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작의 새로운 기운이 담긴 4월을 보내고 있다. 3월에 새 학기가 시작되는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의 새 학기는 4월에 시작된다. ‘사쿠라(桜, 벚꽃)’가 사쿠(咲く, 피다)’할 때 학교에 간다고 하셨던, 아이 유치원 선생님 말씀처럼 봄꽃이 만발했던 4월 둘째 주, 초등학교 입학식이 있었다. 꽃샘추위가 지나간 따뜻하고 아름다운 4월은 새로운 시작에 더없이 적절했지만, 급격히 바뀐 상황에 따른 몸의 피로는 피하기 어려웠다.
의욕이 가득했던 마음과 달리 새로운 시차에 적응이 덜 된 몸을 이끌고 아이의 등굣길에 동행하고 돌아오는 길, 함께 학부모가 된 일본인 친구가 ‘고가츠뵤오(5月病, 5월병)’에 관해 말했다. 생소했던 ‘5월병(5月病)’의 의미를 물어보니 입학(入學)과 입사(入社) 등의 행사가 대부분 4월에 시작되는 일본에서 새로운 환경을 맞이한 사람들이 지쳐서 5월에 앓는 병이라는 설명에 깊이 공감되었고, ‘월요병’이 연상되던 단어 ‘5월병’에 동질감을 느꼈다.
지내다 보니 ‘5월병’은 관념적이 아닌 실제적 개념이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피로가 쌓임이 여실히 느껴져 ‘5월병’ 대비에 나섰다. 우선, 잘 버티기 위해 식사가 중요했다.
일본 초등학교(小学校)는 오전 8시 15분까지 교실 입실을 마쳐야 하기에, 등교 준비를 위해 아침 7시 이전에 일어나야 했다. 일어난 직후 입맛이 없겠지만, 공복으로 등교하면 더 피곤할 것 같아 아침밥은 아이가 좋아하거나 잘 먹을만한 메뉴로 가급적 예쁘게 담아주었다. 아이가 선호하는 메뉴 위주였지만, 샌드위치, 토스트, 우유, 주스, 요거트, 계란, 과일, 채소, 잡곡밥, 국, 스프 중 그날그날 몇 가지를 선택하면 어느 정도 영양소의 균형을 맞출 수 있었고, 좋아하는 메뉴 덕분에 아이는 조금이나마 아침을 먹고 학교에 갔다. 새로운 환경과 타국이라는 특수함까지 가중된 생활에 잘 적응하기 위해서는 체력이 중요했기에, 하교 후에는 킥보드를 타거나 수영 등을 하며 체력을 키웠다.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놀다 보면 저녁이 되었고, 아직 서늘한 기운이 남아있는 4월의 저녁에는 슬그머니 따뜻한 음식이 생각났다. 그럴 때 ‘잔치국수’나 ‘돈지루(豚汁, 돼지고기가 들어간 미소시루의 한 종류로써, 돼지고기와 채소를 넣고 미소 된장으로 맛을 낸 요리)’는 현명한 요리였다.
건새우(乾し海老)와 채소, 대파 등으로 육수를 우린 뒤, 김과 계란 고명을 올리고 양념장을 끼얹는 따뜻한 잔치국수도 좋았지만, 잡곡밥과 함께 먹는 ‘돈지루(豚汁, 돼지고기가 들어간 일본식 된장국)’도 완벽했다. ‘돈지루(豚汁)’는 일본에 오기 전까지 생소했던 요리였으나, 언젠가 책에서 읽고 영양을 골고루 섭취할 수 있다는 설명에 만들어본 뒤 쉽게 만들 수 있고, 맛도 좋아 종종 시도하고 있다.
‘돈지루(豚汁)’ 조리법은 간단하다. 양파, 무, 당근, 감자, 버섯 등의 채소와 두부를 한 입 크기로 자른 뒤, 손질한 재료와 돼지고기를 냄비에 한꺼번에 넣고 끓인다. 깊은 맛을 위해 ‘우동수프(조미료)’를 조금 넣어주어도 좋다. 재료들이 모두 익으면 간을 보며 국물에 ‘미소(味噌, 일본식 된장)’를 넣는다. 미소가 모두 풀어지면 완성. 참고로, 여러 종류의 ‘국’이 있는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의 ‘국’ 종류는 ‘미소시루(噌汁, 일본식 된장국)’ 뿐이지만, 일본의 ‘미소(味噌, 일본식 된장)’는 연한 미소, 진한 미소, 붉은(赤) 미소, 흰 (白) 미소, 혼합(あわせ) 미소, 쌀(米) 미소, 보리(小麦) 미소, 콩(豆) 미소 등 그 종류가 무척 다양하다.
간단한 조리법에 비해 맛도 좋고 영양이 풍부한 ‘돈지루(豚汁)’는 갓 지은 밥(영양을 생각해 잡곡밥을 추천한다.)과 함께면 충분했고, 생선이나 계란 김 등의 간단한 반찬을 곁들여도 좋았다. 충분히 놀았던 아이는 양껏 저녁을 먹고, 넉넉히 햇볕을 받은 덕분에 밤 10시 이전에 잠자리에 들었다. 그렇게 ‘5월병(5月病)’에 대비하며,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반갑게도 ‘골든위크(ゴールデンウィーク, Golden week)’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한다.
‘골든위크(ゴールデンウィーク, Golden week)’는 4월 말부터 5월 초까지 이어지는 일본의 황금연휴로 4월 29일 쇼와의 날(昭和の日, 과거 ‘쇼와’일왕의 생일을 기리는 날), 5월 3일 헌법기념일(憲法記念日), 5월 4일 녹색의 날(緑の日), 5월 5일 어린이날(子どもの日)의 기념일이 모여있고 징검다리 연휴 중간 휴가를 사용하고 대체 휴무까지 포함하면 10일 가까이 휴일이 이어져 새롭게 시작된 4월에 지친 이들에게 숨통을 준다. 부지런한 상점가는 일찍부터 ‘골든위크’ 중 한 날인 ‘어린이날(子どもの日)’을 위한 잉어 깃발 ‘코이노보리(鯉こいのぼり, 아이의 성장과 출세를 상징함)’와 ‘투구(兜, 씩씩하고 강인한 아이로 자라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음)’를 진열하며 다가올 금빛 휴일에 기대감을 더한다.
설레는 ‘골든위크(ゴールデンウィーク, Golden week)’가 끝나면 5월은 본격 시작될 것이다. 5월의 남은 날이 길게 느껴지고, 결국 ‘5월병’을 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완벽한 대비란 없는 ‘5월병’을 피한다 해도, 피곤한 날은 다시 오리라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일상 속에서 성장하는 아이를 보며, 성실한 이 시간들이 무의미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안다. 매일이 내어줄 성장을 기대하며, 새롭게 주어진 오늘을 맞이한다. 그러한 바람을 담아 오늘의 간식으로 ‘카시와모찌(柏餅, 떡갈나무를 뜻하는 ’카시와‘와 찹쌀떡을 뜻하는 ’모찌‘의 합성어로 떡갈나무 잎에 쌓인 팥소가 들어있는 찰떡. 떡갈나무는 해가 지나 새로운 잎이 돋아날 때까지 오래된 잎이 지지 않아 자손 번영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를 먹기로 한다. ‘골든위크(ゴールデンウィーク, Golden week)’를 기대하는 마음을 담아. 그 후로 이어질 5월을 위해 잠시 숨을 고르며.
이 글의 원문은 소믈리에 타임즈 '요리의 말들' 칼럼https://www.sommelier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127051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좋은날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