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데, 올해는 다른가?
남편의 모태신앙은 한국 프로야구 롯데자이언츠 야구팀이다. 부산에서 태어난 다수가 그렇다. 남편은 대학교 입학 즈음 상경해 부산을 떠난 기간이 더 길다. 이제 '서울 사람'이라고 주장하지만 왜 부산이 연고인 야구팀을 응원하냐는 질문에는 답이 없다.
남편이 응원하는 롯데 자이언츠는 가끔 이길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 졌다. 이길 땐 불필요하게 큰 점수차로 이기고, 질 때는 한두 점 승부에 어이없는 실책으로 무너졌다. 단순히 졌다는 사실이 아니라, 저렇게 져서는 안 된다는 게 남편의 분노 지점이었다. 광분한 남편은 경기를 보며 매번 창의적인 비속어를 쏟아냈다.
봄이 되어 야구 정기시즌이 시작되면 남편은 기대감에 부풀었다. 롯데자이언츠의 초반 기세는 좋았다. 봄에만 잘한다고 '봄데'라고 불렸다. 기온이 올라가면 슬슬 경기력이 떨어지면서 하위권으로 마무리하는 양상이었다.
처참한 성적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면 '이젠 그만 보겠다'며 남편은 포기를 선언했다. 다시 봄이 가까워지면 남편의 선언은 번복됐다. 올해는 이러저러해서 다르고 이번만은 가을야구를 볼 수 있을 거란다. 남편의 롯데 자이언츠에 대한 관심은 봄이 되면 피어났다가 가을이 되기 전 지고 마는 여러해살이 식물 같았다.
정규리그 순위 상위 5개 팀만이 벌이는 포스트시즌을 가을야구라 부른다는 건 나중에 알게 됐다. 번번이 하위권에 머무는 롯데에게는 남의 잔치였기 때문이다. 롯데의 마지막 한국시리즈 우승은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한 1992년, 가을야구 진출은 2017년 이후 없었다.
"매번 지는 팀의 경기를 왜 화내면서 보는 거야?"
"올해는 정말 다르다니까? 한동희가 돌아왔고, 불펜도 보강되고..."
"롯데의 근본적인 문제는 당신 같은 팬들이야. 못해도 욕하면서 우쭈쭈 해주니까 변화가 없는 거라고."
어쩌면 남편은 욕을 하고 싶어서 롯데의 야구를 보는게 아닐까.
2025년은 특히 처참했다. 정규시즌 전반기를 3위로 마무리하면서 '올해는 정말 다른가' 싶었다. 이후 14연패를 기록하면서 최종 7위로 추락했다. 남편도 '이제는 더 이상 안 되겠다'며 미식축구에 관심을 가지겠다 선언했다. 이맘때쯤 항상 듣는 말이었다.
올해 야구시즌 개막이 가까워오자 남편이 다시 들떠 보였다. 롯데자이언츠는 정식 시즌 전 시범경기에서 8승 2무 2패로 1위를 달성했다.
"오래간만에 야구 보니까 설레?"
"아니? 설레...... 지."
남편은 차마 마음의 소리를 외면하지 못했다. 개막전 경기를 티비로 보겠다며 맥주와 새우과자를 준비했다.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한 경기는 시작이 좋았다. 윤동희 선수가 올 시즌 1호 홈런을 기록하는 등 홈런 3개로 5대 0까지 점수차를 벌렸다. 맥주의 취기에 긴장이 풀렸는지 남편은 졸기 시작했다. 9회 말 6대 3까지 추격을 허용하여 위기를 맞았다. 마무리투수인 김원중 선수가 계속 안타를 내주고 순식간에 만루가 되었다. 홈런 한 방이면 경기의 승패가 뒤집어질 위기였다. 남편은 잠이 확 깼다.
"내, 내 그럴 줄 알았어! 김원중 저 XX 뭐냐?"
묘하게 친숙했다. 김원중 선수 강판 이후 투입된 신인투수 박정민의 호투 덕에 경기는 가까스로 롯데의 승리로 끝났다. 남편이 욕을 더 하지 못해 서운함이 언뜻 비쳤다면 나의 비약일까.
롯데의 야구, 남편은 올해만큼은 다르다며 또다시 외친다. 나는 변하지 않을 거라 예언한다. 이 순간조차도 진행되고 있는 추억의 축적이 오래도록 지속되길 바라는 염원과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