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 준비

출발선에 선 남편

by 수미

남편은 함께 가자고 했다. 입학식을 앞둔 아이를 챙기는 엄마처럼, 나는 남편의 긴장한 손을 꼭 잡아주었다. 설렘과 걱정이 교차하는 순간, 나는 잠시 남편의 엄마가 되었다. 손을 잡아주며, “잘 될 거야”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렇게 남편은 세상에서 가장 공손한 모습으로 구청에 ‘환경 공무직 지원서’를 제출했다.

며칠전부터 남편은 서류를 하나씩 챙기고 있었다. 1차 시험에 필요한 서류 항목은 까다로웠고, 신분을 증명하는 서류도 제법 많았다. 부양가족 수에 따라 가산점이 붙는다기에, 단출한 식구에 우리 강아지라도 추가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마흔 중반이라는 나이 덕분에 오히려 가산점를 받을 수 있다는 걸 알고는 “나이 드니 좋을 때도 있네”라며 웃기도했다. 남편은 이력서를 썼다며 봐달라 했다. 경력은 나열하면 그만이지만, 자기소개서와 지원 동기가 문제였다. 남편은 자신의 진심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처음엔 흔한 이력서 문장을 따라 적었다. “저는 몇째로 태어나 성격이 어떻고…”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이력서 문장. 나는 “첫 문장에서 떨어진다”며 잔소리를 해댔고, 남편은 못 들은 척하다 결국 자신의 진짜 마음을 끄적이기 시작했다. 휴일도 없이 일했던 시간들, 청소부라는 직업을 두고 편견을 가진 아이에게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고 싶다는 고백. 그의 진심 담긴 글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이 정도면 충분해”라며 엄지척 하는 나를 보며 그제야 남편은 기분이 좋아진 듯 어깨를 으쓱였다.

다음은 1종 대형면허증 취득! 단 몇 점이라도 더 받기 위해선 자격증이 중요했기에, 바로 운전면허 학원에 등록했다. 등록비도 부담이었지만 두 주 안에 따야만 했다. 촉박한 시간에 불안해하는 나에게 평소 운전을 곧잘 했던 남편은 당연히 붙을거라며 거드름을 피웠다. 떡하니 붙는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겠다 호언장담 하던 남편은 막상 시험 날, 시작 신호가 울리자마자 출발선에 멈춰 꼼짝하지 않았다. 아이가 물었다. “아빠 왜 저러고 있어?” 그리고 울리는 불합격! 자신만만하던 그는 두 모녀의 비아냥을 잠자코 들어야 했다. 며칠뒤, 재시험 날엔 혼자 가겠다더니 마침내 합격증을 자랑스럽게 흔들며 의기양양 돌아왔다.

마지막 관문은 체력 테스트였다. 쌀가마니를 지고 달리는 예전 뉴스가 떠올라 “나라도 들쳐업고 뛰어보래?” 했지만, 남편은 혼자 알아서 하겠다며 웃기만 했다. 남편은 하루에 1만 보 넘게 걷고, 팔굽혀펴기를 하다 어깨에 파스를 붙이기도 했다 새벽에는 강아지와 함께 달리며 쓰레기를 줍고, 오전엔 자전거로 동네를 누볐다. 닭가슴살과 야채로 식단을 바꾸고, ‘국민체력 100’ 센터에서 무료로 체력 점수를 관리했다. 몇 주 만에 5kg이 빠졌고, 낮았던 점수들도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다.

환경공무직 체력시험 일정이 문자로 도착했다. 남편은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할 수 있다”는 말만 되뇌었다. 평소 같으면 웃었을 두 모녀, 이날만큼은 진지한 얼굴로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내일, 드디어 결전의 날이 시작된다. 그가 걷는 길은 청소부가 되는 길이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자부심의 시작이다. 그 길은 우리에게 희망의 첫 발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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