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투쟁
요새 방귀가 종종 "나온다". 주어는 방귀다. 내 의지에 반해, 괄약근의 방어를 뚫고 방귀는 기어이, 허무하게도 쉽게 세상 밖으로 탈출한다. 냄새가 퍼지는 민망함은 오롯이 내 몫이다. 지하철이나 사무실같이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 신호가 오면 말할 수 없이 아찔하다.
약해진 괄약근 탓이다. 괄약근도 근육인지라 오래 써서 성능이 저하되는 모양이다. 노안이 온 안구도 그렇다. 조금만 과식해도 허덕대는 위장도 그렇다. 안 그런 구석이 없다.
노화는 경험하기 전에는 구체적인 구차함과 불편함을 알 수 없다. 개인차는 있지만, 사십 대 중반쯤 되면 몸의 모든 장기와 근육이 하나하나 고장 나기 시작한다. 소화불량이나 노안은 자존감 하락을 동반하지만, 방귀 같이 남에게 피해를 주는 건 인간의 존엄성 자체를 위협한다.
1. 노안
몇 년 전부터 스마트폰 화면이 뿌옇게 보인다. 서류의 작은 글씨도 초점이 잘 안 맞는다. 어두운 곳에선 증상이 더욱 심하다. 노안은 수정체의 조절 기능이 약해진 게 원인이다. 서류를 볼 때마다 안경을 머리에 얹고 얼굴에 가까이 가져간다. 눈을 가늘게 뜨느라 미간에 주름이 생긴다. 이를 알리 없는 젊은 직원들이 글자크기 6으로 엑셀표를 인쇄해 들이민다.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지만 일은 해야 하니 어쩔수 없다. 다음부터는 종이 몇 개를 이어 붙여 포인트 13으로 뽑아온다. 주변 지인들은 다초점렌즈 안경을 맞췄다. 노화를 인정하는 최후의 보루 같아 버티고 있지만 시간문제다.
2. 배변활동
방귀도 그렇지만, 화장실에 갈 때마다 맺고 끊음이 분명하지 않다. 젊었을 땐 한방에 뻥-이라는 시원함이 있었다. 그리워하기엔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2002 월드컵 시절의 이야기다. 기침이나 재채기할 때마다 요실금 증상까지 있다. 자연분만 두 번 해서 더욱 그럴까. 친구에게 고백했더니, "나도 그래. 그래서 줄넘기도 못해."라며 위로한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하고 안도하기엔 다같이 서글프다.
3. 소화불량
원래도 소화력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버거워도 먹을 순 있었다. 어르신들이 왜 밀가루와 고기를 피하는지 깨달았다. 자연스레 소식을 하게 되지만 대사량이 떨어지기 때문에 체중은 되려 늘어난다. 식후 디저트 대신 소화제와 활명수를 즐겨 먹게 된다. 약에 의존하는 게 처음엔 꺼려졌으나, 결국 내 속이 편하면 장땡으로 귀결된다.
4. 기타
목록은 끝이 없다. 항상 온몸이 결린 상태다. 관절이 뻣뻣해선지 쉽게 다친다. 차에서 내리다가 어이없게 허리를 삐기도 한다. 어르신들 낙상이 왜 위험하겠는가. 피부 탄력이 줄어 불독같이 볼이 쳐지고 눈밑도 쳐지고 팔다리는 가늘어지는데 신기하게 복부지방은 늘어난다. 뇌는 근육은 아니지만 노화로 부피가 줄고 퇴회된다. 깜빡깜빡 잊은 지는 꽤 됐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항상성을 가정한다. 내일은 오늘과 다르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어렸을 땐 몸이 자란다. 키는 커지고 몸무게는 늘고 힘은 세진다. 이십 대에 정점을 찍는다. 삼십 대부터는 내리막길이다. 내려가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세계다. 노화란, 삶의 매 순간에 조금씩 침범하여 성가시게 했다가 익숙할만하면 한 단계 또 추락하는, 한번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 없는 오징어통발과 같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점점 진행되다보면 종착역은 죽음일 테다. 인생이란 결국 죽음까지 가는 과정에 불과한 것인가 생각하면 여타의 것들, 특히 불안이나 고민 등은 사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