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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Nov 09. 2022

여자는 밖에 좀 나다녀야 한다

이 날은 남편의 회식, 이 날은 남편 친구 모임, 이 날은 남편 출장, 이 날은 남편 워크숍, 이 날은 남편 필드 가는 날... 스케줄을 기록하다 보니 집에서 벗어나 있는 남편의 스케줄이 더 많다. 당연히 남편도 미혼 때보다 친구들을 만나는 빈도는 줄어들었지만 나처럼 단절된 느낌은 아니다.


남편은 내게도 친구를 만나러 갔다 오라고 한다. 아기 걱정은 말고 언제든지 놀다 오라고. 나도 그러고는 싶은데 잘 안된다. 아기를 낳고 난 후의 나는 많이 달라졌다. 친구들이 여전히 좋긴 하지만 이미 나의 관심사는 '아기'나 '육아'와 관련된 일들이다. 하필 코로나 때문에 만나지 못해 몇 달, 몇 년간의 간극이 벌어져 너무나 오랜만에 만난 인연들과 대화하다 보면 어떨 땐 내가 알던 과거 그 사람의 모습이 아닐 때도 있어서 기시감이 들 때도 있고, 나의 사는 이야기는 아기 이야기가 8할인데 혹여나 나의 이야기들이 지루하지는 않을지 그런 생각에 말을 아끼게 된다. "눈치 없이 미혼들 많은 단톡에 자꾸 아기 사진만 올리는 친구"로 인터넷에 올라오지 않고 싶어서인 것도 있다.


그리고 결정적인 차이점은, 남편은 친구들이 여전히 남편을 불러주는 데 반해 나의 친구들은 날 불러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너무도 잘 안다. 내 친구들이니까. 배려심인 것이다. 분명 아기를 본다고 바쁠 거라고, 여유가 없을 거라고, 그렇기에 쉽사리 "야~ 뭐해 놀자~ 오늘 영화 볼까?" 하고 말하기 어려워진 것이라는 걸...

친구와의 브런치

그래서 내가 먼저 연락을 해야, 비로소 나는 친구들과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친구들을 만날 때면 자꾸만 나 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을 아기의 모습에 평소 놀던 것보다는 언제나 빨리 귀가하게 된다. 어쩌면 거기서 친구들과의 간극이 더 벌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친구들의 입장에서 봐도 속상할 것이다. 먼저 만나자고 해놓고 말이다. 그런 일들이 반복되면, 어느 순간 내가 먼저 만나자는 말을 하기도 지치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러다 보면 일면식도 없는 SNS 속 누구 맘, 누구 맘들이 나의 친구이자 동지가 되고 더욱 친해지고 마음을 터놓게 되기도 한다. 그냥 집에서 앉아 폰을 들여다보거나 힘들어도 아기와 있는 것을 택하거나 가족을 만나는 게 심적으로 편하다. 누군가를 만나는 것 자체도 분명 즐겁지만 에너지를 쓰는 일이라는 걸, 뼈저리게 깨닫는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를 가두게 된다.


스스로 아기를 위해 내 삶을 포기하는 양상이 나타나면서 셀프 가스라이팅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남편은 놀러 다닌다고, 나 너무 힘들다고 속상해하고, 정작 남편은 아기를 봐줄테니 나가라는데 발이 떨어지지 않는 이 아이러니함. 그런 마음들은 나를, 가족 관계를 무너뜨리게 된다.

드라마 산후조리원에서 애셋맘 박하선이 자신의 생일에 혼자 홍대 거리(홍대였던가?)를 거닐던 모습이 떠오른다.


나도 어쩌면 아이의 엄마라는 역할에 나를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그 과정이 가랑비에 옷 젖듯이 이루어졌다. 아기가 나를 필요로 하는 온전히 우리 둘만 존재하는 그 필수적인 시간으로 인한 것이다. 남편의 경우에는 그런 필수적인 시간이 없었기에, 예전처럼 친구들을 만나는 데 어색함이 전혀 없다. 남편은 친구들을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하다. 아기나 육아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왜 나는 그게 안 되는 걸까.


그래서 다짐한다.

여자들은 더 의도적으로 밖에 나다녀야 한다.

친구들을 만나고, 취미활동도 가지고, 스스로 가두어버린 엄마라는 역할에 매몰되지 말고 말이다.


아기가 크면 독립을 할 테고, 나를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스스로를 가두어버린다면 나는 점점 나를 아기와  동일시하게 되고 정서적인 의존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내가 널 위해 모든 걸 포기하고 희생했다고 원인을 아기에게 돌리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지 않겠다.

그래서 나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

여자들은 의도적으로 더 밖으로 나다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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