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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May 14. 2024

‘오니기리(おにぎり)’와 함께 소풍을 다녀왔습니다.

  초등학교 새 학기를 맞이하여 아이의 학교에서 신입생 환영회(歓迎集会)를 겸해 전교생 소풍(遠足)이 있었다. 몇 차례 소풍 도시락을 만들어본 경험으로 ‘오니기리(おにぎり, 주먹밥)’를 뭉치고, 롤 샌드위치를 말고, 계절 과일을 담고 꽃 장식을 꽂는 일련의 과정을 비교적 수월하게 진행하며 도시락을 만들었다. 

 처음으로 소풍 도시락을 만들던 기억을 떠올려 본다. 보호자도 함께 참석했던 일본 유치원의 첫 소풍, 도시락으로 내게 ‘소풍’ 하면 떠오르던 ‘김밥’을 준비했다. 모두가 손에 ‘오니기리(おにぎり, 주먹밥)’를 들고 먹는 틈에서 ‘김밥’을 먹는 일은 거리낌이 없었으나, 일본 나들이의 소울푸드인 ‘오니기리’가 궁금해 다음에는 ‘오니기리’를 만들리라 생각했다. 계절이 바뀌어 다음 소풍이 되었고, 계획대로 ‘오니기리’를 만들었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일본어로 '쥐다', '잡다'를 뜻하는 ‘니기루(握る)’에서 유래한 ‘(오)니기리(握り)’라는 이름에 걸맞게, 밥을 후리카케(振り掛け, 밥에 뿌리는 조미료)나 소금 등으로 버무리고, 간이 된 밥 안에 참치마요 등의 ‘소’를 넣어 밥을 뭉치고 잡아서(握って) 삼각형이나 동그랗고 납작하게 모양을 쥐어(握って) ‘오니기리(おにぎり, 주먹밥)’용 포장지로 감싸니, 초보자였지만 제법 예쁜 오니기리를 만들 수 있었다. 

↑‘오니기리(おにぎり, 주먹밥)’용 포장지로 감싸면 예쁘게 만들 수 있다.

 ‘오니기리(おにぎり, 주먹밥)’를 만들어보니 채소 맛살 어묵 달걀 단무지 등 다양한 속 재료가 들어가는 김밥에 비해 참치마요(ツナマヨ)나 우메보시(梅干し, 매실 절임) 등 한 가지로 속을 채우니 재료 준비가 간단했고, 랩을 이용하면 밥을 뭉쳐 모양을 잡는 일이 어렵지 않았고, 간만 맞으면 ‘맛’에 큰 실패가 없었으며, 간편하게 손에 들고 먹을 수 있어 나들이 메뉴로 적격이었다. 

 그렇게 ‘오니기리(おにぎり, 주먹밥)’와 함께 두 번째 소풍을 보내며 생각했다. 일본 생활에 점점 스며들고 있구나라고. 하지만 정작 문화적 이질감은 ‘오니기리(おにぎり)’가 아닌 다른 곳에 있었다. 도시락, 물통, 간식, 돗자리 등의 준비물을 챙겨 아이가 소풍을 다녀온 후, 유치원 SNS에 업데이트된 소풍 사진을 보던 때였다. 각자 준비해 간 1인용 돗자리에 한 명씩 따로따로 앉아 자신의 도시락만을 먹는 점심시간 사진을 보며 찰나의 순간 ‘위화감’을 느꼈다. 큰 돗자리를 하나 펴고, (부족하면 돗자리를 이어 붙여) 친한 친구들과 함께 서로의 김밥을 가운데 펼쳐놓고 나눠 먹던 소풍의 풍경이 익숙했던 내게, 1인용 돗자리에 한 명씩 앉아 각자의 도시락만을 먹는 사진에서 느꼈던 마음을 ‘위화감(違和感, 조화되지 아니하는 어설픈 느낌)’ 아니면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때 알았다. 표면적으로 ‘오니기리’를 만들어 소풍에 참석해도, 본질적으로 메울 수 없을지 모르는 문화적 간극(間隙)에 관하여. 그 간극은 혼자만의 것일 수 있기에 우정(友情)의 온도차를 미리 염려해 쓸쓸했는지도 모른다. 

(좌) 첫 소풍의 ‘김밥’ 도시락, (가운데, 우) ‘오니기리(おにぎり, 주먹밥)’ 도시락

 그렇게 우리나라와 비슷한 듯 다른 문화 속에서 지내며 아이는 초등학생이 되었고, 첫 소풍을 맞이했다. 이제는 조금 익숙하게 참치마요를 넣은 밥을 쥐어 ‘오니기리’를 만들고, 1인용 돗자리를 준비하고, 빼먹은 것이 없는지 소풍 관련 유인물을 다시 살펴보았다. 학교에서 배부된 소풍 유인물에는 준비물(도시락, 물통, 세금 포함 300엔 이내의 간식, 돗자리, 손수건, 티슈, 물티슈, 쓰레기봉투)과 함께 추가 사항이 명시되어 있었다. ‘알레르기 대응을 위해 친구들과 간식 교환은 하지 않도록(アレルギー対応のために、友達とのおやつ交換はしないよう)’ 학교에서 지도하고 있으니 가정에서도 지도해 달라고. 도시락은 물론이고 간식도 나눌 수 없음에 따른 개인적 감정은 배제하고, ‘알레르기 예방’에 초점을 맞추면 합리적인 이유였기에 공지대로 ‘친구와 간식 교환을 하지 말라’고 아이를 교육해 소풍을 보냈다. 

 오후가 되어 아이가 돌아왔다. 편도 30분 거리의 산 위 공원으로 걸어서 소풍을 오갔고, (서로 간에 친목을 도모하고 신입생을 환영하는 취지에 맞게) 이동 간에는 5학년 형, 누나와 짝을 지어 손을 잡고 걸었으며, 밥을 먹고 잠깐 놀다가 소풍 장소로 이용했던 공원도 깨끗이 청소하고 돌아왔다고 알려주었고, 오래 걸어서 무척 힘들었지만 즐거웠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깨끗이 비워진 도시락과 간식을 보며 함께 나누는 즐거움은 없었겠지만, 친구들과 나란히 앉아 음식을 먹으며 보낸 시간은 즐거웠으리라 짐작해 보았다.

 같은 문화에서 아이를 키우고 계시는 분은 언젠가 말씀해 주셨다. 본인 역시 처음에는 1인용 돗자리에 각각 앉아 밥을 먹는 일본의 문화가 낯설었다고. 하지만 그렇게 하면 소외되는 아이를 만들지 않게 된다는 이야기에 생각지 못했던 부분을 보게 되었다. 친한 사람들 무리에서, 홀로 느끼는 서먹함이나 소외감을 안다. 아직 친구를 만들지 못했거나, 사교성이 부족하거나, 의도적으로 배제 당하고 있는 등의 이유로 누군가에게는 즐거운 교제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어색하고 민망한 시간이 될 수 있음을 알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자 1인용 돗자리에서 각자 밥을 먹는 문화를 조금은 열린 마음으로 보게 되었다. 

 또한, 돗자리는 일시적으로 지정된 위치일 뿐 원한다면 이동이 가능하고, 스스로 원하고 상대도 동의한다면 언제든 마음이 맞는 친구와 서로의 돗자리를 오가며 우정을 쌓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면 돗자리만큼의 거리는 정해져 있지만 나머지는 각자에게 주어진 몫 아닐까. ‘의무’가 아닌 ‘선물’처럼 주어진 누군가와 우정을 쌓는 일. 마음이 맞는 친구를 만나, 주어진 거리를 뛰어넘어 우정을 쌓을 수 있기를. 빛나는 우정이 주는 선물을 누리기를. 각자의 음식에 담겨 각자에게 스며들었을 그 ‘고유함’을 서로에게 나눠줄 수 있기를. ‘오니기리’에 친구들과의 우정과 생생했던 소풍의 시간, 형 누나들과 손을 잡고 소풍을 오가던 길의 즐거웠던 기억이 담기기를. 

 그렇게 오니기리와 함께 다녀온 소풍(遠足)을 통해 자신의 고유함이 한줄기 깃들었을 추억을 안고우리는 이곳의 삶에 한 걸음 더 스며들어 간다     

덧. ‘봄(春)’을 맞이해 일본 편의점은 ‘오니기리와 함께 외출하자(おにぎりと一緒にでかけよう)’는 문구를 내세워, 나들이 주력상품인 ‘오니기리’를 두 개 구매하면 음료를 한 병 제공하는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오니기리와 함께 외출하자(おにぎりと一緒にでかけよう)’

 안녕하세요^^ 오늘도 이곳에 오심을 환영합니다. 이 글의 원문은 소믈리에 타임즈 '요리의 말들' 칼럼https://www.sommelier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127134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좋은날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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