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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봄 Oct 26. 2024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어.”

     

이 말은 자기 확신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 열정적으로 살아갈 때 새겨들어야 할 말인 듯싶다. 자기 생각이 다 옳기에 다른 사람의 생각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침 튀겨가며 말하는 사람이 조용히 곱씹을 말이다. 사실, 그중의 한 사람이 나였다. 내 생각은 무척 혁신적이고 합리적이며 공평해서 뭐 하나 흠잡을 데가 없다고 생각하니 다른 사람의 생각을 좀처럼 이해할 수 없을 때가 있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웬만하면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만 만나고 모임도 만들려고 했다. 그러나, 사회생활은 꼭 나와 같은 결을 가진 사람들과만 만나게 하진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정반대의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회의도 하고 토론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한 번은 나와 생각이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한 선배와 학년 부장으로 자주 협의할 일이 있었다. 그런 협의 자리가 없었다면 생전 말 한번 섞고 싶지 않을 정도로 나와 정치적 견해며 교육적 소신이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회의를 통해 그분의 생각을 들어보니 이해가 가고 타당한 면도 있었다. 극과 극은 통한다 했던가. 그 이후로 선배와 나는 서로 다른 면도 있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 같은 점이 많아 서로 신뢰하는 좋은 사이로 발전했다. 내 생각 못지않게 상대의 생각도 훌륭하다는 걸 그때 절실히 깨달았다. 다르다는 생각으로 은근히 소통 자체를 거부한 모습이 부끄러웠으며 소통함으로써 ‘내 생각이 다가 아니고, 내가 틀릴 수도 있음’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나도 틀릴 수 있음을, 내가 다 아는 것이 아님을 인정하고 나니 나는 그전보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편안한 마음으로 겸손하게 들어줄 수 있었다. 그런데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나서 언제부턴가 내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고 끝이 흐려지며 말하는 횟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말을 많이 하기보다 들어주는 시간이 많으니 타인에 대한 이해도 많이 할 수 있고 말로써 실수하는 경우가 적어지는 좋은 점도 있었지만 내 의견을 내기가 조금은 두려워지기까지 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내가 틀릴 수도 있음’을 나처럼 깨닫고 말을 적게 하며 겸손해지길 바랐다. 

   

그러나 세상은 “지식은 자신이 아는 것을 자랑한다. 지혜는 자신이 모르는 것 앞에서 겸손하다.”는 말처럼 자신이 조금 안다고 목소리를 높여 자랑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 주위의 사람들은 그들을 칭송한다. 현대 사회가 자기 PR 사회라지만 나는 여전히 아는 것을 자랑하는 것은 겸손하지 못하며 어른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나도 다 아는 것이지만 말을 안 할 뿐이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 기저엔 ‘틀릴까 봐’ 조심스러워 주장하기가 어려웠던 점도 있었다. 세상은 나의 겸손을 알아주지 못하고 겸손을 가장한 '자신감 없음'에 손뼉 쳐주지 않았다. 지식을 뽐내는 자만 알아주는 것 같은 세상 사람들이 야속했고, 나도 그렇게 돼 볼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랜 시간 그러지 못했다.     


한참이 흘러 요즈음 다시 ‘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라는 글귀를 만났다. 지난번처럼 일상에서 내가 틀릴 수 있으니 말을 조심히 하라는 의미보다는 오히려 내 마음속에 떠 오르는  모든 생각이 다 사실이 아닐 수도 있으니, 생각에 휘둘리지 말라는 의미로 새롭게 다가온다. 사실과 다르게 내 머릿속에서 지어낸 많은 생각들로 힘들어했던 시간들을 떠 올리니 더욱 공감되었다. 특히, 이성적인 판단이 어려운 갈등 상황에서 내 생각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 문제 해결을 좀 더 유연하게 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라 생각하니 든든한 주문 하나를 얻은 기분이다. 상대와의 관계가 더욱 부드러워질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나 자신이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 같아 벌써부터 몸과 마음의 가벼움이 느껴진다. 어쩌면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라는 마법 같은 글귀를 마음에 품는 순간 놀라운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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