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문을 다시 여는 일

지쳐도, 삶은 나를 부른다

by 수미소


한동안 나는 사람을 피했다. 아무 이유 없이 불쑥 닫혀버린 마음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연락이 와도 답하지 않았고, 약속이 잡혀도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상처받은 기억이 자꾸 떠올라서,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게 두려웠다.

마음속 문은 닫혀 있었고, 그 안에는 낡은 감정들만 쌓여 있었다.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두면서, 동시에 누군가가 나를 찾아와 주길 바랐다. 모순된 바람이었다. 혼자 있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외로움은 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 동료가 건넨 커피 한 잔이 내 마음을 흔들었다. 별 의미 없는 대화였는데, 그 작은 관심이 유난히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날 이후 나는 조금씩 주변 사람들의 표정과 말투에 다시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문득 깨달았다. 마음의 문은 거대한 결심으로 여는 게 아니라, 아주 사소한 온기로 스르르 열리는 거라는 걸. 따뜻한 눈빛 하나, “괜찮아요?”라는 짧은 말 한마디가 마음의 자물쇠를 조금씩 풀어간다.


나는 그동안 ‘완벽하게 회복된 뒤에야 누군가를 만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과의 관계는 완전한 내가 아니라, 여전히 부족한 나로부터 다시 시작된다. 불완전함 속에서도 진심이 있다면, 그건 충분히 아름답다. 나는 여전히 상처받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두려움보다 더 무서운 것은 마음을 닫은 채 살아가는 일이었다. 닫힌 마음 안에서는 바람도, 햇살도, 사람의 온기도 닿지 않는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조금은 용기를 낼 수 있었다.

퇴근 후 집으로 가는 길, 문득 발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구름 사이로 붉은 노을이 번지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래, 이제 다시 열어볼까.” 그렇게 마음의 문을 아주 조금, 손가락 한 마디만큼 열었다. 그 틈 사이로 저녁 바람이 스며들었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따뜻한 공기의 감촉이 내 안으로 들어왔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세상은 여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기다림은 언제나 조용하고 다정했다.


밤이 되어 집에 돌아오자, 여전히 어수선한 방이 눈에 들어왔다. 어제 그대로의 책상, 미뤄둔 빨래, 식지 않은 고요.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풍경이 낯설지 않았다. 내 마음의 풍경과 닮아 있었다. 혼란스럽지만 진심이 있는 곳, 그게 지금의 나였다. 나는 창문을 열었다.


바람이 불어와 커튼을 흔들었다. 그 바람에 오래 묵은 생각들이 흩날려 나갔다. 그리고 새 공기가 들어왔다. 다시 숨을 쉬는 느낌이었다. 마음의 문을 여는 일은 거창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다시 살아가기로 결심하는 일, 나 자신에게 허락을 주는 일이었다.

그날 밤 나는 일기를 썼다. “오늘, 조금은 나아졌다.” 단 한 줄이었지만 그 문장은 내게 큰 힘이 되었다. 나는 더 이상 어제의 내가 아니었다. 여전히 부족하지만, 그래도 세상을 향해 한 발을 내딛은 나였다. 마음의 문을 여는 일은 그렇게 시작된다. 조용하지만 확실하게, 다시 세상과 연결되는 작은 발걸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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