청춘의 기억이다. 서로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지만 선녀바위에 대한 기억은 그리움과 시간이라는 숙성과정을 통해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아름답게 포장되어 있다.
10년이 훌쩍 뛰어넘는 시간에도 선녀바위 바닷가는 아직 그대로이다. 한창 성업 중이던 조개구이 식당과 횟집들이 줄어들고 주변의 솔숲을 파헤쳐 대형 카페들이 자리 잡았다는 것 외에는 바다의 원형은 변한 것이 전혀 없다. 우리가 사용했던 텐트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바닷가에 펼쳐진 더 커지고 화려해지고 편리해진 텐트와 장비들을 보면 세월의 변화와 흐름 정도만 느낄 뿐이다.
난 여전히 바다를 좋아하고 처연히 바다 위에 우뚝 서 있는 선녀바위를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면 불변이라는 선녀바위의 설화적 요소에 감화되어 긍정적 전이작용으로 영원한 사랑을 꿈꾸는 것 같아 좋았다.
지금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날씨로 인한 불편함을 잊은 채 편하게 바다를 구경할 수 있다. 아침부터 해 떨어질 때까지 자리에 앉아 있으면 그대로 바다를 눈에 담을 수 있다. 그러나 내가 기억하고 느끼는 바다가 아니다. 우선 질퍽한 모래 위를 걸어야 하고 그가 알려 준 무꽃과 갯메꽃을 찾고 해당화를 눈으로 좇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해풍으로 나부끼는 머릿결에 샴푸 향과 어울리는 바다 냄새를 맡아야 한다. 샴푸 향보다 강한 원두커피 향기는 전에 없던 추억이라 꽤 낯설게 느껴지고 언제부터 커피 향이 바다를 에워싼 건지 도무지 모를 일이다.
지금은 예전처럼, 그러니까 선녀처럼 자주 웃지 않는다. 웃을 일이 많지도 않고 가만히 있을 때면 화가 나 있는 사람처럼 무표정이라 주변 사람들이 쉽게 말을 걸지도 못한다. 그 웃음 많던 선녀는 어디로 가출했는지. 선녀바위를 찾지 않은지도 한참 됐다. 선녀 바위로 가는 마시안 바닷가 주변에 제주도처럼 멋진 카페와 커피 브랜드 체인점이 생겨나고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할 때 나도 갈 길을 잃었던 것 같다.
장마전선이 소강상태였지만 여전히 꾸물거리던 궂은 날씨가 언제라도 비바람이 몰아쳐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던 7월의 주말 오후, 운서역 건너편 버스 승차장에서 배낭과 짐 꾸러미를 들고 두리번거리던 노부부와 마주쳤다. 바다로 가는 버스 노선을 물어보셨는데 순간 멍했다. 줄기차게 바다를 드나들면서 내 차로 다녔지 버스를 탄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폭풍 검색을 해보지만 쉽게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서울 천호동에서 오셨고 예전에는 인천 송도의 바다를 많이 다녔다고 했다. 그나마 서울에서 가까운 영종도의 바다를 보러 이곳까지 왔지만, 그분들이 짐을 들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엔 힘에 부쳐 보였다. 내 차로 모시고 싶었지만 극구 사양하여 택시를 잡아 태워드리고 나니 죄송스러운 마음이 밀려왔다.
야속한 교통편도 그랬지만 멋진 바다를 보여 드리고 싶은데 오늘따라 볼썽사나운 날씨도 내 탓인 것 같았다. 서울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이면 도착하는 영종도지만 오직 바다를 보기 위해 멀고 먼 길을 소풍 삼아 놀러 오신 두 분이 새삼 놀라웠다. 그분들이 들고 있던 짐도 옛날 엄마 아빠가 우리를 데리고 놀러 다닐 때 봐왔던 은박 돗자리와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찬합 통이었다. 뭔가 정성이 가득하고 추억이 가득할 것만 같던 짐 꾸러미가 계속 뇌리에 남는다.
그분들이 자주 찾았다던 송도의 바다는 이미 매립이 되고 고층의 스카이라인을 이루는 최첨단 국제도시로 변모했다. 추억과 함께하는 바다는 늘 동경의 대상이자 노스탤지어와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다를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은 어쩌면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이다. 향수에 젖는다는 것은 인생이라는 책자에 그만큼 추억할 거리가 많다는 방증일 것이다.
인생의 책이 완결을 향해 마무리되어 갈 때 문득 미치도록 보고 싶은 바다가 떠오른다면 나의 바다는 어디일까? 내 추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 그때까지 지켜질 수 있을까? 내가 사는 영종도에 사면의 바다가 있다는 건 어쩌면 축복받는 인생을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파라다이스’란 사자(死者)가 고통으로부터 해방되어 행복하게 지내는 서해(西海) 끝의 섬을 말하기도 한다. 황혼의 노부부가 풍족하지는 않아도 편안한 마음으로 영혼을 풍요롭게 가꾸고자 이곳을 찾았다면 여기가 낙원일 것이다.
아 참. 택시 기사님께 선녀바위 바닷가로 가는 곳을 말씀드렸다. 할아버지께는 선녀 바위가 잘 보이는 송림이 울창한 정자 아래 돗자리를 펴라고 말씀드리고 할머니께는 많이 즐기고 오시라고 눈인사를 나누었다. 다시 상냥하고 웃음 많던 선녀로 돌아온 느낌이다.
선녀는 신선이 산다는 경치가 신비스럽고 그윽한 곳에 산다는 데 나의 파라다이스가 가깝게 느껴지는 것 같다.
“안녕, 나의 파라다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