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아주 미세한 위로라도.
'아들은 우리 부부 삶의 버팀목이자 기쁨과 행복의 원천이었습니다. 그 생명의 물이 갑자기 말라 지상에서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그때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지위가 높고 명예와 부(富)를 갖췄더라도 사랑하는 아이를 잃은 부모만큼 슬프고 애절하며 비참한 존재는 없다고. ''아들은 메시지를 남겨주었습니다. 스스로를 이 지상으로부터 ‘퇴출’할 때 남긴 메시지, “(부모님은) 오래오래 건강하게.” 이 말에 우리 부부는 “오랫동안 건강하게 사는” 것이 아들의 사랑에 보답하는 유일한 응답이라고 믿고 10년 세월을 살아왔습니다.'
-강상중(도쿄대 명예교수), 자식을 먼저 보낸 아비로서 슬픔을 나누고 싶습니다.('22.11.1 조선일보 특별기고)
상상조차 끔찍한 참담한 소식 앞에서는 잠시 일상의 길을 잃는다. 지난 주말 유일한 혈육을 급성 쇼크사로 예고 없이 떠나보낸 분의 참담한 소식을 들었다. 직접적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닌 멀리 계신 그분께 해드릴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같이 그 마음을 공유할 사람도 이곳에 없지만, 아무 일 없이 나의 일상을 영위하기에는 그 일을 떠올리는 순간순간 마음이 너무 암담해서, 아무런 위로조차 전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이곳에 있는 나의 삶에 태연하게 머무는 것이 죄송해서. 그렇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당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잠시 마음의 길을 잃었다. 해야 했던 일들이 있고 가야 했던 곳이 있어 다행이었다.
'아아, 내가 만일 독재자라면 88년 내내 아무도 웃지도 못하게 하련만. 미친년 같은 생각을 열정적으로 해본다.', '만약 내 수만수억의 기억의 가닥 중 아들을 기억하는 가닥을 찾아내어 끊어버리는 수술이 가능하다면 이 고통에서 벗어나련만. 그러나 곧 아들의 기억이 지워진 내 존재의 무의미성에 진저리를 친다.'-박완서, 한 말씀만 하소서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한 사람의 의미는 세상천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나는 단언한다. 아니, 그것은 애초에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을, 온갖 귀한 것을 모두 다 준다고 해도 목숨보다 내 존재보다 소중한 사람의 상실의 무게와 견줄 수 있을까.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이다. 오늘 발인을 마치고 홀로 일상으로 돌아가셔야 할 그분께 털끝만큼이라도 먼지만큼이라도 위로가 닿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