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리수리마수미 Apr 24. 2022

나의 영어 도전기

어제의 적 오늘의 동지

찰지게 내려치는 회초리와 끝이 없는 욕지거리,

공부를 잘해야겠다는 다짐보단 손바닥 불나게 한 영어에 증오만 쌓이던 그때,

영어는 더 이상 내 인생에 동행하고 싶지 않은 괴물이었다.

중학교에 입학하여 받은 영어 교과서에는 알파벳들이 늘어져 있었다. 간단한 대화문들과 제인이라는 여자아이가 끝도 없이 나와 중얼대는 영어 교과서는 나와는 전혀 친해질 기미 없는 저세상 교과목이었다. 수업 시간마다 금테 안경 쓴, 깡마른 영어 선생님은 시험지에 소나기 내려치는 아이들을 불러 세워, 멍청한 것들이라는 말을 수도 없이 되뇌며 매질을 해대었다. 내 인생 처음 만난 영어, 영어는 나에게 욕설과 체벌을 부르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만난 영어시간은 세상 편했다. 한겨울에도 개기름 줄줄 흐르던 덩치 좋은 영어선생님은 형편없는 영어점수를 내는 아이들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나는 수업 시간 동안 투명 인간이 되었고, 영어는 잠자기 딱 좋은 수면용 교과목이 되었다.

대학 진학 후 더 이상 볼 일이 없을 거라 여긴 나의 예상은 철저히 빗나가고, 필수 교양에 떡하니 자리 잡은 영어수업. 그렇게 영어는 나의 학점에 바닥을 깔아주는 받침대 역할을 충실히 이어갔다.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었다. 희망하던 대학원은 바닥을 기는 영어점수로 보기 좋게 떨어졌다. 이후 영어점수 비중이 낮은 곳을 골라잡아 진학을 했다. 더 이상 영어와 대면할 일은 없을 줄 알았건만. 수업을 원서로 하겠다는 교수님 말씀은 나를 절망으로 빠뜨렸다.

내 발목을 잡아끌며 끈덕지게 따라다니는 영어라는 놈을 씹어먹어버려야겠다 다짐했다.

내 나이 계란 한 판을 앞두고, 전 재산이던 차를 팔아 무작정 호주로 떠났다. 엄마는 영어고 나발이고 남자 하나 데려오면 좋겠다는 화끈한 인사로 타국으로 가는 나를 배웅해 주었다. 그렇게 도착한 호주에서 일 년 반이란 시간을 보냈다. 초반, 영어 한마디 못하는 신세에 대학시절 이민가 잘 사는 동아리 친구에게 기대볼 요량으로 연락을 했다. 숙박비 꼬박꼬박 내며 친구 집의 빨래와 청소까지 해주며 침대 하나 얻어 살다, 어느 정도 입이 터질 무렵 그 집을 박차고 나왔다. 비록 6명이 콧구멍 한 방 한 칸에 복작거리며 살거나, 독방을 쓰고 싶을 땐 한 사람이 겨우 누울 베란다를 방으로 만든 곳에서 살았지만, 남의 빨래와 청소까지 해주며 눈칫밥 먹지 않아도 되는 일이 천 배 만 배 행복했다. 가져간 돈이 바닥을 보일 즈음 일을 하기 시작했다. 유창한 영어실력이 되지 않는 나는, 한인이 운영하는 잡화점에서 판매원으로 취직했다. 띄엄띄엄 영어 하는 동양인을 얕잡아보는 백인들과 두 눈 쌍심지 켜고 안되는 영어로 싸워보기도 하고, 늙은 백인 아저씨들과 놀아주는 대가로 많은 돈을 줄 테니 따라오라는 백인 아주머니 말에 자존심 상해 당장에라도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긴 밤을 울음으로 지샌 적도 있었다.

일 년 반이라는 시간이 지나 어느 정도 영어를 알아듣고, 좋지 않은 발음이지만 내 의사는 전할 수 있는 영어실력이 되었다. 그리고 엄마 소원대로 평생을 함께 할 남자를 만나 한국으로 돌아왔다. 지독하게 나를 괴롭히던 영어, 나의 느린 배움 탓에 아직까지 유창한 영어실력은 되지 못했지만, 나는 죽을 때까지 영어를 놓지 않을 것이다. 세상을 보는 눈을 키워줬으며, 배움에 대한 화를 북돋게 하고, 친구 같은 남편을 만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이까지 만나게 해 준 영어는 이제 씹어먹어버릴 대상이 아닌 평생을 함께할 나의 동반자가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촌지 건넨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