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스시(寿司)
봄이 왔다. 변함없이 아름다운 봄이, 변함없이 아름다운 매화꽃과 함께.
반짝이는 이 계절 공원에 나가 구체적인 봄을 느껴본다. 계절에 빛깔이 있다면 봄은 어떤 빛일까? 영롱한 하늘과 투명한 볕, 초록 생기를 품은 나무와 흐드러진 꽃. 모든 아름다움이 모인 봄은 총천연색 아닐까. 갖가지 빛깔이 담긴 총천연색의 봄을 관통하는 이 시간, 봄을 닮은 요리를 떠올린다. 스시(寿司). 화려한 색색의 네타(ネタ, 재료라는 뜻으로 스시 위에 올라가는 재료들을 뜻한다.)가 올라간 스시는 봄을 닮아있다.
오래전 나는 도쿄(東京)의 여행자였다. 연고도 없는 도시에 한동안 홀로 머물며 게스트하우스를 겸하던 낡은 숙소에 짐을 풀었다. 2층 침대가 놓인 방에서 수시로 바뀌던 룸메이트들을 스치던 여행의 시간, 새로운 룸메이트가 나타났다. 도쿄에서 일을 하던 그는 통성명을 마친 뒤 스시를 사주겠다며 나가자고 청했다. 여행 중이라 가능했을까? ‘우린 이제 만났잖아요.’를 속으로 삼키며 그를 따라나섰고, 처음으로 본토의 스시를 맛보았다. 능숙한 일본어로 스시를 주문해 주던 그의 호의에 답할 새 없이 그는 곧 새 거주지로 떠났고, 떠나던 날 나에게 얼마간의 돈을 쥐여주었다. 타국에서는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비상금을 지니고 있으라는 당부와 함께. 그 온기가 용기를 주었을까. 여행을 마친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계획에 없던 한동안의 삶을 도쿄에 풀었다. 일본에서 살아보고 싶은 이유로.
필요한 서류를 마련해 도쿄에 머물며 친구를 사귀고, 생활비를 벌고, 일본어를 배우던 시간들. 잠시 맛본 자립(自立)의 삶은 녹록지 않았지만 못 견딜 시간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의 존재(온기)가 예고했듯, 곳곳에서 종종 뜻밖의 온기를 지닌 이들이 나타났다.
시간이 흘러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간 뒤 아주 가끔 그를 생각했다. 그가 내어준 호의와 그날의 스시, 그리고 그의 이름에 들어있던 ‘매화(梅)’라는 한자를. 그렇게 또 긴 시간이 흘렀다.
갑작스럽게 한동안의 삶을 일본에 풀었던 나는, 뜻밖에도 긴 시간이 지나 거주자의 신분으로 다시 일본에 왔다.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조금은 옛 친구를 만나는 마음으로.
다시 시작된 일본의 삶은 얼마간 낯설었고 얼마간 익숙했다. 여전히 봄은 왔고, 여전히 매화꽃은 피었으며, 가끔은 스시를 먹으러 갔다. 가족들과 함께, 새로운 인연들과 함께. 희미하게 기억하는 한 시절의 그처럼 나 역시 이제 익숙해진 일본어로 주문하며.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럼에도 ‘그’처럼 낯선 이에게 호의를 내어주는 어른은 아직 되지 못했지만, 앞으로도 그러지 못할지 모르지만, 가끔 그날의 온기를 떠올리고 스시를 맞이하며 글을 쓴다. 그리고 감각한다. 스시는 내게 본질적으로 따뜻한 성정을 품은 요리라고.
안녕하세요. 수진 작가입니다. 이 글의 원문은 '소믈리에 타임즈' 칼럼https://www.sommelier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128912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도 이곳에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느덧 4월이네요. 이번 달도 좋은 일 가득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