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추석을 앞두고 쓴 글입니다.
추석이 며칠 남지 않았다.
결혼하고 해마다 맞이하는 추석 명절은 며느리인 나에게 여전히 명절증후군이라는
꾀병 같은 증상이 부록처럼 따라온다.
그러나 설이나, 추석 명절을 마냥 즐겁고 행복하게만 보냈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어릴 적 고향에서 보낸 추석에 대한 기억은 따뜻하고 정겨운 넉넉하기만 한 명절이었다.
내 기억 속에 추석 차례상을 준비하는 엄마의 모습은 정성이 깃든 손길로
무엇인가 중요한 의식을 치르기 위한 분주함과 비장함이 엿보였다.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며 자연이 내어 준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 그리고 가족들의 안위와
건강을 조상들에게 기원하는 마음, 오직 그 마음으로 차례상을 준비하는 모습이었다.
가족들과 함께 먹을 추석 음식을 준비하며 문득 엄마의 추석 차례상이 그리워진다.
추석 전날 엄마가 만들어 준 손바닥만 한 반달모양의 송편은 고향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이었다.
햇팥을 삶아 팥고물을 만들어 손바닥만 하게 빚은 송편은 고향 밤하늘에 예쁘게 떠오른 반달을
닮아 있었다.
추석 차례상에 올리기 위해 몇 달 전부터 말려서 준비해 둔 갖가지 기름진 생선들,
갓 추수한 햅쌀로 지은 흰쌀밥과 고소한 참기름에 볶아낸 나물들, 달콤한 햇과일들.
넉넉한 음식들로 추석은 풍성하고 여유로웠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계절이 주는 여유와 안온함으로 추석은 더 풍요롭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어린아이들은 그 풍요로운 시간 속에서 환한 보름달 빛을 받으며 밝게 커 나갔다.
쟁반같이 둥근 보름달이 떠오르면 동네 아이들은 집에서 나와 함께 달맞이를 했다.
서로 손을 맞잡고 둥글게 서서 노래를 부르고 보름달에 절구를 찧는 옥토끼를 찾으며
재잘재잘 떠들고 웃으며 보냈던 동화 같은 달밤이었다.
추석이면 서울 간 큰언니가 어린 동생들을 생각하며 사서 보낸 옷이 든 소포 꾸러미를
받고 너무 좋아했었다.
그 소포 꾸러미에 베긴 특유의 서울 냄새를 맡으며 언니들이 있는 서울을 동경했었다.
두 살 터울 언니와 쌍둥이처럼 똑같은 새 옷을 입고 친구들에게 자랑도 하고 즐거워했던
마냥 행복한 추석이었다.
어른이 되어 결혼하고 맞는 추석은 나를 어린아이로 돌아가고 싶게 하는 시간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즐겁기만 했던 추석 명절이 엄마에게는 가장 힘들었던 시간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도 내가 며느리가 되고 엄마가 된 후의 일이다.
올 추석에는 나도 엄마의 시절에 보았던 엄마의 마음으로 추석을 준비해야겠다.
내 아이들도 따뜻한 추석을 기억할 수 있도록.
이 글을 끝으로 [맛으로 기억하는 유년의 날들] 연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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