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일이 찾아왔다
글쓰기의 영역에서 부러웠던 사람은 두 유형이었다. 투고에 성공해 책을 낸 분들과, 출간 기고 제안을 받은 분들이 그 대상이었다. 전자는 투고 준비에 본격 매진하지 않았으니 노력해 볼 사항이지만, 브런치에서 출간, 기고 제안을 받았다는 분들을 보면 부러웠다. 많이 부러워 이따금 그런 글을 보면 축하한다는 댓글뒤에 부럽다는 말을 덧붙일 때도 있었다. 언젠가 나에게도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지만, 때를 예상할 수 없는 갈길이 먼 일이라 여겼다. 나의 브런치는 아직 구독자분들도 많지 않고, 아직 발행한 글도 적고, 무엇보다 아직 나의 글에 확신이 없었다. 막연하게 언젠가는 그러기를 바라는 혼자의 희망이 있었을 뿐이었다.
얼마 전 저녁이었다. 브런치에 접속하니 출간, 기고 목적으로 제안이 들어와 있으니 등록된 이메일을 확인하라는 알림이 있었다. 스팸메일에 익숙해져 있던 나는 기대 없이 메일을 확인했고, 기고 의뢰 메일을 보고도 설마 하는 마음이 들었다. 메일에 안내된 해당 기관 사이트에 접속해 본 뒤 나는 정말 기고 메일을 받았음을 알았다. 문화지원을 중심으로 취약계층을 돕고 있는 한 NGO단체에서 보내온 메일은 나의 발행된 글 중 하나가 깊은 울림을 주어 매주 발행하는 뉴스레터에 소개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뜻하지 않게, 생각지도 않게, 예상 못한 단체에서, 예상 못한 순간 나는 제안 메일을 받았다.
한 편의 글에 국한된 일이었지만 의미 있고 기쁜 일이었다. 글을 쓰는 일에 돈이나 눈에 보이는 것으로 환산될 수 없는 기쁨과 보람의 영역이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고, 며칠 동안 나의 일상은 평소보다 활기찼다. 막연하게 온기를 주는 글 따뜻한 글을 쓰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누구를 대상으로 쓰여야 할지 몰랐던 내게 제안을 준 단체의 성격은 누군가에게 읽히는 내 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고, 글에 대한 진지함을 한층 짙어지게 했다. 나를 얽매는 색채의 진지함이 아닌 희망을 주는 기분 좋은 색채의 진지함을.
진실된 글을 쓰기를 희망한다. 은유 작가님은 그랬다. '삶이 글을 낳고, 글은 삶을 돌본다고. 내가 살았던 삶을 글로 쓰기도 하지만, 살고 싶은 삶을 쓰기도 한다고. 그렇게 쓰다 보면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하게 되고, 그래서 글이 삶을 잡아주는 느낌이 든다고.' (은유, 2019.10.14 채널예스 인터뷰 중) 나 역시 글이 나의 실체와 비교가 안되게 앞서지 않도록, 최소한 내가 쓴 글과 크게 어긋나지는 않도록 진실되게 쓰기 위해 늘 노력해야 할 것이다.
앞날은 알 수 없다. 지금으로서 알 수 있는 것은 쓰기를 원하는 한 나는 계속 쓸 뿐이라는 것, 지금은 그것밖에 모르겠다. 글쓰기를 하며 되지 않을 때를 대비해 대부분 살짝 한 발을 빼고 임하는 나의 방어적인 성격을 여지없이 확인했다. 이루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 그럴 경우 나의 능력을 모두 쏟아붓지 않아서 괜찮다는 자기 위안, 모든 것을 쏟아부었음에도 되지 못해 허무하면 어떡할지에 대한 앞선 걱정. 글쓰기를 막는 것들은 대부분 나의 마음에서 기인하는 것들이었다. 그럼에도 글쓰기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훗날 내가 글을 썼던 시간을 돌아봤을 때 결코 후회가 남지 않기를 바라본다. 그것이 사랑하는 대상과 소중한 나의 시간에 대한 예의일 테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