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탈(逸脫)과 이탈(離脫)의 날들

'나'라는 군인

by 수진

-일탈(逸脫):정하여진 영역 또는 본디의 목적이나 길, 사상, 규범, 조직 따위로부터 빠져 벗어남.

-이탈(離脫):어떤 범위나 대열 따위에서 떨어져 나오거나 떨어져 나감.


군 생활 초반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반복하는 '일탈'이 있다면 그것은 근무지 '이탈'이리라. 나라는 군인의 숨통이 되는 이 행위를 멈출 수 없다. 모든 것이 규범대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여겼던 초임장교 시절 어떻게 이탈을 시작하게 되었을까. 뭐든 처음이 어렵지 다음부터는 처음만큼 어렵지는 않았기에 오래도록 지속된 것 아닐까. 그럼에도 내게 근무지를 이탈하는 행위는 언제나 복귀 경로를 염두에 두고 매 순간 휴대전화를 사수하며 이루어졌고, 그 줄기찬 이탈 행위는 이상하리만큼 한 번도 들킨 적이 없다. 아마 본가가 멀었고, 달리 갈만한 곳도 없을 듯했으며, 모범적인 군인은 아니어도 사고는 치지 않을 이미지였기 때문일까. 덕분에 아무것(근무, 출근, 약속)도 없는 주말 틈틈이 ktx로 편도 3시간이 넘는 본가에 가있던 나를 의심하던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표면적으로 무사히 첫 보직을 마치고 두 번째 부대인 사단 예하 정비 대대로 이동했다.

두 번째 보직인 '운영 장교'는 마음에 드는 보직은 아니었지만 받아들인 이유 중 하나는 전역 전 다른 부대의 다른 업무도 겪어봐야 한다는 생각과 부대 위치가 결정적이었다. 자차로 산길을 밟으면 본가에서 1시간 내외의 위치. 거리상 위수지역(衛戍地域, 어떤 군부대가 담당하는 작전 지역 또는 담당 지역)은 아니었지만 시간을 따져보면 오갈 수 있으리라는 계산이었다.

그렇게 얼마간 환영받는다는 느낌과 더불어 이 부대로 왔다. 탄약 사령부 파견 간 마주쳤던 대대장님은 처음부터 내게 호의적이셨고, 육군본부 파견 간 친분이 생겼던 그 아이 또한 본인의 부대와 가까워진 나의 이동을 반겼다. 결국 파견을 계기로 친분이 생겼던 그 아이와는 자연스러운 친분 형성처럼 자연스럽게 멀어졌지만.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던 관계를 마침내 규정하지 않고 맺었지만, 그럼에도 진급 전출 부대 이동 등 변화의 시간 그 아이가 내어준 호의와 격려가 있었다.

그리고 부대 이동 후에도 나의 이탈은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빈번해지고 과감해졌다. 전입 후 첫 주말, 두고 온 짐을 핑계로 '보고'의 절차를 겪고 본가에 다녀온 후 불시 호출에도 오갈 수 있으리라는 판단이 섰다. 그 후 수시로 나는 이곳을 벗어난다. 주말은 물론 때로는 평일에도. 전투복을 입고 퇴근과 동시에 차를 몰고 위병소를 지나쳐 본가로 직행 후, 다음날 그 복장 그대로 위병소로 들어오는 경로로. 문제라면 룸메이트에게 나의 부재를 숨길 수 없다는 사실일까. 작전과에 근무하는 그는 나 때문에 퍽 괴로울지 모른다. 그럼에도 나의 괴로움을 피해 부대가 있는 이곳을 자주 떠난다. 들킬 것에 관한 염려보다 들켜도 어쩔 수 없다는 체념에 가까운 마음으로.

당연하게도 꼬리가 길면 언젠가는 밟히듯 그날이 왔다. 나의 일탈이 발각되는 날. 주말이었다. 평소처럼 근무지를 이탈한 나는 한술 더 떠 휴가 나온 후배와 약속까지 잡았다. 약속장소에서 후배를 만난 순간 '진돗개 하나(위협 상황이 실제 일어난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 가장 높은 단계의 경계 조치인 '진돗개 하나'가 발령되며 군대와 경찰은 다른 임무가 제한되고 명령에 의해 지정된 지역에서 수색 및 전투를 수행한다.)'가 발령되었다는 경보 전화가 왔다. 긴 시간 일탈을 반복하며 방심했던 나의 머릿속에 그날의 복귀 경로는 없었다. 빠르게 택시를 잡아타고 집에 들러 전투복으로 환복 후 빛의 속도로 차를 몰아 부대로 갈 뿐이었다. 절반쯤 이동했을까. 당직사령에게 전화가 왔다. 불시 호출이었고 씻는 시간을 감안해도, 애초에 숙소에 있었다면 자연스럽게 복귀할 시간은 지났다. 변명은 안 하니만 못하기에 현재 나의 위치를 알린 뒤 빠르게 지휘 통제실로 향했다. 대대장님은 휴가였고 상황 수습으로 바빴기에, (실제 상황이 아닌 훈련 상황이었다.) 현장에 투입해 상황 해제 후 퇴근했다.

그 후 평소와 다름없는 날이 이어졌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마침내 과장의 분노가 폭발하는 날이 왔다. 모두에게 그간 차곡차곡 쌓였던 그의 분노가 표출되던 날, 나에게 향했던 화살은 그날의 일이었다. 분노의 정도는 차치하고 내용은 타당했다. 고스란히 받아들였고, 한동안 그와의 관계에서 감돌던 냉기도 감당할 몫이었다. 군 생활에 뜻이 넘치던 그가 헌신적이고 열정적인 운영 장교를 만났더라면 좋았을 텐데, 내가 나라서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날의 일로 비 공식적으로 산으로 가던 나의 현주소가 커밍아웃되었다. 마음에 숨긴 것을 끝까지 감출 수는 없었을 테니 언젠가는 드러날 일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차라리 후련했지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으니 그날을 계기로 나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남은 시간 역시 지나치게 헌신적인 사람은 될 수 없겠지만, 내게 맡겨진 업무는 빈틈없이 처리해서 업무 공백이 없도록 하는 것. 그것이 단지 나의 최선이었다. 그렇다면 일탈과 이탈의 빈번함과 정도는 어떻게 될 것인가...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이렇게 저렇게 버티다 보니 어느덧 몇 개월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


안녕하세요. 한주 잘 시작하고 계신지요. 안 좋은 소식으로 마음이 무거운 아침입니다.

KakaoTalk_20241230_101623420.jpg 희생자분들께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어느덧 올해도 마지막이 되어가고 있네요. 한 해 동안 많이 감사했습니다. 모두 한 해 동안 많이 고생하셨습니다. 새해에는 올해보다 기쁘고 좋은 일들이 많으시길 바라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다음 연재 2025년 1월 1일은 휴재하겠습니다. 새해에도 좋은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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