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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결 Jul 15. 2023

광어

광어





수년만에 십년지기 친구를 만나던 날 우리는 마포에 위치한 작은 횟집에서 광어 한접시와 소주를 기울였다.

 

“역시 회는 광어가 최고야.”


친구는 광어회가 좋다고 했다. 그러나 회 한접시가 비워져가고 서더리를 넣어 내어진 매운탕을 보며 친구는 말했다.


“으윽. 난 생선대가리가 너무 징그러워서 매운탕을 잘 못먹겠다니까. 저 눈이 날 쳐다보잖아. 무섭고 징그러워.”     



가족모임으로 친척들과 산 중턱에 위치한 유명하다는 삼계탕집은 가게 뒤편 너른 마당에 수백마리 토종닭들을 풀어 키우고 있었다. 바닥을 쪼아대며 먹이를 먹는 녀석들이 대부분 이었지만 무어가 그리 화가 난 것인지 울타리 근처로 다가와 푸드덕거리며 날아오르는 것도, 뛰어오르는 것도 아닌 애매모호한 날개짓으로 경계하는 녀석이 있었다.


“꺄아! 무서워!”


친척 여동생들은 녀석의 날개짓 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기겁을 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테이블에 앉아 기다리던 백숙이 나오자 동생들은 젓가락질을 서둘렀다.


“난 가슴살보단 다리살이 좋더라.”


“이렇게 김치랑 같이 먹어야 맛있어.”


“뱃속에 찹쌀 진짜 잘 익었다. 닭죽 정말 맛있을거 같아.”     


나는 기분이 언짢아졌다. 언제부터였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지난 십수년간 나는 간간이 이런 언짢음들이 체한것처럼 명치에 눌러앉아 내려가지 못하는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스물 여덟의 나이를 꼬리표로 달게 된 그 해 겨울엔 작은 격류가 흘렀다.

곁에 머물던 친구들보다는 한박자 늦게 대학을 졸업했고 꼭대기가 다다랐다고 생각했던 취업으로 향한 등반은 번번히 정상 근처에서 돌아 내려와야했다. 이제는 어린척 할 수 있게 만들어 주던 학생이란 신분의 겉치레도 ‘너는 이제 어른이야’라는 사회적 굴레로부터 나를 지켜주지 못했다. 쓸모없는 어른이 되어버린 나 자신의 모습이 부끄럽고 두려워 갈팡질팡하던 그 때에 삶의 방향은 운과 우연으로 결정된다고 했던가. 잠시간의 방황동안 나를 스쳐가는 수많은 기회들 중에서 나는 취업을 던져버리고 창업을 선택했다. 하지만 방향은 정했으나 여전히 꿈만이 창대할 뿐 각박하기 그지 없는 현실은 한파가 몰아치던 그해 겨울과 참 많이도 닮았었다.     

재개발지역의 무허가 상가를 25만원의 월세로 빌려 사무실을 차렸으나 아직 번번한 벌이가 없었기에 혼자뿐인 사무실에 앉아 창업준비를 하는 일과를 제외한 시간에는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야만 했다. 그래서 인천 부둣가 한켠에 자리잡은 광어 수산물 창고에서 매일 새벽 4시부터 8시까지 일을 했다. 농구코트만한 다섯 개의 수조의 물때를 닦아내고 7~8미터 높이로 쌓은 스티로폼 박스를 날랐다. 그리고 수조에 담긴 광어를 뜰채로 떠내 스티로폼 박스에 담았다. 


 광어는 어디로 보내지냐에 따라 달리 담아야 한다. 바로바로 소비되기 위해 국내의 횟집 등지로 보내는 광어들은 물주머니를 만들어 살아있는 채로 담아 실어 보내야 했고, 해외로 수출되거나 횟감용이 아닌 광어들은 목덜미의 동맥을 찔러 피를 뺀 다음 깨끗이 씻어 박스에 담았다. 특히 내가 일했던 창고는 두바이로 수출하는 물량이 꽤 되었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수출물량을 내보내야 하는 날엔 수백마리에서 천마리에 가까운 광어들이 실렸다. 그런 날에는 내 손에 쥐어진 어른 한뼘 길이의 칼이 수백마리의 광어들의 목뼈와 아가미 사이를 날카롭게 비집고 찔러 들어갔다. 손끝으로 ‘투둑’ 뼈와 껍질이 끊어 잘리는 소리와 광어의 마지막 퍼덕거림이 흘러들어와 느껴졌다. 박힌 칼날을 비집고 새빨간 피가 흘러나왔다. 목을 찔리고 동맥이 잘려 피가 빠져버린 광어들은 힘없이 바닥에 늘어졌고 그 아래로 새빨간 핏물들이 파도의 거품처럼 일렁이며 물결쳤다. 발에 신긴 장화는 그 새빨간 파도를 찰박찰박 밟으며 찍히지 않는 헛발자국을 남겼다. 발자국 옆으로 숨이 끊기고 피가 빠진 광어들의 수천개의 눈이 나를 바라보았다.      

    

먹히기 위해 태어난 삶이란 어떤것일까. 생명은 귀한 것이라 배웠건만 나는, 그리고 우리는 먹기 위해 태어난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있는지 자꾸만 되묻게 된다. 그들의 피와 살, 뼈를 뜯어먹으며 탐식 외에 그들에게 건네는 마음이란게 있긴 했었던가. 어릴적 쌀 한톨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한다고 배울 때 우리는 벼의 생명에 감사하지 않고 벼를 키우는 농부에게 감사하기만 했던 것에서부터 중요한 무언가를 잃어버려 왔던건 아닐까.

 과거 아메리카대륙의 인디언들은 사람이나 동물, 곤충 심지어 바위까지도 동등하고 평등한 존재로 여겼다고 했다. 그렇기에 그들이 살아가기 위해 채집하고 사냥한 모든 자연물들에 위로와 감사를 건네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이러한 경건은 마음은 아닐지라도 도축되며 죽어가는 소와 돼지, 닭 그리고 생선들의 모습에는 혐오감을 느끼고 그들의 본래의 모습을 잃은 살덩이 하나에 장식을 얹어 귀하고 비싼 요리가 된 모습에는 사진으로 담아 SNS에 업로드하지 못해 가슴 아파하는 간극과 공허함 속을 ‘존중’과 ‘감사’라는 배려로 채워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나는 그래야만 했다. 그것 말고는 내 손에 죽어간 셀 수 없는 광어들의 눈길에 무엇으로 답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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