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하신거에요?
한끼의 식사가 편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식사를 마주하는 마음은 편안해야겠지만
너를 맞이하는 식사의 준비는
나의 마음이 가득차 넘치도록 오래였으면 좋겠다
너를 마주하는 모든 순간이 편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작은 순간
티끌같은 찰나일지라도
너를 위해 준비한 나의 시간에
그리워하고 소중하게 보듬은 사랑이 묻어났으면 좋겠다
작은 집 주방에서
너를 위한 식사를 준비하고
짧은 해가 머물다간 이곳
기다림의 시간을 너로 가득 채워
당신이 어디에 있더라도
설령 바다건너
따뜻한 태양아래 눈부심을 머금은 바다에 있다해도
당신이 어떤 행복한 순간 속에 머물고 있더라도
돌아올 이곳이 소중해지는
오랜 준비로 차려진 작은 식사를 그리워하는
조금 불편한 시간을 나는 만들어야겠다
사랑이라면 불편해도 괜찮을 것 같다
아침이 바쁘다. 아침을 거른다. 아니면 마신다
지난 밤 결국 일찍 잠들지 못했다. 퇴근 후 씻지도 않고 침대에 누워 티비를 켜고 스마트폰을 들고 있었는데 어느새 새벽 두시가 되어있었다. 출근하려면 여섯시엔 일어나야 하는데 잠들고 싶지가 않다.
출근의 압박이 휴식과 자유의 갈망과 함께 응어리져 내 몸도 새우처럽 웅크려진다.
아침식사를 잊고 산지 십여년은 지난것 같다. 고등학교 시절만해도 어떻게해서든 일으켜세워 밥 한숟갈 먹이던 엄마는 이제 먼 곳에서 여유로운 아침과 걱정가득한 불편한 마음으로 가슴졸이고 계실게다.
내 옆에는 엄마가 아니라 미처 다 막지 못한 외풍들만 맴돌고있다.
아침은 없다. 정확히는 아침식사가 없다.
홀로 상을 차리고 먹고 치워야할 여유를 모자란 잠이 뺏었으니까.
지하철이 도착하기 3분전의 여유로 개찰구 옆 편의점에서 딸기우유 한팩을 사고는
계단을 채 내려가 승강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450ml를 비워버리고
늘 줄을 서는 3-4번 라인의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점심은 빠르게. 빨라야 커피한잔의 여유를 챙길 수 있으니까
점심시간은 한시간. 눈치를 보며 지하 구내식당에 15분 일찍 내려왔지만 15층 빌딩의 대다수의 사람은 같은 마음이다. 일찍 내려온만큼의 시간을 줄을 기다리는데 허비해야한다. 물론 늦게 내려올수록 그만큼의 시간도 챙길 수 없겠지.
식판에 담긴 음식이 비워지는데에는 고작 10분. 건물밖으로 나와 몸과 마음을 옥죄던 사무실을 잠시 탈피한다.
탈피하는데에만 또 5분이 필요했다. 서글프게도 말이다.
단골 커피숍으로 가는데에 5분, 주문을 하고 한잔의 커피가 나오기 위해서는 앞선 사람들을 보내기 위해 또 기다려야한다. 10분.
30분의 시간이 남았다. 월요일을 맞이해야할 일요일 저녁같은 기분이다.
딱히 중요하지않은 가치없는 수다에 소중한 시간은 야속하게도 손 밖으로 빠져나간다.
음. 내가 점심을 뭘 먹었더라?
저녁은 여유롭게 할까? 아니면 즐겁게 할까?
정해진 퇴근 시간은 의미가 없다. 여섯시 퇴근이란건 인터넷 기사에 나오는 벼락부자가 된 IT회사에서나 들려오는 뜬소문이다. 전설같은 이야기지. 도저히 믿을수가 없는.
일곱시가 다가오면 고민에 빠진다.
구내식당으로 갈까? 아니야. 잔업을 빨리 끝내고 집에가서 편한옷에 널부러진채로 뭔갈 먹자. 당연히 야근을 하고 있을 친구놈들과 한잔도 나쁘지 않아.
오늘은 치킨과 맥주를 마셔야겠어
집에서도 좋고 친구들과도 좋지.
"김대리. 이제그만 퇴근하고 나랑 한잔하지?"
나는 저 기러기아빠 조부장이 정말 싫다.
"네. 가시죠. 하하. 오늘도 국물닭발로 바로 갈까요?"
나는 닭발을 좋아하지 않는다. 조부장이 글라스에 따라주는 소주도 너무 싫다
외로움을 감추려 발악하듯 사회생활에 대해 설교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저 모습이 결국 비슷한 모습으로 늙어갈 날 떠올리게 만든다.
한끼 식사의 미학. 내 삶이 가져야할 최소한의 여유와 행복
작은 뚝배기에 끓인 김치찌개. 냉장고에서 꺼내는 늘상 먹는 밑반찬. 특별히 추가된 계란말이.
많은걸 바라지 않았는데 어쩌다 엄마가 차려주는 한끼 식사를 그리워하며 살아가게 된걸까 우리는.
날 좋은 오후. 깔끔하게 차려입고 고급스러운 브런치를 즐기는것도 좋지만 난 점심즈음에나 퉁퉁부은 눈을 지겹다는듯 열고서는 그런 날 한심스레 바라보는 엄마가 차린 작은 상을 바랄 뿐인데 어쩌다 이렇게 된걸까.
엄마가 차려주는 밥.
알콩달콩 신혼부부가 함께 아주 적당히 차린 밥상.
무심한듯 조촐히 차려진 밥상에 '챙겨먹어' 쪽지를 남긴 동생의 밥상.
한끼 식사에는 사랑이 담겨있다.
그리고 식사는 사랑을 느끼며 여유를 가지는 삶의 회복과 마음의 치유다.
어릴적 쌀 한톨에 감사해야 한다는 선생님의 이야기까지 갈것은 아니지만, 나와 마주한 누군가에게 차려주는 식사에는 단순하지만 깊고 깊은 사랑이 담긴다.
도마위를 뜀뛰는 채소와 칼. 끓는 찌개로 담기위해 일일히 손질한 마늘, 껍질을 벗긴 새우, 한참을 씻어내린 쑥갓. 그리고 한모금 한모금 혹시 입맛에 맞지 않을까 자꾸만 손이가는 간보기.
오늘은 계란말이에 케챱을 예쁘게 뿌려줘야지.
차려진 식사는 익숙한 사랑이기에 쉽사리 깨닫지는 못하지만, 나홀로 살아가기가 더분히도 유행하는 요즘엔 그 작은 상차림이 없어 서글프고 눈물나는 궁상들은 그 의미를 잘 알고 있을게다.
식사의 사랑과 여유가 없는 삶에 모두가 지치고 병들어가고 있다.
바쁘게 살아가길 강요하는 빌어먹을 세상도 세상인데, 여기에 더하여 편리한 한끼 식사. 빠르게 먹을 수 있는 한끼 식사가 전염병처럼 퍼져가며 삶의 아주 중요한 작은 것을 앗아간다. 편하게 먹을 수 있고 빠르게 먹을 수 있기에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며 자진해서 병들어가고 있는 우리네의 모습은 얼마나 안쓰러운가.
티비에 나오는 광고모델의 행복에 겨운 모습에 현혹되어 가장 작은 소중함을 망각하지 말자 우리.
누군가들이 강요하는 삶을 벗어던질 수는 없지만, 그저 이끌려가며 살지는 말자.
한끼의 식사에 사랑을 담을 수 있는 삶을 살자.
한끼의 식사를 그대와 마주앉아 도란도란 이야기 하며 먹을 수 있는 삶을 살자.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걸 적어도 나 스스로 잊지는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