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에 이 옷 사달라고 하더니 안 입는 거야?"
"엄마, 그거 입어보니 나한테 안 어울려."
딸아이는 물건을 아끼지 않는다. 옷 사달래 놓고 정작 입지도 않는다. 다 쓰지도 못할 학용품과 화장품을 산다. 갖고 싶은 건 대체로 얻는다. 원인은 나다. 아이가 원하는 건 다 주고 싶다. 어느 부모가 안 그럴까. 사주지 않는 게 있어도 돈이 모자란 게 이유는 아니다. 아이는 쉽게 얻는 만큼 또 쉽게 버린다.
아이는 나와 확연히 다른 시대에 태어나 자랐다. 아이의 나라에서 당연히 주어진 기초조건은 앞 세대가 오랫동안 노력하여 성취한 환경이라는 결과값이다.
수십 년 전 우리는 다 같이 가난했다. 부모 세대는 우리나라가 후진국에서 중진국으로 올라서는 것을 목격했다. 우리 세대는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올라선 것을 목격했다. 지금 누리는 것들이 과거엔 당연한 게 아니었다.
쌀 생산이 충분치 않아 잡곡을 섞어먹고, 밀가루를 대신 먹으라고 캠페인을 벌였다. 담임은 도시락에 보리쌀이 섞였는지 검사했다. 양껏 먹고 쓰기엔 물자가 부족했다. 낭비와 욕심은 죄악시됐다. 결핍과, 결핍의 충족에 대한 동경은 그 시대인들이 공유한 토템과도 같았다.
개인이 나이를 먹어 스스로 돈을 벌게 됨과 동시에, 국가도 부유해져 소비의 선택지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부모는 스스로가 성취 못한 그 무엇을 자녀 세대를 통해 대리만족을 바란다. 그 결과 아이는 결핍이 없다. 결핍을 원동력으로 부모세대가 이룩한 성과다.
대신 아이는 향상심이 부족하기 쉽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포기하기엔 현재가 너무 달콤하다. 도시는 갈 곳이 많다. 쇼핑센터와 카페와 공원으로 가득하다. 스마트폰은 휴대할 수 있기 때문에 한 순간도 지루할 틈이 없다. 유튜브에는 상상을 넘어선 수많은 동영상이 쉴 틈 없이 쏟아져 나온다. 넷플릭스를 켜면 무엇을 볼지 고르다가 포기하게 된다.
내가 자라온 방식을 아이에게 적용할 수는 없다. 현 상태가 부족함이 없다면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노력할 원동력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그것이 무엇이든 부모가 대신 알려줄 수는 없다. 아이가 스스로 깨닫길 기다려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