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업무의 기쁨과 슬픔
부대 이동은 잘 한 선택이다. 업무 성향의 변화(현장업무→행정업무)가 필요한 시점도 지났고, 업무를 둘러싼 환경의 변화도 필요했다. 부대 이동 후 전보다 주변에 동기들이 많아지고 본가가 가까워지니 심적으로 기댈 곳이 생겼고, 아직 멀었지만 조금씩 군 생활의 끝도 보이고 있다. 끝이 보이면 버틸 힘이 생기니깐.
얼마간 행정업무를 해본 결과 적성과 비(非) 적성 측면에서 보면, 행정업무는 적성 쪽에 가까웠다. '업무' 자체는 납작하지 않기에 업무 내에서도 선호하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나뉘지만, 행정 업무의 본질인 정확하게 답이 맞아떨어지는 문서를 다루는 부분이 적성에 맞는다. 규정에 의거해 문서를 틀에 맞춰 빈틈없이 기안하는 일, 상급부대 지시사항을 토대로 부대 업무의 방향을 정하고 추진하는 일. 답이 있는 일들은 할 만했고, 조용한 사무실에서 문서를 파고드는 업무는 때로는 성취감을 준다. 이 문서 잘 만들었구나, 이 문서는 빈틈이 없구나 싶은 성취감. 관리할 소대원들이 없고, 업무시간 함께하는 계원들과는 부담 없이 지낼 수 있으니 그 부분도 좋다.
그럼에도 업무의 본질 외 부분, 즉 업무를 둘러싼 입체적 상황은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 업무가 속한 조직(군대)은 배제해 생각하더라도, 단계별 보고 체계와 그에 따른 반복 수정의 실효성에 관한 의문, 문서에서 다뤄지는 업무와 적용되는 현장과의 괴리. 타 부서 혹은 타 부대와의 협조 간 신경 써야 할 관계 등. 여느 조직에도 있을 문제 외 개인이 겪는 특수한 문제를 꼽자면 그것은 여자와 군인과 행정의 교집합 영역의 문제이리라. 구체적 업무 중 하나는 나의 업무가 아님에도 자주 나에게 주어지는 자료 협조 업무.
대대 지휘 통제실은 결국 상급부대(사단)의 지시에 맞춰 움직인다. 덕분에 상급부대와의 협조는 필수적이다. 물론 규정이 있고 하달되는 공문이 있지만, 모든 업무를 가시적으로 문서화할 수 없기에 하달되는 공문 외에도 업무의 정확도를 위한 많은 자료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공들여 문서를 작성해도 '이건 네 생각이야? 확인해 봐' 혹은 '추가 자료 구해와'등의 답변이 돌아오기 일쑤다. 반복되는 비공식 자료 요청을 위한 업무 연락. 평소 업무도 바쁜데, 예하부대의 (불필요한) 요청에 호의적인 담당자가 얼마나 될까. 이때 민망함을 감당하는 역할은 자주 나로 지목되고 있다. 과장은 상급부대는 부서 내 다른 인원들보다 나의 요청에 빠르고 호의적으로 자료를 내어주니, 그 호의를 이용해 대부분의 자료(나의 업무는 물론 나의 업무가 아닌 영역까지) 확보를 나를 통해 해결하고 있다고 뿌듯함을 담아 말한다.
상급자의 지시에 굳이 토를 달지 않지만, 그 후 자료 요청 간 느낀 감정은 회의감이었을까. 때로는 자료 협조 요청에 응대해 주시는 분께, 요청 자료를 첨부한 사적 내용이 담긴 답변이 오기도 해 누가 볼까 봐 빠르게 삭제한 뒤 이 업무는 더욱 부담스러운 업무가 된다.
조직생활 간 업무분장(業務分掌)에 관한 이의는 제기하지 않는다. 수직적 조직에 몸담고 있고 불화를 싫어하는 성격도 있지만 나 개인에서 비롯된 이유도 있다. 우선, 자신감 부족으로 분류될 수 있는데 이런 논리이다. 어떤 일에 관하여 이의를 제기하려면 자신의 일은 완벽히 해야 한다는 논리. 물론 나의 일은 빈틈없이 처리하려 늘 노력하지만 그럼에도 '일'의 부족함을 찾으려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기에, '(다른 사람들도 있는데) 이걸 왜 절 시키시죠?'라고 의문을 제기했을 때, 업무 수행 능력도 떨어지면서 불만은 많다고 여겨질 것에 관한 방어라 할 수 있다.
다음은, 좋든 싫든 객관적으로 여자 군인이라는 정체성을 생각한다. 때가 되면 벗어버릴 정체성이지만 그곳에 부정적 이미지를 더하고 싶지 않다. 몇몇 사람의 수군거림이 뇌리에 남았기 때문일까. '여자 군인은 이러이러하다.'라는 평가를 직, 간접적으로 접한 적이 있다. 말하는 이의 한정적 시각과 성품에서 원인을 찾을 수도 있지만, 행여나 나의 이의 제기를 통해 '여자 군인'은 함께 일하기 깐깐하다는 이미지를 추가로 얹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또한, 때가 되면 떠날 조직에 관한 체념에 가까운 마음도 있겠다. 얼마간 지내다 떠날 조직인데 굳이 들쑤셔야 할까 싶은 마음. 끝으로는 나 개인의 외적 이미지를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다. 이제처럼 일터의 사람들과 마찰 없이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면 될 뿐, 꼬박꼬박 따지고 드는 이미지를 그들 눈에 비치는 '나'에게 얹어주고 싶지 않은 마음.
이것이 이 조직 내 나의 한계일까. 결과적으로 나는 종종 부당하다 여겨지는(분류하자면 나의 성별을 활용하려는 지시)를 받아도 마음속 여러 가지 생각들을 누르고, 지시에 따르며 한편으로는 회의감에 사로잡혀 버리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와 대조적인 불안함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여자 군인'의 입지를 생각해 나서지 않으면서, 그로 인한 그들의 입지를 우려한다. 내가 조직의 막내라면 모를까 나는 이제 조직의 막내가 아니다. 그렇다면 같은 성별의 여자 후배 혹은 여자 동료들의 눈에 '나'는 어떻게 비칠까. 그들에게 비칠 그들의 상급자인 나를 생각하면 이것을 넘기는 것이 능사일까. 다른 성별이지만 나보다 직급이 낮은 하급자 들이나 행정 계원들에게 나는 어떻게 비칠까. 여러 가지를 생각하면 나 개인의 일이지만 개인의 일이 아닌 일이 되어버려 다시 혼란에 빠지는 것이다. 이 조직의 남자 성별을 가진 이들은 알 수 없을 나의 고민.
중대 순찰에 동원되는 업무는 어떠할까. 업무의 옷은 입었지만 나에게 요구되는 역할은 무엇인가. 그것은 나의 업무가 아님에도 대대장님이 영외 중대 순찰 가는데 운영 장교도 함께 가자는 타 간부의 요청에 따라나서지 않을 명분은 없다. 운영 장교가 함께 가야 화기애애하다는 것이 명분일까. 직책보다 성별이 반영된 동행으로 비치는 건 아닐까.
이 상황에 정답은 없다. 끊임없이 본업을 통해 나를 증명하는 수밖에. 성별을 떠나 군인으로서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는 일.
틈틈이 나는 '보직 교체'요청을 떠올리지만, 끝내 명확한 결론을 찾지 못하고 다시 나의 업무를 빈틈없이 파고들고자 노력하며... 틈틈이 '굳이 내가 저 일을?'라고 여겨지는 상급자의 지시를 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