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나쁜 개, 아니 나쁜 사람은 없다.
한창 상영 중인 영화 ‘크루엘라’를 보고 왔다. ‘101마리 달마티안’의 속편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최근 ‘조커’가 베니스 영화제에서 수상하면서 사람들은 빌런의 탄생에 주목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크루엘라는 조커의 선배 뻘이 되는 어린 시절 우리의 기억에서 다시금 회상되는 빌런이 되겠다.
순종적이고 착한 아이 에스텔라, 독특하고 제멋대로인 아이 크루엘라. 그녀의 머리카락 색이 흑백인 것처럼 두 가지 정반대의 성격이 한 몸에서 공생하고 있었다. 천재적인 패션 감성을 가진 크루엘라는 독특한 성격 탓에 언제나 에스텔라의 그늘에 숨어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기를 어머니는 간절히 바랬다. 항상 얌전한 에스텔라이고 싶었지만 그녀의 특이한 외모와 성격은 어딜 가나 주목받았고, 그럴 때마다 크루엘라는 참지 못하고 모습을 드러내었다.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비밀을 알게 된 후, 크루엘라는 더 이상 에스텔라의 그림자가 되지 않기로 한다. 에스텔라가 크루엘라가 되던 날, 침대에 가만히 누운 그녀가 마음속으로 독백을 한다.
-슬픔에는 여섯 가지 단계가 존재한다.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 그리고 분노.
사실 이것은 ‘퀴블러 로스의 죽음에 대한 반응 다섯 단계’에서 비롯된 대사이다. 크루엘라는 슬픔과 죽음을 비슷하게 받아들인 것 같다. 혹은 죽을 것 같은 슬픔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엄마의 죽음을 둘러싼 비밀을 알게 된 것은 그녀에게 죽음과 같은 슬픔으로 남았다.
영화의 끝에서 크루엘라는 복수에 성공한다. 그와 동시에 에스텔라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 본연의 자아인 진정한 크루엘라로 거듭난다.
영화 감상을 마친 후,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크루엘라= 조커 +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이었다.
기고만장한 패션계의 인물들과 빌런의 성장과정을 보여주는 크루엘라는 프라다처럼 화려하고 때로는 조커처럼 초라하다.
조커는 세상의 멸시를 받는 사회적 최약자가 생존을 위해 빌런으로 성장한 이야기를 담았다. 흔히들 조커를 반사회적 인격장애라고 생각한다. 그의 충동성과 공격성을 반영하였을 때, 가장 어울리는 진단이라고 생각한다.
크루엘라는 그와 성격이 조금 다르다. 지킬 앤 하이드, 흑과 백, 크루엘라와 에스텔라는 서로 다른 자아가 한 육체 안에 존재하고 있다. 이를 ‘이중인격’ 혹은 ‘해리성 정체감 장애’라고 명명한다. 하지만 나의 짧은 지견으로는 크루엘라에게는 ‘자발적 정체감 해리’라는 단어가 적격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인간들은 때와 장소, 상황에 따라 행동하는데, 이는 일종의 페르소나 (인간의 가장 외적인 인격)라고 볼 수 있다. 어쩌면 크루엘라에게는 에스텔라라는 사회화된 페르소나가 존재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크루엘라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페르소나에 대한 자각이 있었다. 그녀는 말썽을 피우면 안 될 상황에 놓이면 자아에서 크루엘라를 자발적으로 해리시켰다. 그것은 그녀의 생존 본능이었다.
또한 크루엘라를 반사회적인 인물로 해석할 수 없는 이유는 조커에 비해 적어도 자비롭다는 점이다. 조커는 사실 겁이 많은 인물이었다. 아무리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에도, 곤경에 처했을 때도 그는 소리를 내지 않았고 저항하지 않았다. 하지만 진정한 빌런 조커로 거듭나고 난 후, 그는 무자비한 반항아가 되었다.
크루엘라는 조커에 비하면 양반이다. 그녀는 사회적으로 ‘패션계의 이단아’라는 별칭을 얻으며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캐릭터였다. 그녀가 죽었다고 기사가 났을 때, 슬퍼하던 대중들과 수많은 그녀의 조력자들을 보면 그 사실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그녀는 남작 부인이라는 한 인물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빌런이 된 것이지, 사회의 불특정 다수에게 악행을 하기 위해 빌런이 된 것이 아니다. 남작부인의 달마티안이 그 증거다. 그녀는 달마티안으로 모피를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달마티안은 충성스러운 애견이 되어있었는데, 이를 보면 101마리 달마티안 애니메이션에서의 크루엘라는 사실 ‘그냥 달마티안을 키우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알고 보니 애견인…? 갑자기 친근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