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인척 하는 아들의 작은 소망
2화. 아들의 밥상, 어머니의 말 없음
또 다른 토요일의 전날이다. 이번에는 무엇을 해갈까. 늘 그렇듯, 나는 생각부터 한다. 며칠 전 어머니께서 전화를 하셨다.
“배가 더부룩해서 아무것도 못 먹겠다.”
조심스레 내비치신 불편함은 결국 변비 때문이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나는 인터넷을 뒤졌다. 양배추쌈, 생마, 삶은 사과. 조금은 생소하지만 효과가 있다는 글들이 줄줄이 올라왔다. 어머니가 드시기에 질기지도, 부담되지도 않게 만들려고 삶고 썰고 포장지를 싸는 손끝이 평소보다 더 조심스러웠다.
토요일 새벽 5시 30분. 알람도 없이 눈이 떠졌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조용히 문을 닫고, 가방을 들었다. 차 안 라디오에서는 어제의 뉴스가 흘러나왔지만, 내 귀에는 조수석 위 반찬 가방의 존재만이 크게 느껴졌다
나는 지금, 누구를 만나러 가는 길일까…’
어머니를 뵈러 가는 길인가, 아니면 안심하고 싶은 내 마음을 달래러 가는 길인가. 그 질문은 아직도 대답되지 않은 채 매주 이 길을 반복하게 만든다.
도착한 시골집. 대문은 늘 그래왔듯 열려 있었다. 마당에는 인기척이 없었다. 하지만 예상대로, 어머니는 이미 고추밭에 나와 계셨다.
“왔냐.”
짧고 무심한 한마디. 오늘 하루도 그렇게 시작됐다.
부엌 안. 나는 조심스레 준비해 온 반찬들을 꺼냈다. 양배추쌈, 생마, 삶은 사과. 포장된 선짓국밥까지 작은 쿨러 가방 안에 챙겨왔다. 어머니는 반찬을 한 번 흘긋 보시더니 말없이 손으로 밀어두셨다.
“이건 너무 질기다.”
“내가 이빨이 있어야 씹어먹지.”
“틀니가 이리 아픈데, 무슨 쌈이고 뭐고…”
“이 많은 걸 다 어찌 먹노.”
그 말이 들리지 않는 날엔 조용히 반찬들이 냉장고 속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때 안다. ‘아, 이번 것도 동생 몫이겠구나.’ 마음이야 서운하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이젠 그 반응도 익숙하다.
아침을 먹고 우리는 고추밭으로 향했다. 어머니는 바구니를 들었고, 나는 장갑을 꼈다. 무릎이 아프다고, 인공관절 때문에 구부려지지 않는다고 하시면서도 어머니는 어느새 땅을 짚고 앉아 고추 줄기를 하나하나 따고 계셨다.
손끝은 여전히 빠르고 단단했다. 그 손에는 지난 계절들의 시간과 수많은 새벽들이 묻어 있었다.
“이거 다 하면 뭐 하시게요?”
“어쩌겠노. 손 놓아버리면 바로 늙는다.”
무심한 듯 던지는 그 말 속에는 아직은 놓기 싫은 마음이 느껴졌다. 어쩌면 놓을 수 없는, 더 정확히는 놓을 줄을 모르는 마음일지도 몰랐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차마 그만두시라고 말할 수 없었다.
점심 무렵, 동생이 도착했다. 그 순간 어머니의 얼굴이 조금 풀리는 것이 보였다. 마당 앞 식당 주차장을 바라보시던 어머니는 잠시 후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늘은 왜 차가 한 대도 안 오노…”
그 식당은 우리가 과수원 하던 자리에 들어선 곳이었다. 이젠 세를 줬지만, 어머니는 여전히 장사가 잘되면 기뻐하시고, 한산하면 마음 한구석이 비워지신다.
“우리는 다 찌그러진 중고차 타고 다니는데 저 집 사장님 차는 엄청 비싸더라.”
나는 애써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우리보단 형편 나으시겠죠.”
하지만 어머니는 창밖만 바라보셨다. 그리고 잠시 뒤, 사장님은 테슬라를 몰고, 사모님은 제네시스를 타고 주차장으로 들어왔다. 우리의 낡은 차 옆에 말끔한 차 두 대가 나란히 섰다. 어머니는 조용히 말했다.
“다행이다…”
나는 그 말의 뜻을 묻지 않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렸다.
잠시 쉬는 틈. 동생은 늦은 아침을 먹으러 부엌으로 들어왔다.
“형이 가져온 반찬, 맛있던데. 내가 다 먹게 생겼네.”
어머니는 대답하지 않으셨다. 대신 조용히 가스불을 켜셨다. 나는 그 장면을 보고 괜히 집 밖으로 나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내 반찬이 어머니 입에 맞으셨다면 기쁜 일이고, 동생에게 다 주셨다면 그 또한 좋은 일이다. 어머니의 손이 덜 수 있으니. 나는 자주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한다.
돌아오는 길, 조수석에는 어머니가 키운 상추와 취나물, 갓 딴 고추가 담긴 비닐봉지들이 놓여 있었다. 허리는 뻐근했고, 몸은 무거웠지만 마음은 왠지 가볍게 느껴졌다. 그리고 오늘 어머니가 남긴 한마디는 오래도록 내 가슴에 남았다.
“네가 올 때마다, 나는 좀 더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오늘도 효자의 흉내를 냈고, 어머니는 오늘도 자식을 기다리셨다. 그리고 주말이 되면, 나는 다시 아들이 된다.