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프레스티지(비즈니스) 클래스 탑승기

저 커튼 너머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by 수메르인

항공기 국제선 비즈니스석을 처음으로 타보게 되었다. 상사가 갈 행사를 대신 가게 되어서다. 일반석과 얼마나 다른지 알아볼 기회다.


발권 카운터: 당신의 차례는 제가 지킵니다


대한항공을 타고 싱가포르로 가는 일정이었다. 인천공항 제2터미널은 신축이어서 쾌적하고 반짝거렸다. 대한항공은 비즈니스석을 프레스티지석이라고 부른다. 프레스티지 용 발권 창구가 따로 있었다. 북적이는 일반석과는 달리 두세 명 정도 기다리고 있었다.


내 앞사람의 발권이 끝나자 카운터 쪽으로 발을 뗐다. 옆에 일반석 창구를 기다리던 한 여성이 재빨리 내 카운터로 접근했다. 새치기에 억울해할 새도 없었다. 직원이 간단하지만 절도 있는 손짓으로 그 여성을 돌려보냈다. '이 자리는 너를 위한 것이 아니야'라는 무언의 경고와 같았다. 그리고 안심하라는 듯 나를 보았다.


거기서 비즈니스석의 마법을 발견했다.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었다. 남들이 다 알아서 챙겨준다. 이런 식이면 누구라도 너그러워질 거다.


비즈니스 라운지: 잠시라도 허기와 지루함을 느끼지 마세요


직원은 티켓을 넘겨주며 비즈니스 라운지의 위치를 알려줬다. 탑승 전까지 공항의 전용 라운지를 이용할 수 있는 거였다. 인천공항 제2터미널의 출발층은 3층, 라운지는 푸드코드, 면세품 인도장 등과 함께 4층에 있었다. 4층은 면세품 찾을 때 말곤 가본 적이 없었다. 입구에서 항공권을 보여주고 라운지에 입장했다.


내부는 생각보다 넓었다. 100석은 족히 넘을 좌석이 여기저기 있었다. 일자형, 원형, 테이블 형 등 구역이 나뉘어 다양하게 배치됐다. 소파 옆에는 자그마한 테이블이 붙어 있었다. 사람들이 거기에 음식을 두고 먹고 있었다. 안쪽엔 샤워실도 있었다. 터키 이스탄불 비즈니스 라운지에는 골프연습장이 있다고 한다. 이런저런 시설이 있는 것 같지만 결국 소파에 앉아서 먹고 스마트폰 보는 게 대부분이었다.


음식은 한쪽에 마련된 약식 뷔페에서 가져왔다. 메뉴는 비빔밥, 라면, 샌드위치 등 가볍게 요기할 정도였다. 보통 비행기가 이륙하자마자 밥을 줄텐데. 있으니까 먹어보기로 했다. 다 아는 맛인 비빔밥과 라면은 건너뛰자. 배가 차면 기내식 먹는데 지장이 생기므로 특식 위주로 맛봤다. 뭐가 됐든 먹으면 배가 부른다. 1+1=2 만큼 간단한 원리다. 인간은 알면서도 실수롤 반복한다. '빨리 소화시키는 법' 따위를 스마트폰으로 검색하다가 탑승시각이 임박해 라운지를 떠났다.


탑승: 일반석 승객과 마주칠 일은 없습니다


비즈니스석은 탑승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일반석과 분리된다.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긴 줄이 늘어선 일반석과 별개의 줄로 비행기 연결통로에 들어섰다. 같은 복도를 통해 비행기 게이트까지 가지만 투명한 벽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이윽고 양갈래로 나뉜다. 비즈니스석은 왼쪽이다.


비행기 맨 앞쪽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일등석 구간을 지나야 했다. 일등석은 자리마다 어른 가슴 높이의 칸막이로 구분됐다. 사람의 마음은 간사하다. 일등석을 본 뒤 비즈니스석을 보니 비좁아 보였다. 비즈니스석은 가로로 두 자리씩 붙은 좌석이 3조로, 대략 10열쯤 되어 보였다. 일반석은 한 줄에 8~9 좌석쯤 있으니 공간을 1.5배 더 차지하는 셈이다. 좌석의 크기와 모양은 고속버스 우등좌석을 떠올리게 했다. 좌석에 앉아 발을 쭉 뻗어도 앞 좌석에 닿지 않았다.


기내식: 하늘 위의 미니 레스토랑을 경험하세요


좌석 손잡이 옆으로 생수 한 병과 땅콩 한 봉지가 놓여 있었다. 곧 객실승무원이 다가와 음료를 뭘 하겠냐고 물었다. 선택지에는 와인도 있었다. 이륙 직후에 식사가 제공된다고 했다. 빳빳한 종이에 인쇄된 메뉴판을 줬다. 애피타이저, 샐러드, 디저트가 따로 나오고 메인메뉴는 쇠고기와 해산물 중에 고를 수 있었다.


그 승무원은 나를 비롯한 주위 몇 사람만 담당하는 것 같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승객수에 비해 객실승무원이 꽤 많았다. 비행기가 이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식사 준비가 시작됐다. 아까 그 승무원이 와서 좌석손잡이 쪽에 숨어있는 테이블을 꺼내줬다. 그 위에 두껍고 빳빳한 흰 테이블보를 깔고 도자기 접시에 담긴 전채요리를 올렸다. 훈제연어와 잎 야채에 새큼한 맛의 소스가 뿌려져 있었다. 모든 요리가 차례차례 접시에 올려져 나왔다. 메인 메뉴는 아시아풍의 해산물 볶음이었다. 모든 재료를 한 식판에 때려 넣으면 일반식이 될 거 같은데 좀 더 섬세하게 조리되고 플레이팅 되어 있었다. 기내식이라는 핸디캡을 제외해도 괜찮았다. 라운지에서 요기를 하지 않았다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었을 텐데. 6시간이 넘는 비행이기 때문에 착륙직전에도 가벼운 식사로 깔끔한 맛의 샌드위치가 제공됐다.


수면: 허리를 일자로 펴고 주무실 수 있습니다


귀국 편은 밤 열두 시가 다 되어 싱가포르에서 출발했다. 인천에서 출발할 때와 마찬가지로 담당 객실승무원이 와서 식사 메뉴를 설명해 줬다. 아무리 비즈니스석 기내식이라고 해도 이 시간대에는 못 먹겠다. 식사를 포기하겠다고 담당 승무원에게 알리고 잘 준비를 했다. 일반석과 달리 알려줘야 할 것 같았다. 의자를 계속 뒤로 젖히니 180도까지 평평하게 펴지는 기적을 목격했다. 제공된 담요로 몸을 꼼꼼히 감싸고 잠을 청했다. 잠결에 주변에서 달그락거리며 기내식 먹는 소리가 들렸다. 새벽 시간인 착륙 직전에도 가벼운 식사가 제공됐다. 일반석을 타고 간 일행에게 물었더니 기내식은 이륙 직후에만 줬다고 했다. 음식의 질뿐만 아니라 횟수도 차등이었다.


짐 찾기: 당신의 시간은 소중하니까요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부터는 비즈니스석과 일반석의 구분이 없어진다고 생각했다. 공연이 끝난 후 앙코르를 하듯이 하나 남아 있었다. 일행과 함께 수화물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내 짐은 바로 나왔다. 한참 기다리다 분실됐나 하고 의심할 때쯤 일행의 캐리어가 컨베이어 벨트에서 올라왔다. 밤새 비좁은 좌석에 앉아 선잠을 청했을 직원을 보니 괜히 미안했다.


비행기 좌석 시스템만큼 자본주의의 차등을 압축해서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있을까. 가로세로 몇십 미터에 불과한 기내의 비좁은 공간적 제약, 몇 시간에 불과한 비행시간이라는 시간적 제약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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