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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런한 마음으로

by 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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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을 기점으로 일본에는 독특한 활기가 흐른다. 새해(新年)와 다른 느낌의 그 활기는 새로운 시작점을 통과하는 이들에게 비롯된 활기일 것이다.

일본의 새 학기는 4월에 시작된다. 추운 날이 지나고 새 움직임이 본격 시작되는 4월, 등굣길의 학생들에게는 활기가 느껴진다. 자신을 넘어 주변까지 흐르는 활기. 보이지 않아도 선명하게 감지되는 활기를 품고 시작점을 통과하는 이들은 뭉클함을 자아낸다.

압권은 신입생이다. 몸집만큼 큰 란도셀(ランドセル, 일본 초등학생 책가방)을 메고 처음으로 학교(小学校, 일본 초등학교) 공간에 발을 내딛는 이들에게는 앙증맞은 비장함이 느껴진다. 몸은 작지만 시작을 앞둔 마음의 크기는 작지 않음을 보여주는 산뜻한 비장함. 란도셀을 감싼 신입생용(用) 노란 커버는 비장함에 애틋함을 더해준다. 마치 갓 태어난 병아리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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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출발점 앞에 선 이들의 가지런한 마음을 좋아한다. 자신의 자리를 아름답게 빚어가는 이의 정갈한 마음을. 그 마음은 삶을 향한 애정에서 비롯된 것 아닐까.

누구에나 그런 처음이 있다. 첫발을 내딛고, 처음을 경험하고, 처음 만나고, 처음 시작하던 시간. 주어진 환경은 달라도 우리에게는 설렘으로 맞이하던 첫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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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첫 마음은 언제 바랬던 것일까. 설렘은 사라지고, 일상은 무료해진 날들. 빛나는 마음은 사라지고 아름다움은 퇴색된 날들. 좌절하고 의욕을 잃었던 날들. 모든 것이 당연해 감흥을 느끼지 못한 날들. 그 마음은 언제 찾아온 것일까.

WJkF5OOnFekOnP6PMDHdJ1maujLUBC6wQjsFTBSl__900_600.png 사진 출처:https://www.crossroadfukuoka.jp/kr

그럼에도 우리에겐 여전히 새로운 날이 있다. 새로운 해(年)가, 새로운 달(月)이, 새로운 시작과 기회가 다시 우리에게 온다. 첫 마음을 잃고 넘어지고 다시 넘어져도 우리는 출발선 앞에 선다.

그렇게 출발점 앞에 선 이들에게 좌절의 쓴맛만 있지 않을 것이다. 그들을 위한 달콤함이 아직 남아 있다. 넘어지고 좌절하고, 쉬어가고 때로는 오래 쉬어가도 자신의 길 위에 서 있는 이에게 어느 날 달콤함이 다시 찾아오리라는 것을. 앙증맞고 산뜻한 날이 예상 못 한 순간 선물처럼 그렇게.

부디 자신의 길 위에서 삶의 서사를 아름답게 만들어 가기를. 가지런한 마음으로.

※ 사진의 ‘히요코(ひよこ, 병아리)’ 만쥬(饅頭)는 후쿠오카(福岡) 특산품으로 병아리를 본뜬 귀여운 외양과 달콤한 맛으로 널리 사랑받고 있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이곳에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의 원문은 '소믈리에 타임즈' 칼럼 https://www.sommelier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129068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5월도 즐겁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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