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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Jul 22. 2024

짬뽕(チャンポン)이 그리운 날에

 ‘나가사키(長崎)’ 지명이 익숙했던 이유는 ‘나가사키 짬뽕(長崎 チャンポン, 진한 육수에 고기, 해물, 채소 등을 넣고 끓인 하얀 짬뽕)’ 덕분이었다. 이따금 후쿠오카(福岡) 근교에 위치한 나가사키에 다녀올 때면, 목적지 방문을 마치고 당연한 수순으로 짬뽕을 먹고 돌아왔다. 본토에서 맛보는 나가사키 짬뽕은 맛있었지만, 해물과 채소가 듬뿍 들어있는 그 뽀얀 짬뽕만을 위해서라면 나가사키까지 방문할 필요는 없었다. 유명한 요리들이 그러하듯 ‘나가사키 짬뽕’도 나가사키가 아닌 곳에서 언제든 맛볼 수 있었고, 맛도 본토와 다르지 않았으니깐. 덕분에 가끔은 근거리에 있는 ‘나가사키 짬뽕’ 프랜차이즈에 방문하곤 했다. 

짬뽕의 본 고장 ‘나가사키(長崎)’의 ‘하우스텐보스(ハウステンボス)’

 ‘나가사키 짬뽕’은 어디서나 맛있었다. 원조 ‘나가사키 짬뽕(면과 채소의 양은 고를 수 있고, 면은 생략도 가능하다.)’은 물론 ‘볶음 짬뽕(皿うどん)’과 한시적으로 출시되는 ‘계절 짬뽕’까지 다양한 종류의 일본식 짬뽕은 저마다의 매력이 있었다. 그럼에도 어느 순간 허전했다. ‘짬뽕’이라는 단어에 우선적으로 연상되던 전형적인 짬뽕의 부재로 인한 허전함 이었다. ‘얼큰한 짬뽕이 먹고 싶다.’는 그리움은 불쑥 불쑥 찾아왔고, 전형적이라 여겨온 빨갛고 매운 한국식 짬뽕의 이미지는 선명해졌다. 한국식 중화요리가 보편적이지 않은 지역에서 그 그리움은 즉시 해소될 수 없었기에, 하얀 나가사키 짬뽕에 고추기름을 뿌리거나 한시적으로 판매되는 매운맛이 가미된 짬뽕으로 대체해 보았지만 충족되지 않는 그리움은 갈증을 더했다. 

 해결의 실마리는 의외의 곳에 있었다. 짬뽕은 중국집에서 ‘파는’ 요리라는 인식이 굳었을 뿐, 사실은 ‘만들 수 있는’ 요리였다. 남편은 시판(市販) 되는 ‘중화 면(中華そば)’으로 짬뽕 만들기에 나섰다. 

중화요리 혹은 야끼소바(焼そば)에 사용되는 데친(ゆで) ‘중화 면(中華そば)’

 뜨거운 기름을 넉넉히 두른 웍(wok)에 다진 마늘과 대파, 돼지고기를 갈색빛이 감돌 때까지 볶는다. 채소(당근, 청경채, 양배추, 양파, 버섯 등)를 투하해 함께 볶는다. 채소의 숨이 죽으면 볶아진 재료가 모두 잠기도록 물을 붓고 한동안 끓이며 간장, 소금, 고춧가루, 청양고추를 넣어 맵기와 간을 조절한다. 마지막으로 해물(오징어, 새우, 바지락, 굴 등)을 넣고 센 불로 빠르게 익혀 짬뽕 육수를 완성한다. 삶아서(ゆで) 가공된 중화면(中華そば)을 끓는 물에 1-2분가량 데쳐 건져낸 뒤, 면 위에 짬뽕 육수를 끼얹는다. 

 의외로 빨간 짬뽕은 어렵지 않게 만들어졌다. 익숙한 외양이었고, 그리워하던 맛이었다. 본질에 충실한 것은 별다른 설명 없이 존재로 자신을 증명하듯, 요리도 그러했다. 제대로 만들어진 짬뽕은 그 자체로 다른 설명이 필요치 않았고, 지극히 자기 자신다운 요리였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상태. 다른 것의 도움이 없어도, 자신만으로 완전한 요리. 홀로 존재감이 충분했던 짬뽕은 용감한 요리였다. 

 잘 만들어진 짬뽕을 각자의 그릇에 담아 가족들과 먹으며 같은 맛을 공유했다. 어느덧 부쩍 자란 아이도 약간의 희석을 가미한 짬뽕을 먹을 수 있게 되어 같은 맛이 담긴 추억을 공유할 수 있었다. 같은 요리를 먹는 시간,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요리에 각자의 추억과 그리움이 담겨 있음을. 직접적인 해결책은 아니었지만, 덕분에 그리움이 조금 희석되었다. 넉넉히 만든 짬뽕은 식사를 마치고도 남았고, 남은 것은 잘 포장해 냉장고에 넣었다. 다시 그리움이 찾아오는 날 언제든 꺼낼 수 있다고 생각하니 그 존재가 든든했다.  

직접 만든 한국식 ‘짬뽕(チャンポン)’

 지극히 자기 자신다웠던 음식 덕분에, ‘나다움’에 관하여 생각해 보았다. 용기가 부족해 나답지 못했던 시간들. 어쩌면 그것은 시도해 보지 않고 굳어진 생각이었을 뿐, 생각만큼 어려운 일이 아니었던 건 아니었을까.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지 못했던 짬뽕이 시도해 보니 만들 수 있는 요리였듯, 나답지 못했던 시간들은 어쩌면 자기 자신이 되는 일은 어려운 일이라 지레 짐작해버리고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다시 짬뽕을 데우는 날, 작은 일이라도 나다운 일을 시도해 보리라 생각한다. 아주 작은 일이라도 좋으니 마음이 원하는 일 한 가지를. 짬뽕에 담겨있던 작지만 자신의 전부였던, 그래서 자신을 자신답게 만들어 주었던 용기를 떠올리며. 


 안녕하세요. 무더운 여름 잘 지내고 계신지요? 오늘도 이곳을 방문해 주셔서 반갑습니다. 이 글의 원문은 소믈리에 타임즈 '요리의 말들' 칼럼 https://www.sommelier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127540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더위 조심하시고 늘 몸도 마음도 건강하시길 바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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