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메르인 Mar 11. 2023

전국빵지순례 - 1. 군산 이성당

"이번 주말엔 안면도 쪽으로 가족여행 가볼까. 근처에 휴양림도 있고."

"근처에 또 갈데없나?"

"조금 더 내려가면 군산이 있지."

"군산? 이성당의 고장 군산? 반드시 가야겠네!"


탄수화물은 이 험난한 인생을 버틸 수 있게 해 준다. 그중에 빵이 주는 달콤함과 포만감은 악마의 유혹과도 같다. 보통 악마에게 져서 살이 찐다. 여행을 갈 때마다 그곳의 가장 유명한 빵을 기념품으로 사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물리적인 형태를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먹어치울 수 있어 좋다. 그렇지만 정작 네임드 빵집을 못 가본 건 부끄러웠다. 그래서 이번에 군산을 가면 체면치레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성당은 대한민국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빵집이다. 무려 1945년에 생겼다. 본점은 전라북도 군산에 있고, 잠실, 천안, 동탄, 김포 등에 분점이 있다. 서울 양재에는 '햇쌀마루'라는 분점이 있다. 이름이 다른 이유는 창업주의 딸이 운영하는 쌀가루 유통업체를 겸하기 때문이란다. 본점은 창업주의 며느리가 물려받은 것 같다.


군산은 일제 강점지 호남곡창지대에서 생산된 쌀을 일본으로 포탈하는 과정에서 항구도시로 번성했다. 그래서 근대 일본식 건축물이 많다. 우리나라에 현존한 유일한 일본식 절인 동국사가 있고, 적산가옥(=적의 재산, 즉 일제강점기 일본식 가옥을 이르는 말)을 개조한 아기자기한 카페들이 많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를 촬영한 초원사진관도 이성당 근처에 있다.




군산에 도착했다. 이성당은 구도심 한가운데 있었다. 역시나 사람들이 엄청나게 줄을 서 있었다. 복성루에서 삼십 분 넘게 줄을 서서 짬뽕과 물짜장을 먹고 왔기 때문에, 바로 집어서 계산하는 빵 줄은 금세 빠질 것이라고 만만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웬걸, 줄은 한참 동안 줄지 않고 정체해 있었다. 원인은 이성당의 시그니처인 단팥빵과 야채빵이었다. 그러니까 애초에 그 줄은 단팥빵과 야채빵만을 살 수 있는 줄이었다. 나머지 빵은 그냥 매장에 들어가서 집어 들고 계산하면 된다. 계산줄을 기다리는 게 싫으면 아예 옆에 있는 신관에 가면 된다. 신관에서는 단팥빵과 야채빵을 팔지 않는다.



삼십 분 만에 매장에 입성했다. 후기를 보니 평일이라 그나마 덜 기다린 듯했다. 점원이 수레에 단팥빵과 야채빵을 한가득 싣고 왔다. 줄 선 사람에게 몇 개 필요하냐고 묻는다. 개수 제한이 없어서 열개 사는 사람도 있었다. 관찰해 보니 많은 수가 다섯 개 이상 산다. 5분이면 수레 하나가 동나는 것 같다. 쟁반채로 들고 가서 계산하는 사람도 있었다. 쟁반 하나에 삼십 개쯤 들어있는데. 개수 제한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억울함이 있지만, 너네들이 원하는 데로 만들어 팔아주겠어 하는 대인배의 배포가 엿보였다.




다시 다음 수레가 나왔다. 내 앞에 스무 명쯤 있으니 이번에는 살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아닛, 내 앞사람 차례에서 끊겼다. 대기 2번이 되었다. 원래 맛이나 볼까 하고 단팥빵 야채빵 하나씩 사려고 했는데. 기다린 게 아까워서 오기가 생겼다. 그래서 단팥빵과 야채빵 각각 두 개씩 샀다. 내 앞 아저씨는 평균치로 각각 다섯 개씩 샀다. 인터넷 후기를 보고 반응이 좋았던 슈크림빵과, 단팥 생크림빵도 하나씩 샀다.



매장을 둘러보니 빵류 외에도 다양한 색과 모양의 케이크가 진열장 하나를 가득 채웠고, 선물하기 좋게 예쁘게 포장해 놓은 갖가지 쿠키들도 있었다. 오른쪽에는 야채수프와 밀크셰이크 등 빵과 함께 매장에서 섭취할만한 곁들임류를 팔고 있었고, 뒤쪽의 탁자와 의자가 있는 공간에서 먹고 갈 수도 있었다. 단팥빵은 밀크셰이크와, 야채빵은 야채수프와 먹으면 그렇게 맛있다고 한다.





드디어 시식의 순간이다. 단팥빵은 단맛이 적절하고 빵이 두껍지 않은데 쫄깃했다. 야채빵은 첫날 먹었을 때는 후추맛이 강해서 약간 실망했으나 냉장고에 넣어두고 다음날 먹었을 때 훨씬 더 맛있었다. 양배추가 아삭거렸고, 은근한 맛이 물리지 않았다.


슈크림빵은 약간 엉덩이 모양으로 생겼다. 슈크림빵을 반으로 갈랐는데 바닐라빈이 점점이 박혀있어 우선 놀랐고, 슈크림의 점도에 두 번째로 놀랐다. 빵을 두 조각으로 나눴는데 탄성이 있어 잘 갈라지지 않을 정도였다. 단연코 내가 먹어본 슈크림빵 중 제일 맛있었다. 슈크림이 맛이 강하고 점도가 높아 입안에서 팅글거렸다. 단팥 생크림빵도 가득 든 생크림이 신선하고 앙금과의 조화가 좋았다.


타이어 제조업체인 미쉐린은 매년 미식 가이드를 발간한다. 식당을 엄선하여 별을 수여한다. 맛집 가려고 차를 더 탄다면 타이어도 더 잘 팔리겠지라는 기대 때문인가.


별 1개는 요리가 훌륭한 식당( Very good cooking in its category)

별 2개는 요리가 훌륭하여 멀리 찾아갈 만한 식당(Excellent cooking, worth a detour)

별 3개는 요리가 매우 훌륭하여 맛을 보기 위해 특별한 여행을 떠날 가치가 있는 식당(Exceptional cuisine, worthy of a special journey)이라고 한다.


이성당은 빵 맛이 매우 훌륭하여 맛을 보기 위해 특별히 군산으로 떠날 가치가 있는 빵집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