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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의 심야식당(深夜食堂)

by 수진

어두워지면 좀처럼 나가지 않는다. 치안은 괜찮지만 운동삼아 가족들과 집 근처를 산책하는 것 외에 딱히 갈 곳도 없고, 만날 사람도 없다. 늦도록 놀만큼 체력이 좋거나 열정이 있는 것도 아니며, 무엇보다 아이가 있으니 저녁시간은 주로 집에서 보낸다. 그렇게 되어버렸고, 대체로 쭉 그래왔다.

모처럼 아이가 없었다. 그래서 모처럼 남편과 밤에 나섰다. 특별히 정한 곳 없이 동네 곳곳을 훑다 보니 낮과 다른 풍경이 있었고,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밤에 불을 밝히는 가게들이 눈에 들어왔다. 새로운 지역에 온 기분이었다. 마음이 끌리는 곳을 정해 살짝 문을 열어보았다. 환영의 인사와 더불어 "지금 카운터 석(カウンター席, 일본의 좌석은 카운터석과 테이블석으로 나뉜다.) 뿐인데 괜찮으세요?" 질문이 들려온다. "물론이죠."가게의 진정한 얼굴은 카운터 석에 있다고 생각하기에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곧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다. 몰랐다. 가까운 곳에 매일 열리는 심야식당(深夜食堂)이 있는 줄은. 화기애애하고 왁자지껄한 손님들, 동네 단골들의 나와바리, 손님들끼리도 안면이 있는 곳, 오직 그곳의 기운을 담은 활기가 있는 곳, 초면인 이도 쉽게 흡수될 수 있는 곳. 얼결에 들어간 곳에 그런 세계가 있었다.

오토시(お通, 이자카야에서 손님에게 기본으로 내어주는 자릿세 개념의 가벼운 웰컴푸드.)가 정갈하게 놓인 테이블 석에 앉아 마스터(マスター, 주인)를 마주하며 메뉴를 펼쳤다. 사시미, 사라다, 두부, 계란... 이곳과 빈틈없이 어울리는 정석적인 요리들. 마스터의 능숙한 손놀림을 지켜보다가 갓 만들어진 요리가 눈앞으로 이동하는 카운터석의 특권까지. 익숙했던 동네가 순식간에 일본의 여행지가 되었다.

손님들과 대조적으로 마스터는 과묵했다. 잘 오셨다고, 오래도록 편하게 머물다 가시라는 마음을 요리에 담아 몸으로 건넬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 공간을 꾸린 이는 사장도 아니고, 주인도 아니고 '마스터'라는 호칭이 잘 들어맞는다.)

오랜 시간이 응축된 장소에 흐르는, 시간이 만들어내는 기운. 덕분에 얼마간 유쾌하게 머물다 떠났고, 심야식당은 우리를 문 밖까지 배웅하며 마무리까지 나이스했다.

문을 나서자 다시 고요함이 찾아왔다. 익숙했다. 조금 추웠지만 걷기에 나쁘지 않던 봄밤을 사부작 걸어 여행지에서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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