뼛속까지 내려가서 글을 쓰는 마음

시장 조사를 하다가

by 수진

투고를 시도해 본 경험이 있다. 몇 년 전 한번, 그리고 비교적 최근에 한번.

다행히 성사되지 않았다. 당시에는 실망한 마음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난 뒤 내 글을 돌아보니 성사되지 않았음이 다행이고, 출판사가 안목이 있었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여물지 않았던 나는 그들의 눈을 속이지 못하고 부족함을 간파당했고 책 한 권 쓰기를 감당할 만큼 성장하지 못한 상태였던 것을 스스로 인지한다. 중요한 것은 '나만의 이야기'였다. 나는 과연 책 한 권을 써낼 이야깃거리를 갖고 있었을까. 그것도 팔릴만한 책을.

글쓰기와 책 쓰기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때 읽었던 브런치 작가님의 글이 있다. 당시 군생활에 관한 글을 쓰며 내 소재는 특별하다는 혼자만의 생각에 사로잡혀 '시장조사'를 특별히 염두에 두지는 않았지만, 어느 날 무심코 그 부분이 떠올라 한 대형서점의 홈페이지에 접속해 검색을 해봤다.

전설적인 피우진 중령님은 논외로 치고, 그분 이후 여군에 관한 책이 없다고 생각한 부분은 나의 무지였다. 있었다. 그것도 영관급 현직 여군이 쓴 책이. 시장 조사를 한 후 방향을 잡기는커녕 짜임새 있는 목차와 탄탄할 책의 내용( e북이 지원되지 않아 읽어보지는 못했다), 나보다 한참 오랜 경력에 나는 명함도 못 내밀 것 같다는 생각에 갑자기 의욕이 사라졌다. 좌절은 투고가 성사되지 않았을 때보다, 오히려 누군가의 완성작을 보았을 때 찾아왔다. 글이 써지지 않고 쓰고 싶지 않아 얼마간 쓰지 않았다.

죽을 만큼 간절했고 모든 것을 다 걸었던 투고가 아니라 그랬을까. 오래지 않아 그 기분은 사라졌다. 냉정하게 나를 보아야 했다. 이미 있는 책과 같거나 비슷한 책을 쓸 필요도 없으며, 정보 전달위주의 현재 지위가 밑받침되는 책이 과연 내가 원하던 책이었을까? 그리고 다른 사람의 작품에 좌절했다고 해서 글을 쓰지 않아야 하는 것일까? 쓰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면서 까지? 만약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그런 이유로 좌절했다면 나는 그 어리석음을 당장 만류했을 것이다.

글을 쓰는 마음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글을 쓰고 싶어서 쓰는 것이 일단 가장 중요한 이유이고, 내게는 나만이 쓸 수 있는 글이 있어서 쓰는 것이고, 나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나는 글을 쓰는 것이다. 만약 객관적으로 글을 잘 쓰고 칭송받을 만큼 훌륭한 작품을 쓸 수 있는 사람만이 글을 써야 한다면 그것은 얼마나 얼토당토않은 일일까.

배부른 소리일 수 있지만 먹고사는 일로 삶의 모든 만족을 채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 먹고사는 일은 말할 수 없이 중요하지만, 내 마음이 원하는지 어느 곳을 향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갈망하는지 아는 일도 삶에서 정말로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마음의 소리를 따라 계속 써 보려 한다. 많은 것까지 생각하고, 멀리까지 보고 미리부터 계산하고 짐작해 가능성의 크기를 재단하지 않으려고 한다. 나의 마음을 몰라 많이 길을 잃어본 나로서는 꿈의 부재는 불행한 일이었고, 무언가를 원하는 마음이 있고 열정이 있는 자체가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절감했다. '순수한 원함' 내가 지금 글을 쓰는 마음은 단지 그것이다. 설령 내가 어딘가 눈에 보이는 곳에 닿을 수 없다고 해도 내가 원하는 결과물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해도, 글을 쓰는 시간 나 자신을 진지하게 만나고 돌아온다면 그것으로 잃을 것이 없는 일 아닐까.

'나탈리 골드버그'의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를 읽고 있다. 글쓰기에 관한 지독한 갈망과 뜨거운 열정과 끝을 보는 마음. 글쓰기에 끝이 없음에도 그럼에도 끝까지 끝까지 파고들어 제목처럼 뼛속까지 파고드는 작가의 그 열정에 전염되어 마음이 뜨거워졌고 오늘도 글을 쓰고 싶었다.

"글쓰기는 평생에 걸쳐 이루어야 하며 또 많은 훈련이 필요한 작업이다. (중략) 엄청난 분량의 글을 쓰겠다는 결심을 하기 전에 먼저 자신에게 여유를 주자. 자신의 목소리가 지닌 힘을 믿는 법을 배우자. 자연히 이런 과정에서 우리는 방향 설정을 하고 목적지가 어딘지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그 목적지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다른 장소에서 나타날지도 모른다."-나탈리 골드버그,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