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는 꼰대 같은 생각과 이유들
별 다른 건 없다. '안 낳아보면 몰라' '애국' 어쩌고 그런 건 식상한 이유들이다.
아이는 자라고 나는 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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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자식농사' 어쩌고 내용 나오겠거니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설마 그렇게 식상한 이유를..? 계속 읽어보시라 (아, 물론 식상할 수도 있다.)
나이가 드니 시간이 참 빨리 간다. 체감하는 시간의 흐름을 인지한 건 내가 입사 10년 차가 되었을 때였다. 뭐? 내가 벌써 10년을 한 곳에서 일했다고?
지금 회사에서 일하기 전에 나의 최장 기간 일(알바와 인턴 등을 모두 포함)은 1년이었다. 젊고 에너지 넘치던 나는 일도 쉽게 질렸다. 그런데 매일매일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멘트와 똑같은 자리에서 하는 이 일(심지어 외근도 출장도 없다)을 무려 10년이나 하다니 과연 과거의 나는 현재의 나와 동일 인물이 맞는가? 그럼에도 그 지루한 일을 하는 하루가, 일주일이, 한 달이 너무도 순식간에 지나가버린다.
30대 후반이 되니 요동치던 마음도 호수와 같이 잔잔해진다. 단, 유치원 버스를 타러 가야 되는데 똥을 싸버린 둘째 혹은 급똥으로 화장실에 가버린 첫째(꼭 하루씩 번갈아가며 똥줄 타게 만든다) 때문에 미친 듯이 뛰어나가는 그런 때를 제외하고는.
특별히 놀라는 일도 없고 (오, 계엄은 제외한다 스ㅣ벌것아 놀랬다고) 뭔가 로봇이나 기계 같은 하루를 보내는데 어느 순간 그렇게 좋아하던 해외여행도 감흥이 없어지고 말이다. 시간이 정말 빨리 가는 와중에 '아이들 때문에 내 시간이 없어져! 나만의 시간을 뺏겨 내 자아! 나! 내 삶!!' 이런 생각조차 없어지는 건
아이들과 함께 무언가를 하는 삶이 내 취미가 되었고 무료한 시간에 종종 버퍼링 걸리게 해주는 그런 추억들도 생기기 때문이다. 이제는 '내'가 무언가를 하는 건 그다지 새로울 게 없지만 '아이'가 하나씩 관문을 통과해 가며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모습(물론 아직 멀었다 오늘도 울고 떼쓰고^^)을 보면 정말 신기하다. 관찰자 시점으로 인생을 다시 살고 있는 것 같다.
소소한 행복과 소소한 업무적 빡침 같은 것들 사이에서 아이를 낳고 기르는 건 돌풍과도 같다. 희로애락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으면 아이를 낳으면 된다. 내가 겪어온 기쁨? 상 탄 거? 이벤트당첨? 연말정산보너스? 아이와의 교감은 그 모든 기쁨을 압도해서 이유 모를 기쁨의 눈물을 흘리게 만들어 얼음 같은 나를 당황하게 한다.
진상고객과의 싸움.. 분노.. 교통사고 났는데 태극기부대 집회 나가는 것 같은 할아버지가 날 무시하여 경찰서까지 가게 되는 그런 J같은 상황들도 날 화나게 하지만 내 아이처럼 날 화나고 빡치고 슬프게 하는 사람은 없다.
모든 감정들의 극단을 달리다 보면, 아 이게 사는 거구나. 생생한 삶을 느낀다. 완전히 맛이 가버린 내 손목처럼.. 생생하게... (그래서 요새 폰으로 글쓰기를 거의 못한다. 오늘은 고통을 즐겨본다..)
나이가 들고 매일이 똑같은 하루 속에서 시간은 빠르게 흐르지만 잔잔한 호수 같은 삶. 그 호수에 아이들은 쉴 새 없이 날 자극하고 뛰어들고 돌을 던지고 볼일을 보고 그러다 보면 나름대로 재미있다. 비록 아이를 키우기에 이 세상이 너무도 험악하고 걱정되고 기후도 J 같지만, 내가 바로 기후변화를 선도하고 있는 애 둘 엄마(애 낳는 것이 환경오염과 기후변화를 초래하는 원인 1위이다. 소고기 먹는 거보다)라서 지구한테 미안하지만, 모든 생명체의 새끼 중에 인간의 아기가 제일 귀엽다는 것을 내 새끼를 낳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러니 피하지 말고 한 번 낳아보시라. 사고를 하는 포유류, 옥시토신 호르몬의 지배를 받는다는 걸 메타인지적으로 알 수 있는 포유류라는 걸 직접 경험해 볼 수 있다. 아기를 낳지 않았다면 나는 그저 오만한 인간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겸손한 포유류다.
우리가 게임을 할 때 한 단계 한 단계 더 어려워지는 퀘스트를 깨면 더 도파민이 넘치는 것처럼 인생이라는 게임(물론 목숨은 하나입니다 최선을 다해 사십시오)에서도 육아는 높은 난이도로 가는 길목이다. 그리고 프로스트의 시처럼 풀이 무성하고 닳지 않은 이 길은, 처음으로 부모가 되는 길, 그래서 운명이 달라지는 그런 길이니까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