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을 품고 사는 사람들
살면서 가끔씩 찾아오는 질문이 있다. '어떻게 다들 그렇게 멀쩡한 얼굴로 살 수 있을까.' 그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단죄도 비하도 아닌 차라리 경탄에 가까울 그 마음을.
살면서, 아무리 조심해도 사고처럼 피할 수 없이 찾아오는 아픔이나 슬픔이나 충격 등 삶의 많은 것을 부정할 정도로 뒤흔드는 천재지변과 같은 폭우를 겪은 후의 마음들을 다들 어떻게 해결하고 모두 그렇게 멀쩡한 얼굴들로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 때가 있다. 다들 그런 마음들은 어떻게 해결하고, 어디에 묻어두고 살고 있는 걸까. 때로는 나의 일을 통해. 때로는 다른 사람의 일을 통해 나는 그 질문을 마주한다.
의지와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의 감정들을 처리하는 방법을 나는 아직 모른다. 어쩌면 앞으로도 영영 모를지도 모른다. 마음 깊이 아주 깊이 넣어 놓고, 감당이 안되어 고이 접어 넣지도 않고 쳐다도 안 보고 처박아 놓고, 꺼내보기조차 싫고 두려워 꺼내지도 않는 것. 잊으려고 노력하는 것. 다른 생각으로 덮어버리는 것. 그렇게 하는 것 밖에 나는 아직 모르겠다. 어느 날 끝내 해결되지 못한 감정들이 어떻게 드러날지, 드러나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살고 있다.
이 질문을 다시 마주한 큰 이유는 세상을 아프게 등진 꽃 같은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인함이었다. 스스로에게 꿈의 자리였을 교실에서 그렇게 떠난 그의 마음을 떠올려 보면 아득하고 아득하고 너무 아득해서 그 속에서 길을 잃을 것 같다. 뉴스에서 소식을 접하고 안타까움을 느끼며 스친 일에 더 깊이 마음을 쓰게 된 것은 '유랑선생' 태지원 작가님의 SNS를 통해서였다. 그 일부를 옮겨 본다. '대부분 교사들은 바깥에 함부로 털어놓지 않는다... 때로는 교사로서 가르치는 학생에 관한 일이니 참고 넘어가야겠다는 마음으로. 때로는 바깥에 털어놨다가 오히려 '학생 지도 능력이 부족한 교사'....'학생과 학부모의 잘못이나 인격 모독까지 너른 사랑(?)으로 품을 줄 모르는 교사'라는 비난을 받을 가능성도 있으니까.'라는 구절에서 고작 한 부분일지 모르지만 나는 조금 이해해 버렸다. 무언가를 굳이 말하지 않는, 때로는 말할 수 없는 누군가의 마음을. 나의 경험치로 고인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안다는 오만은 감히 부리지 못한다. 다만 나는 어느 한 시절을 잠시 떠올렸다. 소대장 시절 만난 선임 소대장은 어느 날 내게 우리(소대장)는 한편으로 학교의 담임선생님 같다는 말을 했다. 지낼수록 와닿는 말이었고, 나를 보람 있게 만들기도, 나를 구속하기도 하는 말이었다.
소대장 시절 만난 소대원들은 대부분 좋은 아이들이었지만 세상에 완전함은 없기에 나를 힘들게 하던 아이도 있었다. 나의 그릇의 크기의 문제라 여기고 스스로를 붙잡고 늘어졌던 시간들이 내게 있었다. 많은 시간 리더십 책을 펼쳐봤지만 사람과 상황은 모두 다르기에 이론을 현실에 잘 접목시키지 못했고 나는 괴로웠다. 군인이라는 직업은 내게 '나' 개인에서 '군인'으로 정체성이 전환되는 직업이었기에 퇴근을 해도 몸만 부대를 벗어날 뿐 처한 상황과 입장에서 자유로워지지 않았다. 선생님도 그렇지 않으셨을까.. 그분은 나와 비할 바 못하게 암담한 상황이셨으리라 짐작만 해본다. 학생이 아닌 학부모까지 상대해야 하는 경험치도 적은 초임 교사였던 그는 어떤 마음으로 그 시간들을 지나왔을까. 그 방법밖에 없었던 것일까. 생각하니 또 너무 아득하고 슬퍼서 길을 잃을 것만 같다. 처한 상황도 성격도 다르니 나로서는 끝내 그분의 마음을 해석할 수도 답을 찾을 수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떠나시면 안 되었을 선생님과 선생님의 가족들과 이번일에 관련되어 아픔을 겪은 분들의 마음이 갈 곳을 생각해 본다. 그 마음은 어떻게 치유받고 어디에 묻고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조심스러운 추측과 마음이 담긴 글을 쓰는 일로 행여 떠나신 분께 조금이라도 실례가 될까 조심스럽지만 그럼에도 그분의 일로 당장 나에게 달라지는 것이 없다 해도 그 일을 깊게 생각하게 되는 것은 한 사람의 삶에 대한 깊은 안타까움과 더불어 이미 그 시절을 지나온 나와 달리 나의 아이의 앞에 놓여있는 시간을 알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아이를 낳고 길러봐야 그것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절대로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나의 이기적이고 작은 마음은 아이를 기른뒤에야 비로소 병들어 있는 어떤 부분에 겨우 눈을 뜬다. 행복한 기대로 아이의 미래를 그리지만, 가끔은 내 아이가 마주할 세상을 생각하면 서늘한 마음이 들 때가 있다.
할 수 있는 지극히 작지만 유일한 일을 하려한다. 채 피어 보지도 못하고, 수많은 가능성을 뒤로하고 세상을 떠난 선생님께 깊은 조의를 표하고 그분의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는 일. 앞으로 내 아이가 좋은 스승을 만나기를 바라는 일. 아이가 '스승'을 뜻 그대로 '자기를 가르쳐서 인도하는 사람'으로 믿고 따르게 하는 일. 나 역시 그 마음으로 아이의 스승을 대하는 일. 지극히 작지만 할 수 있는 전부인 그것을 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