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리수리마수미 Jul 17. 2022

고민 중: 생계형 환쟁이

뭘 해서 먹고 사나 고민 중이다. 그간 쉴 틈 없이 일해 왔기에 한국에 돌아와서는 아무 생각 없이 몇 달을 놀아보자 마음먹었건만 갑작스레 맞닥뜨린 어머니의 죽음 이후 슬픔에만 빠져 있기 싫어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일을 벌여 한지 몇 달째 번아웃이 찾아왔다.

새벽 기상은 포기했다. 남편의 이른 새벽 한두시 출근시간으로 그때까지 두 눈 뜨고 버티다 보니 새벽 기상은 물 건너 갔다. 기도를 포기했다. 보름째 매일 루틴으로 하던 기도를 그만두었다. 어머니를 위해. 가정을 위해. 아이를 위해 하루를 시작하기 전 드리는 기도조차 하고 싶지 않아졌다. 명상을 포기했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하루를 설계한 스스로를 위해 평안의 시간을 주자며 하루 한두 번 두 눈 감고 나 자신에게 집중하던 그 짧은 시간조차 사라졌다. 그 짧은 시간에 유튜브 쇼츠를 보고 있다. 책 읽기를 포기했다. 활자에 중독된 듯 읽어내리던 책 읽기에서 한 달에 한 권 읽을까 말까 한 독서량으로 전락했다. 음식 하기를 포기했다. 새로운 일에 빠져 경험을 쌓는다며 지방으로 여기저기 강의를 다니다 보니 집안 살림할 시간은 급격히 사라지고 쌓여가는 먼지에 사다 먹는 음식으로 배를 채우는 시간이 많아졌다.

이런 나를 보고 드디어 남편이 터졌다. 계산기를 두드리더니 최저시급도 안되는 돈을 받고 경력을 쌓는다는 명목하에 이런저런 일을 계속하는 것이 현명한 건지 묻는다. 쪼그라드는 살림은 생각 않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도전만 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를 묻는다. 나는 할 말이 없다.

무언가 희망이 되리라고 생각하고 앞만 보고 내달린 몇 달 동안의 시간이 머릿속을 혼란하게 만든다. 이유는 하나다. 내가 욕망하는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명예, 인정, 성취 이런 욕구들을 충족하며 사는 것이 내 삶의 목표라고 말할 수 없다.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며 살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남편의 말이 잠시 섭섭해 입을 다물었으나 언제까지 꿈속에 빠져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 순 없다. 나는 생계형 환쟁이이다. 사지도 않는 로또가 되는 상상을 하며 혼자 헛웃음 짓기도 하는 나는 현실을 살아나가야 하는 생계형 환쟁이이다.

작가의 이전글 서방 하난 잘 만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