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져들뻔 했다

지독한 우울

by 숨결



똑똑

노크라도 해주면 좋으련만

너는 오래된 친구라는 명목하에

그리고 앞으로 오랜 시간을 마주쳐야 할 것이란 자신감에

예의라곤 없이 불쑥 찾아온다



나의 공간에 네가 찾아오는 것이 달갑지는 않다

너의 색깔에 물들어 버릴까 두렵기 때문이다


너를 정식으로 마주했을 때만 해도

나는 당차게 어리고

많은 것들 견뎌낼 파릇한 마음이 있었고

한편으로는 네가 필요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지금

나이가 들어버렸고

너무나 지쳐버렸고

너를 애써 웃으며 대할 자신이 없다



나는 네가 싫어졌다

데면데면한 인사로 무시와 불편을 표하련다

미안하지만 이기적인 이 작별인사로

더이상의 만남이 없길 바란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같은 결말은

슬픔으로 가득찬 잔인한 결말의 동화는

차라리 떠남이 행복한 삶의 끝자락은

미안하지만 나는 외면하련다




29258658_10156166234409513_5349422526407639040_n.jpg <Galata> Drawing by Baejoosun. march 2018







너는 어디로부터 태어나

어디에서 머물고

어디로 떠나는가





다수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하고, 그것이 아니더라도 세계적 거장의 칭호를 부여받은 문호들은 영국이나 프랑스 등 서유럽 지역에 특히 많다. 이는 문화의 세계적 확산의 시작점이 그들임이 첫번째 이유이겠으나 다른 한편의 시각으로는 흐린날이 많은 기후적 요인으로 인해 우울한 정서가 오래토록 뿌리박혀있고, 우울한 정서는 내면적 고찰과 탐구를 심화시켜 작품성이 높은 글들이 많이 태어났다고도 한다.


나 스스로의 경우 스물 초반의 시절에는 사춘기와 같이 스스로를 우울과 외로움에 빠뜨려 나름의 내재석 성찰을 겪고, 나름의 성장을 이뤄냈다고 생각한다. 당시에는 우울의 상태를 조절할 수 있는 젊음과 정신이 있었기에 인생을 살아가는데 좋은 동반자의 역할을 하는 삶의 일부로 귀하게 여겼었다.

특히 파리에서의 유학생활이나 유배생활 같았던 반지하, 옥탑방에서의 삶에서 우울은 되려 외로움과 싸우는 나의 전우였고 글을 쓰는 원동력이었으며 삶의 큰 방향이기도 했다.



아직 젊다면 한창인 젊은 삼십대이지만, 그동안의 파란만장함 때문이었을까. 지금의 나라는 녀석의 상태는 기쁨에 무감각해지고 슬픔에 연약해졌다. 한번 빠져든 슬픔과 우울에서 쉽사리 빠져나올 수가 없는 현실이다.

이십대 시절 초저녁부터 새벽녘까지 술을 마시고도 아침 강의를 듣던 모습과 달리 이제는 몇잔의 술에도 다음날 숙취에 시달려야하는 어쩔 수 없는 나약함과 비슷하지 않을까?

최근에는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사실상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될 문제에 민감히 반응하며 쉽사리 우울한 상태로 빠지곤 한다. 그러고나면 최소한 이틀에서 사흘간은 그저 '연명하는 하루'를 겨우 보낸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공부를 하거나 사람을 만나거나 모든 선택적 활동에 제동이 걸린다. 그나마 이정도로 짧게 끝나는 경우에는 '아. 빠져들뻔했다'라며 안도의 숨을 내쉬곤 한다.

문제는 심각하게도 이주일 이상, 한달 가까이 우울에 빠질때가 생겨버린 점이다. 마음을 다잡기가 쉽지가 않다. 절박한 마음에 병원도 다니곤 했으나 아직까지 딱히 나와 맞는 병원을 찾지는 못한 형편이다. 이 기간에는 대부분의 공간을 '죽기 괜찮은 곳인가'에 대한 탐구가 시작되고, 자기혐오와 비하로 아무런 행동없는 생각에 빠져 하루를 보낸다. 몸은 망가져가고 정신은 무너져간다.




빠져들 뻔했다. 빠져들어 버렸다.




우울에 빠져듦은 현재의 내가 '버텨보자'라는 마음 하나로 세상과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있다.


나중에. 나중에 시간이 흐르면 괜찮아질거라 다잡아 보지만 우울이란 예고없이 찾아와 나락으로 끌고 내려간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나락으로 빠져들어가는 나를 다시 끌어올리는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사랑? 분노? 꿈? 복수? 얻어왔던것에 대한 보답?


이러저러한 합리화와 그럴싸한 이야기를 만들어보지만 지금까지의 결론은 한가지로 귀결되곤한다. 앞으로의 새로운 정의를 찾을지는 모르겠으나 결국은 '두려움'이리라. 나락의 바닥이 두려운 것이다. 연약하고 연약한 몸과 마음은 어떠한 결론도 내리지 못하고 우울속을 헤메이게만 만들뿐 그것을 절대 끝자락으로 쉽사리 보내지는 않는다. 쥐를 가지고 노는 고양이처럼 천천히, 아주 천천히 우울의 박스 안에 가둬둔채 오래토록 헤메이게 만들다 지친 뒤에야 아래와 위 하나를 선택하게 한다. 우울을 탈피하는 죽음이란 아래 또는 삶으로 돌아가는 우울과의 작별.


아마도 한동안은, 아니 어쩌면 아주 오랫동안은 우울의 박스에 갇혀 살게 될거다. 딱히 미련없는 삶이다만 그래도 바닥이 아직은 많이도 두렵기에 위로 벗어날 수 있는 행복, 사랑, 보람, 꿈 한줌씩을 모아봐야겠다. 비록 손아래로 흐르는 모래알 같은 한줌일지라도.


그렇게 너와 작별한 이후라면 네가 어디서 왔는지, 어디에서 머물렀는지, 어디로 떠났는지 따위도 함께 떠나보낼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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