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자리
이 집에 산 지 일 년이 넘어간다.
어머니가 살던 이 집은 한동안 그녀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점점 옅어지다 못해 전혀 다른 집이 되었다. 바로 남편과 나, 아이가 살아가는 새로운 보금자리가 되어가고 있다. 가끔씩 마저 치우지 못한 어머니의 흔적을 발견하는 날에는 아직도 그 자리에 멈춰 떠나간 어머니를 떠올린다. 그리고 먹먹해지는 가슴을 뒤로하고 다시 일상을 이어간다. 이제 어머니의 부재는 우리에게 일상이 되었다.
며칠 전부터 경비실에서 심심치 않게 연락이 온다. 경비실 아저씨는 오래된 아파트라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소음이라고 아래층에 설명했지만 끊임없이 항의 전화가 오는 통에 알려드리는 거라고 했다. 우리 역시 특별히 소음을 만들었다 생각하지 않았기에 억울함도 있었지만, 좋은 게 좋은 거니 좀 더 조심하면 되려니 했다. 그리고 어느 날 저녁시간 벨이 울렸다. 낯선 이들의 방문, 두 손엔 값비싼 케이크 하나와 편지가 들려있다. 며칠 전 찾아왔던 아래층 사람들이다.
그들이 건네주고 간 편지에는 길게 줄지어 써 내려간 소음 나는 목록과 시간들이 적혀 있다.
걷는 소리
바닥에 둔 휴대폰 진동소리
변기 뚜껑 닫는 소리
물 내리는 소리
샤워기 두는 소리
물건 놓는 소리
등등등
이런 소리들이 일 년 전부터 나기 시작했다 한다. 우리가 살기 전에는 조용하던 집이 너무나 시끄러워 트라우마까지 생겼다는 아래층 사람들은 한참을 그렇게 소음으로 인한 고통을 토로한 뒤 사라진다. 그들의 편지를 받고, 식탁 위 올려둔 케이크를 쓰레기통에 처넣을까 생각한다. 엄마 속을 알리 없는 아이는 새하얀 크림에 올려진 딸기를 한 입 베어 먹더니, 세상에서 이렇게 맛난 케이크는 처음이라며 먹어치운다. 내 눈엔 세상 역겨운 케이크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나는 괜히 아이에게 역정을 내버린다.
오래된 아파트인 우리 집은 층고가 낮아 층간 소음으로 인한 다툼이 자주 일어난다. 나 역시 위 층 할머니의 걷는 소리, 물 내리는 소리, 스위치를 켜고 끄는 소리, 바닥에 둔 휴대폰 진동소리, 가끔은 화장실로 내려오는 담배 냄새, 그리고 새벽잠 없는 노인네들의 이야기 소리까지 들리는 집에 살고 있다. 주말이면 찾아온 손자, 손녀들의 뜀박질 소리는 가끔 내 인내심에 한계를 느끼게 하며 경비실에 전화를 걸까 망설이게 만들지만, 아이들이 할머니 집에 와서 신나서 뛰는 걸 가지고 뭐라 하지 말라는 남편의 말은 나의 좁은 아량을 돌아보게 만든다.
아래층의 반갑지 않은 방문으로 잠을 설친다. 억울한 마음이 들어 잠을 들 수가 없다. 억울함이 깊어지자 분노가 되어간다. 분노는 입에 담지 못할 말과 생각을 떠올리게 만들며 더더욱 잠을 들 수 없게 만든다. 그러다 문득 그들이 남기고 간 말 한마디가 상기된다. 깨진 유리처럼 날 선 나의 분노가 슬픔으로 바뀐다.
우리가 오기 전까지 조용했다는 우리 집
바로 어머니가 혼자 투병하며 지냈던 시간들이다.
멀리 사는 딸년 걱정할까 늘 괜찮다, 견딜만하다며 웃어 보이시던 모습 뒤에는, 몸 하나 가눌 힘 없이 늘 누워 지냈던 엄마의 삶이 있었다. 아래층이 그리워한 고요함은 바로 내 어머니의 죽음을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당신들이 좋았다던 그 고요함은 바로 내 어미가 누워 지내던 시간이었다. 누군가가 죽음을 기다리는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평화를 누릴 수 있는 시간이었다는 사실에 나는 밤새 베갯잇만 적셔냈다. 그리고 어머니의 말만 믿고 무심히 내 삶만 누렸던 시간들, 뒤늦게 엄마 곁으로 돌아온 나 자신이 그들이 주고간 케익만큼 역겨워졌다.
반갑지 않은 이들의 방문,
그것은 아마 내가 알고 싶지 않았던, 대충 덮어두고 잊어버리려 했던 내 어머니의 외롭던 투병생활을 잊지 말라는 경고일지도 모른다. 끝까지 자식들을 위해 괜찮다를 내뱉던 모습을 잊지 말라는 어머니의 마음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