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사람의 역할은 편집자가 될 것이다

AI와 함께 생각한다는 것

by 사심가득

이 시리즈를 쓰기 시작한 건 하나의 경험 때문이었습니다.


커플 심리 검사 서비스를 만들면서 AI와 함께 일했습니다. 처음에는 AI가 모든 걸 해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리고 곧 알게 됐습니다. AI는 놀라울 정도로 많은 걸 해주지만, 어떤 일에는 여전히 제 지식, 지혜, 혹은 노고가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요.


무엇을 만들지 정하는 건 AI가 아니었습니다. 이 커플이 왜 검사를 받으려 하는지 이해하는 것도 AI가 아니었습니다. 리포트의 톤이 "뭔가 아닌데"라고 느끼는 것도, 그 느낌을 구체적인 수정 방향으로 바꾸는 것도, 일곱 번을 고쳐서 "이제 됐다"고 판단하는 것도, 전부 사람의 몫이었습니다.


이 시리즈는 그 과정에서 배운 것들을 정리한 글입니다.




시리즈 전반의 이야기

챕터 1에서는 AI와 함께 생각하는 기본기를 다뤘습니다. AI에게 맥락을 주면 결과물이 달라진다는 것, 목적을 말해야 방향이 잡힌다는 것,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를 때는 AI에게 질문을 부탁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결국 AI와 함께 생각한다는 건 나를 더 잘 알아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챕터 2에서는 문제를 정의하는 법을 다뤘습니다. AI는 해결에 탁월하지만, 무엇을 해결할지 정하는 건 인간의 몫이라는 것입니다. 같은 상황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물이 나온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적절한 제약이 오히려 창의적인 결과를 만든다는 것도 다루었습니다.


챕터 3에서는 사람을 이해하는 힘을 다뤘습니다. AI에게 없는 세 가지인 욕구, 맥락, 경험에 대해 하나씩 살펴봤습니다. "유저가 왜 이걸 원하는가"를 파악하고, "어떤 상황인가"를 설명하고, "겪어본 사람은 어떻게 느꼈는가"를 전달하면, AI의 결과물이 근본적으로 달라진다는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챕터 4에서는 결과물을 다듬는 법을 다뤘습니다. AI의 첫 답은 초안이라고 생각하고, "뭔가 아닌데"를 구체적 피드백으로 바꿔야 합니다. 그리고 반복 수정이 결과물을 완성시킵니다.




생산자에서 편집자로

이 여정을 관통하는 하나의 변화가 있습니다.


AI 이전에 무언가를 만든다는 건, 백지에서 시작하는 일이었습니다. 글을 쓰든, 서비스를 만들든, 리포트를 작성하든. 첫 문장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사람이 만들었습니다. 인간은 온전한 생산자였습니다.


AI 이후에는 다릅니다. 첫 번째 초안은 AI가 만들어줍니다. 그것도 꽤 빠르게, 꽤 그럴듯하게. 백지에서 시작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그러면 사람의 역할은 뭘까요?


제 생각에는 인간의 역할은 이제 편집자입니다.


편집자는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닙니다. 글을 판단하는 사람입니다. 이 글이 독자에게 와닿는지, 구조가 논리적인지, 톤이 적절한지, 빠진 것은 없는지를 보는 사람입니다. 좋은 편집자는 작가보다 글을 잘 쓰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좋은 글이 무엇인지는 압니다. 그리고 그 앎을 구체적인 피드백으로 전달할 수 있습니다.


AI 시대에 인간의 역할이 정확히 이것입니다. 무엇을 만들지 정하고(문제 정의), 누구를 위한 것인지 이해하고(욕구, 맥락, 경험), 결과물이 좋은지 판단하고(비판적 평가),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방향을 잡아주는 것(구체적 피드백)입니다. 생산의 상당 부분은 AI에게 맡길 수 있지만, 이 네 가지는 맡길 수 없습니다.




"함께 생각한다"는 말의 의미

이 시리즈의 제목은 "AI와 함께 생각하는 법"입니다.


처음에 이 제목을 정했을 때는 "AI를 잘 활용하는 법"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좋은 프롬프트를 쓰고, 좋은 결과물을 얻는 기술을 이야기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15편을 쓰고 나니 의미가 달라졌습니다.


"함께 생각한다"는 건, AI가 내 생각을 대신해준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AI와 주고받는 과정에서 내 생각이 더 선명해진다는 뜻이었습니다.


AI에게 맥락을 설명하려면 내가 먼저 맥락을 정리해야 합니다. 피드백을 주려면 내가 먼저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야 합니다. "왜 이걸 원하는가"를 전달하려면 내가 먼저 그 질문에 답해야 합니다. AI는 거울 같은 도구입니다. 내가 넣는 것의 질이 나오는 것의 질을 결정합니다. 그래서 AI와 잘 일하려면, 결국 자기 자신을 잘 알아야 합니다.


커플 검사 서비스를 만들면서 가장 많이 성장한 건 AI 활용 능력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이 서비스를 통해 사람들에게 뭘 전달하고 싶은가"를 더 선명하게 알게 된 것이었습니다. AI는 그 과정의 파트너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으신 분 중에는 AI를 아직 한 번도 제대로 써본 적 없는 분도 있을 겁니다. 반대로 이미 매일 쓰고 있지만 "이게 최선인가?"라는 의문이 있는 분도 있을 겁니다.


어느 쪽이든, 이 시리즈에서 하나만 가져가신다면 이것이었으면 합니다.


AI에게 "해줘"라고 말하기 전에, "나는 이걸 왜 원하는가"를 먼저 물어보세요. 그 질문 하나가 결과물을 바꿉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AI가 아니라 당신 스스로도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AI와 함께 생각한다는 건, 결국 내가 더 깊은 생각을 하게된다는 뜻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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