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에 내리던 날

by 수미소

서울역에 내리던 날

서울에 처음 올라온 날, 공기는 달랐다.
어디선가 구운 고기 냄새가 섞인 매연과,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의 걸음 소리가 뒤엉켜 있었다.
열차 문이 열리자, 나는 단단히 쥐고 있던 가방끈을 한 번 더 움켜쥐었다.
부모님이 손에 쥐어준 용돈 봉투가 그 안에 있었다.
“힘들면 언제든 내려와라.”
어머니의 말이 귓가에 남아 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어떤 말도 듣고 싶지 않았다.
내가 선택한 길, 내가 버텨야 할 세상이라고 믿었으니까.

스무 살 끝자락, 나는 성공이라는 단어에 모든 꿈을 걸었다.
누군가는 지방대를 나와도 잘 살아간다지만,
나는 서울이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서울에는 기회가 있고, 돈이 있고, 사람들의 인정이 있다 믿었다.
그 믿음 하나로 기차를 탔고,
한겨울의 차가운 공기 속에 서 있었다.
서울역의 사람들은 빠르게 흘러가는데,
나는 그 틈에서 낯선 섬처럼 서 있었다.

처음엔 막막했다.
아무 연고 없는 도시에서 자취방을 구하고,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하루를 버텼다.
아침엔 이력서를 내고,
밤엔 컵라면으로 허기를 채웠다.
그때만 해도 이렇게 오래 서울에 남을 줄 몰랐다.
‘조금만 더 견디면 괜찮아지겠지.’
그 한마디로 몇 해를 버텼다.

나는 현장일보다 화이트칼라가 더 멋있어 보였다.
양복을 입고 지하철에서 노트북을 여는 사람들,
회사 건물 로비를 지나며 인사하는 모습이 부러웠다.
그래서 현장을 떠나 사무실을 택했다.
그러나 현실은,
형광등 아래에서 흘리는 땀도,
햇빛 아래에서 일하던 날과 다르지 않았다.
노력보다 운이 더 중요했고,
인정보다 관계가 더 무거웠다.
책상 위에는 늘 보고서가 쌓이고,
회의실 안에서는 웃음 뒤로 날선 말이 오갔다.
나는 언제부턴가
꿈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일하고 있었다.

주말이면 세탁소 냄새가 밴 셔츠를 말리고,
마트에서 1+1 도시락을 사서
허기를 달랬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내니
‘서울에서의 성공’이란 단어가 점점 멀어졌다.
어느 날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을 보았다.
부모님이 걱정하던 그 얼굴이었다.
도시에 길들여진 초라한 표정,
하지만 포기하지 못한 눈빛.
그 눈빛 하나가 나를 버티게 했다.

가끔은 아버지의 손이 떠올랐다.
논두렁에서 삽을 들던 거칠고 단단한 손,
그 손이 밥을 짓고, 내 학비를 보태주었다.
나는 그 손을 멋대로 벗어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이제야 안다.
그 손의 굳은살이 내 인생의 밑바탕이었다는 걸.
아버지는 현장에서 흙과 함께 일했지만,
나는 사무실에서 숫자와 단어에 파묻혀 있다.
둘 다 같은 땀인데,
나는 그 차이를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했다.

회사에서 버텨낸 첫 5년째 되는 날,
퇴근길에 서울역 앞을 지나쳤다.
낡은 플랫폼 끝에 앉아 있는 청년들을 봤다.
어딘가 낯익은 표정,
그 속에서 예전의 내가 보였다.
지금이라면 그들에게
“겁내지 말고 천천히 가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성공은 빠르게 오는 게 아니라,
버티는 사람에게 천천히 다가온다는 걸 이제 알았다.

밤이 깊어지면
가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건다.
“밥은 잘 챙겨 먹고 다니나?”
그 질문 하나면 마음이 풀린다.
어머니는 여전히 시골집 마당에서
새벽마다 장작불을 피우며 밥을 하신다.
그 연기 냄새가
이 도시의 냄새보다 훨씬 따뜻하다.

서울은 여전히 낯설다.
아무리 살아도,
이곳의 사람들 틈에 완전히 섞이지는 못한다.
그래도 나는 안다.
부모님의 걱정을 뒤로하고 선택한 이 길이,
결국 내 인생을 단단하게 만든다는 걸.
현장의 흙냄새는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고,
화이트칼라의 손끝엔 또 다른 땀이 맺힌다.
그 차이를 인정하는 순간,
비로소 내가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이제는 성공이 무엇인지 조금은 다르게 생각한다.
크게 이루는 것보다
조용히 버텨내는 하루,
그 하루를 이어가는 사람이 진짜 성공한 사람 아닐까.
서울역을 떠올릴 때면
그날의 공기와 내 발끝의 떨림이 함께 떠오른다.
두려움과 설렘이 섞인, 첫날의 냄새.
그 냄새를 잊지 않으려 오늘도 다시 걷는다.
부모님이 나를 믿어준 것처럼,
나도 언젠가 나 자신을 믿어줄 수 있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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