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사로잡고 있는 것
시댁에 왔다. 집에는 없는 TV를 마음껏 볼 수 있는 첫째는 그저 신이 났다. 평생 볼 만큼의 TV를 뒹굴거리며 보고 오매가매 보고 할아버지가 퇴근하시자 나란히 앉아서 본다. 헬로카봇 넘버블럭스 래브라도 경장...
나중에 성인이 되고 나면 지금 이 순간이 기쁨으로 남으려나 궁금해졌다. 집에서는 금지된 것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순간과 무한한 애정을 주시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품, 나의 양가 할머니 할아버지는 모두 일찍 돌아가셨다. 그래서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흐릿한 사진 속의 모습뿐. 나의 유년시절은 대부분 부모님과 언니, 동생과 함께 했던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다.
아이를 낳고 나면 나의 유년시절이 떠오르는 일이 많다. 조그만 아이의 모습에 나의 어린 시절이 투영되기 때문일 것이다. 유년시절의 경험이 인생의 모든 것을 좌우하지는 않지만 꽤 많은 지분을 차지한다. 어린 시절 19평 남짓한 연립주택이 넓어 보였던 것처럼, 넓게만 느껴지던 집 앞 골목에 어른이 된 후 다시 방문했을 때 아주 작게 느껴지는 것처럼, 어른인 내게 영향을 미치는 주위 환경들은 많고 다양해서 그 영향력이 적은 지분으로 나뉘는 데 반해 유아였던 내게는 부모가, 형제자매가, 작은(하지만 그땐 커 보였던) 집이 내 삶의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조각난 기억들은 두근거리고 기쁘지만 어떤 기억들은 잊고 싶어도 내게 찰싹 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크리스마스에 잠든 척 눈을 감고 누워있던 내 머리맡에 자물쇠가 달린 회색 다이어리 선물을 놓아주었던 부모님의 손길, 학교를 마치고 직접 만들어준 엄마의 딸기우유, 내가 제일 좋아하던 시금치나물과 연근조림, 유치원 행사 때 엄마와 함께 돌아다니며 오이를 잘라서 친구들에게 먹여주던 기억들..
그런 기억들이 날 숨 쉬게 하지만 때로는 내동댕이쳐지던 엄마의 모습이라든지 엄마의 생일날 과자와 바나나를 생일상이랍시고 준비해 놓고 기다렸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던 순간, 엄마와 아빠의 부부싸움이 있을 때 언니와 방에 누워 적당히 눈치를 보다가 이쯤이다 싶을 때 나가서 칼을 든 엄마를 말렸던 순간들은 어른이 된 내게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이제 내가 엄마가 되었지만 종종 '부모'인 그들을 이해할 수 없다. 개개인의 역사로 살펴본 그들의 삶은 이해하지만, 자녀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존재한다.
그래서 나는 내 아이에게 좋은 부모가 되고 싶다고 다짐할 때, 그 좋은 부모가 의미하는 바를 곱씹어보곤 한다.
내게 좋은 부모란, 어른이 되었을 때 행복했던 유년시절을 자주 떠올릴 수 있는 추억거리를 남겨주는 그런 사람이다. 비록 그것이 거창하고 값비싼 물질적인 것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나를 따라다니는 그림자 같은 기억들을 아이에게는 대물림하지 않겠노라,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