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넘어지지 않으려 좌석의 상아색 손잡이를 꽉 잡았다. 서있는 승객이 휘청대든 말든 아무 상관 없는 운전기사의 난폭한 운전에서 살아남으려면 손잡이를 있는 힘껏 쥐고 두 무릎을 살짝 구부려 중심을 잡는 일이 중학생이 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집 앞에 위치한 중학교를 뒤로하고 집과 한참을 떨어진 중학교에 지원했다. 멀미 심한 내가 매일 아침 콩나물시루 같은 버스에 끼여 등하교 하는 일은 곤욕이었으나 멀리 떨어진 학교를 내 스스로 다닌다는 느낌은 초등학생에서 어른으로 훌쩍 커버린듯해 우쭐한 기분이 들었다.
중간고사가 있던 날, 오랜만에 휑한 버스를 탔다. 몇 자리 비어있는 좌석을 발견하고 가방을 벗어 무릎 위에 앉히고 창밖을 보려던 찰나 쪼글쪼글한 얼굴에 머리만 새까만 할머니가 내 앞에선다. 앉아가길 포기하고 자리를 양보하니 가방을 들어주겠단다. 감사하다며 가방을 맡기고 의자 모퉁이에 나온 상아색 손잡이를 꼭 잡고 창밖만 바라보았다. 그러길 수분이 지났을까. 슬금슬금 내 손 등을 훑는 무언가에 화들짝 놀라 아래를 보니 할머니의 손이 내 손을 쓰다듬고 있다. 나의 황당스러운 표정을 보지 못한 할머니는 오직 내 손등에 눈이 꽂혀있다. 그러고는 말한다. "어찌 이리 고울꼬, 나도 이래 고왔는데......"
그날의 나는 할머니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말도 없이 남의 몸을 만지는 이상한 할머니로 밖에 보이질 않았다. 낯선 이가 내 손을 더듬었다는 이유만으로 꽤 오랜 시간 불쾌해하며 하루를 보냈을지도 모른다.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난 오늘 문득 아이의 손톱을 깎아주고 이리저리 튄 손톱을 쓸어 담다 내 손에 눈이 간다. 마디는 굵어지고 언제 생겼는지 모를 상처들에 거뭇거뭇 반점들이 가득 찬 주름진 내 손, 그 시절 곱던 손은 내 손을 쓰다듬던 버스 속 할머니를 닮아간다. 그리고 나 또한 조용히 중얼댄다. "나도 한때 고왔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