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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Aug 05. 2024

야끼소바(焼そば)에 담긴 것들

 도쿄(東京)에서 유학 생활을 시작하던 때, 처음으로 친구에게 식사 초대를 받았다. 메뉴는 야끼소바(焼そば). 이름조차 생소했던 야끼소바를 처음 만난 날이었다. 친구는 ‘야끼소바’는 ‘볶다, 굽다’는 뜻의 ‘야끼(焼)’와 ‘메밀면’을 뜻하는 ‘소바(そば)’가 결합된 단어로, 실제로는 메밀로 만든 소바가 아닌 밀가루로 만든 중화(中華) 면을 볶아 만드는 요리라 설명하며 야끼소바를 만들어주었다. 

 데친 상태(ゆで)로 판매되는 중화 면(中華そば)을 끓는 물에 1-2분 정도 끓여 전분기를 뺀 뒤 건져두고, 기름을 두른 프라이팬 혹은 웍(wok)에 한 입 크기로 손질한 채소(양배추, 양파 등)와 고기(얇게 손질된 대패 삼겹살 등)를 볶는다. 재료들이 노릇하게 익으면 데쳐둔 면을 투하해 야끼소바(焼そば) 소스를 넉넉히 뿌린 뒤 센 불에 볶는다. 모든 재료가 소스에 잘 버무려지면 완성. 기호에 따라 가쓰오부시나 계란프라이 등을 곁들인다. 

 야끼소바의 첫인상은 호감이었다. 친구와 함께 일상의 이야기들을 나누며 만들어진 그 요리는 외형적으로도 먹음직스러웠고, 아는 맛 중에 근접한 맛을 꼽자면 ‘짜장 라면’이 떠오르던 맛은 처음 접하는 요리의 낯선 느낌을 줄여주었다. 낯설고도 익숙했던 야끼소바는 첫 만남에서 예고했다. 도쿄에서 새롭게 시작된 유학 생활이 순탄하게 흘러갈 것을. 예고대로, 유학 시절의 삶은 좋은 사람들과 더불어 흘러갔다. 부모님을 떠나 독립적으로 새로운 삶을 겪으며 성장했고, 학업과 일을 균형 맞춰 병행했으며, 지금도 우정을 이어가는 좋은 만남이 이어졌다. 유학생활의 순간순간 야끼소바는 등장해 유학 생활을 격려했다.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간단하지만 존재감 강했던 메인 요리로, 아르바이트를 마친 늦은 밤의 야식으로, 어느 날의 식사 메뉴로, 나들이를 떠나던 날 샌드위치의 소가 되어. 

 처음 ‘야끼소바 샌드위치(焼そばサンドイッチ)’를 보았던 날의 느낌 또한 신선했다. ‘빵(핫도그 빵)’안에 ‘면(야끼소바)’이 들어가는 샌드위치의 조합이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맛을 본 뒤 수긍했다. 탄수화물(빵)과 탄수화물(면) 조합의 당위성은 이해가 필요치 않음을. ‘맛있음’으로 모두 설명되던 그 둘의 조합은 처음부터 하나였던 듯 옳았다. 그날의 나들이에 야끼소바 샌드위치만큼 적당한 메뉴가 있었을까. 야끼소바 샌드위치는 나들이의 꼭 필요한 조연이었다. (생각해 보니 서로 다른 탄수화물의 조합은 생소한 일이 아니었다. 빠네 파스타처럼, 떡 라면처럼.)

↑야끼소바 샌드위치

  유학 생활이 이어지며 아끼소바에 담긴 것은 늘어갔다. 도쿄 생활이 낯설었던 나를 초대해 요리를 만들어주고 적응을 도왔던 친구의 마음이, 밤늦도록 아르바이트를 했던 수고가, 나들이의 활기와 친구들과의 우정이, 그 시절의 열정과 오직 그 시절 겪을 수 있던 빛나는 경험들이... 미숙했지만 성실했던 유학 생활을 격려하던 나의 야끼소바에는 많은 아름다운 것들이 담겼다.   

 시간이 흘러 유학 생활은 끝났고, 나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갔다. 도쿄에서 삶의 어느 시절을 함께 보낸 우리들은 일본에 남거나, 한국으로 돌아가거나, 더러는 제3국으로 떠나 각자에게 주어진 삶을 살며 가끔 안부를 주고받았고, 그 시절을 함께 보낸 야끼소바도 조금씩 잊혀졌다. 

 시간이 지나, 뜻밖에도 다시 일본으로 돌아왔다. 익숙하고도 새로웠던 일본을 다시 감각하며 일본 생활에 스며들던 중, 야끼소바와 재회(再會) 했다. 목적지까지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우연히 들린 한 편의점에서였다. 편의점을 둘러보던 아이가 집어 든 것은 야끼소바 샌드위치였고, 오랜 시간이 무색하게 야끼소바는 기억 속 모습 그대로 나타났다. 반가운 마음에 나의 한 시절을 품은 그 요리를 아이에게 소개했고, 아이는 처음 보는 야끼소바 샌드위치를 익숙하게 베어 물며 엄지를 치켜올렸다. 나의 추억을 품은 요리가 아이에게 발견되어 아이의 세계를 함께 품는 순간이었다. 

 조금씩 자신의 일을 스스로 하며 자라고 있는 아이에게 하나 둘 요리를 가르치고 있다. 이번에는 야끼소바 샌드위치를 함께 만들어 보기로 한다. 아직 불을 쓰는 조리는 할 수 없는 아이를 위해 야끼소바는 미리 만들어진 것을 구입했다.(※ 야끼소바가 보편적인 일본에서는 편의점이나 마트 즉석식품 코너에서 야끼소바를 쉽게 구할 수 있다.) 아마도 오래전 친구가 알려준 예의 그 방식으로 만들어졌을 야끼소바와 핫도그용 빵과 마요네즈를 준비한다. 빵 속에 마요네즈를 얇게 펴 바르고 야끼소바를 듬뿍 넣는다. 면이 바깥으로 삐져나오지 않도록 깔끔하게 모양을 잡고, 기호에 따라 토핑으로 마요네즈를 뿌려준다. 모양과 맛을 갖춘 야끼소바 샌드위치가 금세 만들어졌다. 

 오랜 친구가 된 야끼소바를 오랜 친구가 될 아이와 함께 즐기던 여름이었다. 야끼소바에 담긴 아름다운 것들은 그렇게 시간의 흐름과 함께 하나 둘 늘어간다. 새롭게 그곳에 담길 아름다움을 기대해 본다.  

(좌, 가운데)면과 소스만 있으면 야끼소바는 쉽게 만들 수 있다.(우) 마트 즉석식품 코너에서는 야끼소바 완제품을 쉽게 구할 수 있다.

 안녕하세요. 월요일 잘 시작하고 계신지요? 오늘도 이곳을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의 원문은 소믈리에 타임즈 '요리의 말들' 칼럼 https://www.sommelier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127598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한주 잘 보내시고 8월 한달도 건강하시길 바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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