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 사람이 떠났다

잘 가요. 고운 사람.

by 수진

고운 사람이 떠났다.


이른 아침, 끔찍하게 비통한 소식에 심장이 멎을뻔했다.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사촌 오빠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너무 놀라 숨조차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엄마에게 전화할 엄두조차 나지 않고, 언니와 통화하며 심장이 옥죄고 온몸이 떨리고 호흡이 가라앉지 않으며 떠오른 생각은 갑작스러운 비보는 듣는 사람을 쓰러져 죽게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곧이어 떠오른 생각은 '이모'. 오빠의 엄마인 나의 이모를 생각하자 미칠 것 같았다. 같은 마음이었던 남편은 급하게 나의 한국행 비행기를 예약했고, 서둘러 짐을 꾸렸다.

그 참담한 비통함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오래전부터 다른 곳에서 다른 삶을 살며 나의 세상에 없던 오빠였는데, 오빠가 영원히 없는 세상을 생각하자 막막했다. 나보다 고작 한 살 많았던 오빠의 삶이 애통했고, 오빠 없이 살아갈 일이 참담했다.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캄캄한 밤이었다. 입구에서부터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여러 번 심호흡을 하고 들어갔다. 심호흡이 무색하게 슬픔을 걷잡을 수 없었다. 눈물이 멈추지 않는 상황에서 누군가 조용히 다가왔다..

나의 이모... 상상할 수 없던 거대한 슬픔 앞에서 이모는 한순간 눈물과 모든 감정을 잃고, 슬픔을 감각하는 영혼까지 증발한 채 껍데기만 존재했다. 위로의 말조차 흡수할 수 없는 비어버린 사람으로.. 차라리 울부짖고 쓰러지는 모습이 덜 걱정될 정도로 고요했다.

다음날이 되자 이모는 조금씩 영혼과 감정이 돌아왔다. 이모를 기다리는 끔찍한 비통의 시간들... 슬픈 입관과 발인. 정말로 오빠를 보내야 하는 마지막 시간들.

빈소를 떠나는 마지막이 쓸쓸하지 않도록 많은 사람들이 배웅을 와주었고, 배웅을 받으며 1차 장지인 화장터로 떠나 화장까지 소요되는 두 시간을 기다리며 우리는 밥을 먹었다. 날은 급격히 추워졌고, 추위에 떨다가 먹은 팔팔 끓는 동태탕은 따뜻하고 맛있었다. 동태탕이 맛있어서 새롭게 슬펐고 미안했다. 오빠는 맛있는 동태탕을 먹을 수 없다고 생각하니 안타깝고 다시 슬퍼졌다.

마침내 화장을 마친 오빠를 2차 장지에 안치하고 포옹을 끝으로 오빠의 가족들과 헤어졌다. 끝났다. 모든 절차들이 끝났을 뿐 이모와 이모부에게 이제부터 일상에서 펼쳐질 거대한 슬픔의 날들을 생각하자 아득했다. 오빠에게 단 한 번이라도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안부를 물은 적이 없던 나의 지난 시간들도 쓰라리게 안타까웠다.

'고운 사람이 떠났다.' 그날 저녁 문득 그 생각에 사로잡혔다. 오빠는 '고운 사람'이었다고. '고운 사람이 떠났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죽어서 비로소 오빠를 '고운 사람'으로 기억하는 일이 미안했지만, 오빠가 죽은 뒤에야 내게 '고운 사람'이 되는 일이 미안했지만 그럼에도 생각했다. 고운 사람이 떠났다고.


상상할 수 없는 거대한 슬픔을 만나자 삶이 두려웠다. 소중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그들과 함께 하는 삶이, 예측 못한 순간 찾아올 그들과의 이별에 아무런 대비할 수 없는 삶을 사는 일이 끔찍하게 두려웠다. 소중한 것들에 둘러 쌓인 인생이 무서웠다. 사랑할 용기조차 마비될 것 같은 거대한 두려움. 그 두려움을 넘을 용기를 준 것은 아들을 잃은 이모였다.

장례식을 마친 이틀 뒤 아침에 일어나니 이모의 장문의 문자가 있었다. 먼 길 달려와줘서 너무 고맙다고. 나의 방문으로 큰 위로가 되었다고. 마음 잘 추스르고 나의 건강을 잘 챙기는 것이 이모가 가장 원하는 바라고. 근심 걱정 염려 슬픔 외로움 배신감 허망함도 많은 삶에, 오빠는 가장 행복한 순간 떠난 것 같아서 그것이 이모 마음에 위안이라고. 행복뒤에 다시 슬픔이 오기 전에 행복한 순간 떠나서 다행이라고 이모 스스로를 설득한다고. 나에게, 앞으로 늘 행복하게 사는 모습으로 이모에게 선물하라는 슬프고 뜨거운 진심이 담긴 이모의 문자는 아름답고 따뜻했다. 큰 위로가 되었던 그 문자는 아마도 이모 당신에게도 위로였고, 스스로를 향한 다짐이었으리라.

문자를 보자 이모가 거대한 슬픔 앞에서 끝내 삶의 의지를 놓지 않으실 것 같아서, 이모에게 주어진 삶을 성실하게 살아내실 것 같아서, 긴 시간이 지나더라도 다시 일어나실 수 있을 것 같아서 조금 안심이 되었다. 현명했던 이모는 죽을 것 같은 슬픔 가운데도, 삶을 향한 사랑을 놓지 않고 최선을 다해 사는 당신의 모습이 우리 모두에게, 하늘에 있는 오빠에게 유일한 큰 선물이 될 것을 이미 알았는지도 모른다.

예측하지 못할 이별과 슬픔이 찾아올 삶이 두렵다. 여전히 격하게 두렵지만 그럼에도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행복이 내게 기쁨이듯, 나의 행복과 평안이 누군가에게는 기쁨이 될 것을 믿기 때문이다. 그것만이 두려움을 넘는 유일한 길임을 믿는다. 나 자신을 위해서, 끝내 지키고 싶은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서, 나에게 주어진 시간들을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살고자 생각해 본다. 행복하게 살고자 생각해 본다.

우리는 그렇게 각자의 삶을 성실하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선물하며, 다른 이의 성실함과 행복으로 위안을 얻으며 그렇게 서로 연대하며 이별의 두려움을 초월해 살아간다.

떠난 고운 사람을 기억하며, 소중한 내 몫의 삶을 품어본다.

글을 맺음으로 오빠를 기리는 일이 끝날 것 같아, 선뜻 맺기 어렵지만 그럼에도 나아감을 위해 맺는다.


잘 가요. 고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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